기업사냥 사례

1991년 봄 어느 날, 은행 지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대부계 직원이 신문을 보다가 "이ㅇㅇ 사장님 구속됐네. 히로뽕을 했다네" 하고 놀란 듯이 말하는 것에 밥을 먹던 직원들이 우루루 몰려 신문을 보니 신문 사회면에 수갑을 찬 큼지막한 사진과 함께 '연예계의 대부, 연예인 일본진출 도우미 마약 복용 검거' 라는 기사가 굵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나는 그 때 당좌 담당 대리였는데 그 사장이 경영하는 기업체가 내가 담당하는 당좌거래처였다. 나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사무실로 돌아가 그 업체의 당좌수표, 어음 교부 상황 및 회수 상황 등을 점검하고 업무상 큰 문제 없음을 지점장에게 보고하고 한숨을 돌렸다.

그런 일이 있은 후 2개월이 지난 시점인가, 새로 부임한 사장이라면서 이사회 회의록, 법인등기부등본 등을 가져와 제출하면서 약속어음 한권(10장)을 교부 요청하였다. 미회수 어음이 많아 추가교부 수량이 나오지도 않았지만 사장도 바뀌어서 5장만 교부하였다.

사장이 구속되고 6개월 되는 시점인가 구속되었다는 전 사장이 전화가 와서 다짜고짜 당좌수표, 어음이 어떻게 되느냐면서 자기가 사기를 당해서 회사를 뺏겼는데 절대 더 이상 수표, 어음을 내주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는 것이었다.

해가 바뀌어 연초에 나는 고향 군산으로 발령을 받아 정신없이 근무하고 있는데 서울지방검찰청에서 나에게 참고인 조사 소환장이 날아온 것이다. 놀란 마음에 내용을 뜯어보니 구속되었던 사장이 후임 사장과 회사 임원들을 사기죄로 고발하면서 은행도 조사를 요청한 것이었다.

휴가를 내고 서울까지 올라와 난생 처음 서초동 검찰청 담당 검사실에 가서 두 시간 조사를 받았는데 사무관에게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새로 바뀐 사장은 사기전과 8범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기범인 것을 몰랐냐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면서 그런 전과는 금시초문이고 은행에서는 알 수가 없고 다만 금융거래에 따른 신용불량거래정보를 조회하며 거래를 한다고 대답했다. 나에게 금품 향응을 받은 적 있느냐고 질문해서 거래가 많은 기업도 아니고 짜장면 한 그릇 얻어먹은 적 없다고 하니 조사관이 내가 사기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는지 사건의 전모를 얘기해 주는 것이었다.

구속되었던 사장은 원래 조폭 두목으로 코미디언 등 연예인을 일본으로 진출시키는 사업을 10년 넘게 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나이도 먹고 조폭을 정리한 후 번듯하게 살고 싶었다. 강원도 원주에서 부도난 유기질비료공장을 40억 원에 인수하여 조폭 부하들을 모두 회사 직원으로 채용하였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2년이 넘도록 적자만 나니까 괴로워서 술에 빠져 살았는데, 그 와중에 직원들이 사기전과 8범과 짜고 술에 히로뽕을 타서 먹이고는 바로 현장을 신고하여 구속시켰다. 8개월 구속기간 동안에 대표이사를 바꿔 회사를 팔아먹고 모두 도주했다는 것이다. 30년 전에 40억 원이면 얼마나 큰돈인가?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족히 몇 백억 원이 될 것이다.

조사관은 내가 전과8범과 공범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일하면서 주의하라고 충고하는 것이었다. 참고인으로 와서 피의자로 전환되어 구속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검찰청사를 빠져나오며 뒤로돌아 위압적인 검찰청 건물을 한참 올려다봤다. 

시민단체 사냥 미수사례  

2017년 5월에 '촛불혁명 시민시집' 발간을 위한 '시민편집위원회'를 문화공간 온에서 결성하였다. 초기 위원으로 7~8명이 참여하여 정ㅇㅇ을 위원장으로 촛불시민의 글, 그림 등을 모집하면서 출판비 후원금도 받기로 결의하였다. 정 위원장이 거의 혼자 추진하면서 시와 글, 후원금이 생각만큼 모집되지 않아 답답한 와중에 8월인가 서울시 시민단체 사람이 자기가 글과 자금을 모집해 주겠노라고 하면서 자기에게 총무의 권한을 달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총무 권한에 카드까지 건네 줬는데, 약속한 글과 자금은 모집하지 않고 나중에 들어 온 위원들과 야합하여 회의 때마다 정관이 없네, 회계가 불투명하네, 감사가 없네 등등 생트집을 잡으며 정 위원장을 공격하여 결국에는 위원장을 끌어내리고 다른 사람을 위원장으로 임명하는 파란을 겪었다.

책 한 권 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모임인데 무슨 정관, 회계, 감사 타령인지 그 총무라는 자가 떠들 때 처음에는 그런 것을 해야 하나? 의아해 하다가 위원들이 하나 둘 그에 동조하면서 정 위원장과 처음의 위원들은 뒤로 밀려나는 형국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처음부터 시와 글, 후원금을 모집하고 편집하느라 혼자 생고생한 사람을 놔두고 다른 사람으로 위원장을 바꾼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카톡방에 올리니 처음 같이 했던 여자 한 사람이 "그러니까 누가 혼자 고생하라고 했습니까?" 하고 힐난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혼자 고생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참 말문이 막히고 기가 막혔는데, 그 여자가 하는 말이 자기는 약자 편을 든다는 것이었다. 아주 거룩한 말이었다. 그 총무라는 사람이 약자인지 출판회를  찬탈하려는 사냥꾼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심 없이 보아도 정 위원장이 고군분투 고생하는데 글과 자금 모집을 도와주겠다고 온 총무라는 사람이 약속은 이행하지 않고 감 놔라 배 놔라 상전 노릇하는 것을 두둔한다는 것은 전혀 상황파악을 못하는 혼돈이 아니고 무엇이랴.     

정 위원장은 모든 것이 지치고 넌덜머리가 나 위원장 물러나고 그만두려고 하였는데 그러면 출판이 어려워 질 뿐만 아니고 혼자 고생 다하고 총무라는 사람 이름으로 책을 출간하여 그 사람 좋은 일만 하게 되니 끝까지 위원장 놓으면 안 된다고 설득하여 천신만고 간신히 분쟁을 조정하고 위원장을 되찾으면서 총무 쪽 사람들과 각자 출판을 하기로 합의하고 지긋지긋한 만남을 결별하였다.

늦게 들어 온 사람들이 별것도 아닌 것에 먼지 털이 식으로 문제를 삼으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고 세월을 허비했는지 참 야속하고 허망한 심사가 아직도 남아있다.

민주주의라는 함정

박정희가 유신헌법과 통일주체국민회의로 민주주의를 아무리 참칭하고 농락하여도 양식있는 국민은 여전히 군사독재의 연장임을 다 알고 있었다. 그의 딸 박근혜가 51.6%를 득표하며 당당하게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민주주의가 합법적으로 도둑 맞았다고 크게 걱정하면서 사이비 민주주의를 어떻게 극복하고 물리쳐야 하는지 난감해 한 적이 있다.

2012년 박근혜 후보가 1위를 달릴 때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박근혜가 대통령 되겠죠?" 하면서 기분이 들떠 있었다. 나는 기분이 나빠 "박근혜는 아버지의 잘못을 피해자들에게 빌며 국민화합에 나서야지 대통령 나설 때가 아닙니다. 그래야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지요" 하고 되받아 쳤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지만 금방 내릴 때가 되어 다행이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지고지선의 이념이지만 주인이라는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사이비 민주주의, 중우 민주주의로 전락할 수 있는 허약하기 그지없는 정치제도였다.

그래서 언로가 제대로 올바르게 형성되지 않으면 오합지졸 민주주의가 되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론을 조작하여 민주적인 절차와 강력한 카리스마로 권력을 잡은 히틀러가 얼마나 세상을 힘들게 하였는지, 민주주의 대국 미국이 트럼프라는 야바위꾼에게 얼마나 일순간 허약하게 흔들렸는지 우리는 여실히 목도하였다.

우리나라도 촛불정신을 함양한 민주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자유라는 미명 아래 일베 등, 함량 미달의 유투브 언론들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교묘히 참칭하며 저질 방종스런 이념 공세, 과장 가짜뉴스를 겁도 없이, 양심도 없이 생산하며 퍼붓고 퍼 나르고 있지 않는가?

그리하여 정치적 지식과 식견이 부족한 젊은 세대를 유혹하여 반정부 계층으로 만드는데 일부 성공하였고 잘못하면 수구화, 파쇼화 된 사이비 민주주의로 다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는 위험한 현실이다.

그래서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되뇌며 민주주의가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호도하는 사람들이 무섭고 의심스럽다. 혹시 그들은 히틀러나 트럼프 같은 사람들 아닐까? 현대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대놓고 반대하는 정치인은 없다. 러시아도 북한도 민주주의를 말한다. 오히려 반민주적인 음흉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더 발언하고 주장하는지 모른다. 그들의 반민주성을 감추고 유혹하기 위한 술수로서 말이다.

민주주의는 도둑맞지 않도록 깨어있는 시민들이 부단히 감시하고 지켜내야 할 허약한 지고지선의 이념이다

청정한 소나무 처럼 깨시민의 각성이 민주주의를 지킨다
청정한 소나무 처럼 깨시민의 각성이 민주주의를 지킨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조형식 주주통신원  july2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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