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가녀린 불꽃들

림 (rim) 이라 불리는 바퀴살을 고리에 겁니다.

공장에서 일한지 3년째가 되었습니다. 작업은 단순합니다. 고리에 걸린 바퀴살은 컨베이어를 따라 도장박스를 진입합니다. 환갑이 넘은 동료가 림에 골고루 페인트가루를 묻히고 나면 림은 화로를 통과해서 다시 내가 있는 자리로 돌아옵니다. 저는 그 바퀴살을 다시 내려서 통칭 파레트 (표준어로는 팰릿 pallet) 라고 불리는 나무틀에 내려 정리합니다.

승용차의 바퀴살은 가볍지만 내가 일하는 공장은 지게차의 바퀴살을 만듭니다.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만큼 지게차의 바퀴살은 나사구멍을 제외하고는 빈틈없이 철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1직경 15인치 이상의 바퀴살들은 기계 없이 계속 작업하기 힘들만큼 무겁습니다. 바퀴살들을 고무 타이어에 부착시키는 고리(ring) 들도 작업해야 합니다. 세 가지나 되는 링의 종류를 한 번에 서너 개씩 모아 컨베이어에 뒤처지지 않도록 하루 내내 걸고 나면 방진복 속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습니다.

팰릿에 담긴 도장대기중인 철물들은 기하학적인 무늬를 이룬다.
팰릿에 담긴 도장대기중인 철물들은 기하학적인 무늬를 이룬다.

쉰 중반을 바라보지만 여기에서는 나이어린 축에 속합니다. 스무 명 남짓한 직원들 중에서 저보다 어린 사람은 단 셋뿐입니다. 소음과 분진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는 작업환경보다는 오래 일해도 미래를 꿈꿀 수 없는 현실이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년에도, 올해에도, 내년에도 어쩌면  10여 년 뒤에도 똑같은 일을 하고, 비슷한 월급을 받고 있을 테니까요.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는 제게는 이만한 직장도 쉽지 않습니다. 무거운 자재를 들고 임시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케이블을 잡고 트레이(tray, 케이블이 깔리는 길)를 따라 기어 다녀야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말마다 기차를 타러 역에 가지 않아도, 다른 작업자들과 같은 방을 쓰며 눈치껏 잠자리에 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퇴근하면 아내가 저녁을 준비한 채 맞아줍니다. 내 공간이 생겨 새벽 일찍 눈을 뜨게 되어도 음악을 듣거나 읽다 만 책장을 넘겨 볼 수도 있습니다. 회사를 이직하면서 생긴 변화이기는 하지만 회사가 변화의 중심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내가 일하지 않았다면 반쯤 줄어버린 수입으로 이 정도의 생활이나마 유지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유엔산업개발기구는 매년 세계제조업 경쟁력지수 CIP 를 발표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쟁력지수는 1990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중입니다. 올해는 독일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통계를 잠시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3년 전인 2018년의 경우, 10인이상의 중소기업은 숫자로는 제조업 전체의 97.9%를 차지합니다. 숫자로는 2.1%에 불과한 대기업은 부가가치의 62.2%를 차지함으로써 수적 열세를 쉽게(?) 극복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부가가치의 대부분이 반도체에 의존한 것임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하이닉스의 온라인 사보(社報)에 의하면 국내반도체 생산은 2019년 현재 전년도에 비해 7.9%증가했다고 합니다. 하이닉스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공장으로 알려진 이천의  M16을 올해 6월부터 가동시키고 있습니다. 삼성은 18조원을 들여 평택에 생산라인을 또다시 증설합니다. 예전에 평택에서 생산라인을 증설할 때는 저도 일했었습니다. 아래층에서는 공정이 돌아가는데 위층에서는 공사를 하는 바람에 많은 것들이 불편했었는데, 통계를 보니 다소 무리해보였던 확장공사의 의미가 다시 이해됩니다.

제가 다니는 공장은 지난주부터 주 4일 근무체제로 들어갑니다. 일이 힘들어 사람들이 그만두는데 수익률에 허덕이다 보니 새로 작업자를 뽑지 못했지요. 부족한 인원에다가 코로나까지 겹쳐서 납기일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잦다보니 원청은 거래처를 서서히 바꾸어버렸습니다. 좁은 시장의 특성상 새로운 거래처를 뚫기가 쉽지 않으니 한동안은 살면서 체험 못했던 나흘 일하고 사흘 쉬는 일정을 반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늘어나고 있는 빚의 속도를 줄이려면 사흘 동안 따로 일할 거리를 찾아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불꽃 꺼지지 않을 것 같은 제조업, 그 구석에는 바람에 쉬이 꺼질 것 같은 불꽃들이 넘실거립니다. 나이 먹어 이직할 수도 없는, 쓸 곳 적은 손기술만이 남아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냅니다. 그들마저 사라지고 나면 이 작은 빛들은 금새 꺼지겠지요. 낡은 기계의 소란스러움, 눈에 보이는 분진(粉塵)들도 금새 묻혀져갈 것입니다. 그 기억들이 그저추억으로 남아 얘깃거리가 될 수 있을까요? 바램만 안고 출근길을 기약합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김해인 주주통신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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