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져도 잊은 적 없는 5월의 초사흗날 알았다. 뒤늦은 깨달음이다. 그런 깨우침의 실마리를 내보인 6대 종단지도자 어르신에게 우선 장미 한 송이를 전하고 싶다.

나는 바이블을 아주 조금 이해한다. 예수님은 임금과 의인이 대화하는 장면을 소개한다. 의인이 임금께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고 하자 그 임금은 말한다. "진실히 네게 이르노니 미소한 형제 중에 하나에게 베푼 것 모두가 내게 한 것이니라, 내게 한 것이니라."(<가톨릭 성가, 41번>의 후렴; 마태오 복음서 25, 40). ‘미소한 형제’는 바이블 번역자에 따라 각각 ‘가장 작은 이’,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지극히 작은 자’ 등으로 조금 달리 표현됐다.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가 열린 지난 1월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들어서고 있는 모습.. 출처: 한겨레. 2021.05.03.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가 열린 지난 1월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들어서고 있는 모습.. 출처: 한겨레. 2021.05.03.

우리에게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은 바로 우리나라에서 천문학적 상속세를 내야하고, 그 세금 납부를 많은 언론매체가 나서서 걱정해주고, 3대에 걸쳐 경제 권력을 이어받은 재계 인사로 여길 법(法)하다. 그런 법은 현실에 상당히 가깝다. “6대 종단 지도자, 청와대에 이재용 부회장 특별사면 청원”을 표제로 잡은 기사(한겨레, 2021.05.03.)를 읽어보고 실감했다. 국내 ‘7대 종단 지도자’(대한불교조계종,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원불교중앙총부, 유교성균관, 천도교중앙총부,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조직인 (사)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소속 6개 종단 지도자가 특별사면 청원서를 지난 4월 30일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5월 3일 밝혔다. 이러한 상황이니, ㅇㅈㅇ을 지극히 작은 자가 아니라고 그 어느 누가 항변하겠는가?

존경하는 종교 지도자여! 사면 청원서를 제출한 4월 30일 무렵부터  6월 17일까지, 즉 약 50일 사이에 집으로 퇴근하지 못한 노동자가 몇 명인지 살펴봤는가? 아마 그분들의 망막과 고막은 평온했으리라. 지난 14일 <한겨레>의 사설을 보건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다. 지난 4월 22일 대학생 청년노동자 이선호(23) 씨가 평택항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로 화물 컨테이너 적재 작업을 하던 중 300㎏ 무게의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이후에도 50여 명에 이르는 산재 사망자가 발생했다. 

평택항에서 산재로 사망한 고 이선호씨 49재가 지난 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려 시민들이 분향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 20210617.
평택항에서 산재로 사망한 고 이선호씨 49재가 지난 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려 시민들이 분향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 20210617.

5월 들어서 보도된 사고재해 사망자는 8명에 이른다. 8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와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각각 40대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했고, 14일 강원 동해 시멘트 공장에서 크레인 사고로 하청업체 소속 60대 노동자가 사망했고, 19일 경기 화성에서 상수도관 교체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후진하던 굴착기에 치여 숨졌고, 20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배선 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노동자가 추락 사고로 숨졌고, 같은 날 전남 광양의 철강공장에서는 40대 노동자가 압착 설비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25일 인천 남동공단에서 300kg 철판 구조물에 노동자가 깔려 사망했고, 28일 인천 미추홀구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50대 일용직 노동자가 굴착기에서 떨어진 돌에 맞아 사망했다.

6월에도 사고재해 사망자는 끊이지 않았다. 15일 인천의 어느 신축 공사 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쓰려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인천에서는 올해만 25명의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각종 사고로 사망했다. 언론의 촉수에 잡히지 않은 사례도 적지 않으리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11월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산재로 사망한 99명의 영정을 의자에 놓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  2021.05.21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11월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산재로 사망한 99명의 영정을 의자에 놓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 2021.05.21

한편 (사)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의 누리집(www.kcrl.org)에 들어가니, ‘생명, 평화, 나눔, 사랑’을 멋지게 새겨 넣은 그림 3장이 번갈아 계속 눈을 자극한다. 설립 취지도 눈에 띈다. “본 협의회는 우리 사회의 생명경시풍조, 물질만능사상, ······, 종교 간의 갈등에 대하여 종교계가 이합해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해 나감으로써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달성하고 21세기 새 시대의 번영을 이룩할 기반을 구축하고자 한다.”

존경하는 종교지도자여! ㅇㅈㅇ 특별사면 청원서 제출 무렵 이후 약 50일간에 사고재해 사망자가 50여 명이라면, 어떤 형태로든지 반응해야 하지 않는가? 50일은 7.1주이다. 매주 7명이 사고재해로 사망한 셈이다. 주 5일 노동을 상정하면, 매일 노동자 1.4명은 사고재해 탓에 집으로 퇴근하지 못했다. 이런데도 그 흔한 성명서 하나 발표했다는 소식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분들이 움직여 반응하기에는 아직 사고재해 사망이라는 자극이 문턱값(threshold value)을 넘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어진다.

냉정하게 보면, ㅇㅈㅇ은 가장 안전한 곳에서 생활한다. 다칠 위험은 거의 없다. 사고재해 사망자 수가 보여주듯이, 현장 노동자는 업무 중에 생명을 잃을 위험이 매우 높다.

존경하는 종교지도자여! 산업재해(질병재해와 사고재해) 사망자 가정의 한숨과 탄식은 들리지 않지요. 산업재해 사망자와 그 유가족은 불쌍한 이웃이 아니라는 인식과 처신이지요. ‘생명, 평화, 나눔, 사랑’의 대상은 ㅇㅈㅇ이지요. 적어도 노동자는 아니지요.

 

편집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f61255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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