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오후 3시 서울 종로2가 '문화공간 온' 에서 교리문학회 주관으로 최태량 작가의 80세(=산수傘壽)를 맞이하여 회원들을 초청한 '시(詩) 가 있는 풍경' 행사가 열렸다. 최태량 작가는 젊은시절엔 장교로 월남전에 참여하여 전우들의 애환을 글로 표현하면서 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며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도 아픈 몸으로 이 자리에 참석 했는데, 남편의 활동을 뒷바라지 해주며 집안 살림을 도맡아왔다고 한다. 그 동안 집안을 잘 돌보지 못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시를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며,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것을 시로 표현해왔는데, 아내는 시를 쓰는것을 이해한다 며 지금까지 쌓인 미안한 마음을 이번 기회에 말끔히 씻어냈다며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부부의 남은 인생도 시를 매개 삼아서 정을 나누며 살아 가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 시 낭송
제목 : ' 내가 나에게 '
(시 : 최태량 / 낭송 : 김이경)
십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오 / 어느 길거리에 나뒹굴어 받지 못할지라도/ 내가 나에게 마음을 맡기오 / 거저 준 하늘도 섬기지 못하고 / 지나는 눈발이나 받아 쥐고 있어다오 / 그동안 여행이란 놈이 찾아와 꼬드기면 / 알프스 융프라우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와 / 세랭게티 사파리에서 기린과 춤을 추겠소 /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하늘 거울을 볼 것이요 / 시간이 남거든 극지에 들어가 / 유빙을 타고 구상나무를 심고 올 참이오 / 나는 숲속 한 마리 새 / 얼굴을 당겨 '너', 하고 불러 줄 사람은 없지만 / 밤도 색깔이 있어 내 밤은 지워지지 않았다오 / 이제는 강가에 배를 묶어두고 피리를 불겠소 / 그 강을 건너지 말고 그믐달 이 서럽게 울던 날 / 내 시를 읇어줄 그 사람을 찾아야겠소.
제목 : '화무십일홍'
(시 : 황정희 / 낭송 : 황정희)
몸속 꽃 피우느라 / 봄꽃 농사 놓치신 아버지 / 뜰 안 지천이던 꽃들 사라졌네 / 갈비뼈 아래 온 실 속 / 으르렁 으르렁 꽃들 번지는 동안 / 아버지는 내리 잠만 주무셨네 / 꽃 피고 새우는 철 잊으셨네 / 아버지 몸에 유채 꽃들이 번지네 / 노랗게 시들어가네 / 일장춘몽 덧없이 피었다 지네 / 숨이 돌고 피가 돌고 뼈가 붙는 / 숨살이 피살이 뼈살이꽃 따로 없다고 하시던 / 꽃밭지기 등 굽은 아버지 / 화무십일홍 / 열흘 꽃처럼 앓다 가시네 .
제목 : 비 와 悲
(시 : 신형주 / 낭송 : 신형주)
소나기가 온다 / 재수하는 아들 마중하러 / 우산 들고 나가는데 / 남편이 한마디 한다 / 다 큰 사내 녀석 이 비 좀 맞으면 어때서 / 정거장 에서 기다린다 / 우산을 썬는데도 사납게 달려드는 비 / 신발이 젖는다 / 아들이 살아가며 맞아야 할 / 悲의 총량을 / 몇 미터만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 온종일 피곤함에 흠뻑 젖은 아들이 내린다 .
제목 : 혈통
(시 : 박 희자 / 낭송 : 박 희 자)
시골집 잘도 크는 / 어린 가죽을 꺾어다 / 가죽 전을 부쳤다 / 남편은 땀 냄새가 난다고 안 먹고 / 큰딸은 먹 냄새가 난다며 안 먹고 / 세째 딸은 흙냄새가 난다며 안 먹고 / 둘째 딸은 땀 냄새 먹 냄새 흙냄새가 다 섞인 가죽 냄새가 난다면서 희한하게 잘 먹었다 /
제목 : 순 례
(시 : 강 다연 낭송 : 강 다연)
새가 날아가는 저녁을 좋아해요 / 툰드라로 가는 펠리컨 날개 것에 영혼을 실어 / 먼 곳으로 가고 싶어요 / 명랑한 세상에 검은 나이테를 감아올리며 / 당신을 더듬어 볼래요 / 모과나무 꽃피면 제 못생긴 목숨 내놓을 때 / 누린 살 냄새가 진동한다는 걸 몰라 어요 / 모래 귀퉁이 구르는 햇덩이를 봐요 / 파도를 타고 가면 이번 생도 같이 가 / 못다 부른 노래를 두고 / 나는 한 줌 노래로 흩어져도 좋겠어요 / 사막 가운데서 넘어진 자와 / 가시에 찔러 붉은 눈물을 흘리는 자들을 위해 / 모든 순례를 대신에 할 거예요.
제목 : 초록 속에서
(시 : 이 정희 낭송 : 이정희)
우리는 초록 속에 와 / 초록을 자라 본다 / 즐거움이 산 만큼 일렁인다 / 산들도 초록이 찾아오니 둥글어졌다 / 초록의 먼 길을 돌아 와 들여다보니 / 초록, 처음인 듯 / 너는 귀하고 귀하다 / 햇빛에 젖어 더욱 싱그럽다 / 구김살 없는 초록이 웃는다.
~ 편집 : 허익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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