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알았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다.

수주촌의 우두머리 벌보말, 일리촌의 우두머리 구리내. 이리촌의 우두머리 파로, 이 세 사람이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왕이 불렀다. “내 아우 두 사람이 왜와 고구려에 인질로 가 돌아오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보고 싶은 정이 그치지 않는데 살아 돌아오게 할 방법이 없겠는가?” 세 사람이 한결같이 대답했다. “신들이 듣건대 삽량주의 우두머리 제상이 용감하며 지모(智謀)에 능하다 들었으니 근심하심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삼국사기 권45, 박제상전)
聞水酒村干伐寶靺一利村干仇里迺利伊村干波老三人有賢智召問曰吾弟二人質於倭麗二國多年不還兄弟之故思念不能自止願使生還若之何而可三人同對曰臣等聞歃良州干堤上剛勇而有謀可得以解殿下之憂(三國史記--四十五卷朴堤上)

1.
그래서 당신을 왕께 추천해 달라는 것이오?”
벌보말 (伐寶靺)이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앞에 부복하고 있는 중년의 사내는 허리를 굽히고 있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다.그러합니다. 실성 마립간이 죽고 내물 마립간께서 즉위하였으니 저를 비롯한 석씨계 몸담을 곳이 사라져버렸지요. 또한 이 사람은 전대 마립간의 부마도위 (駙馬都尉), 처와 장성한 자녀들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벌모발의 미간이 씰룩거렸다. 제상 (堤上)이라 불리는 이 사내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자신의 처지를 이토록 곧이 고백하는 것일까. 벌모발이 입을 열지 않자 잠시 침묵하던 사내는 다시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여기 이 사람이 오래 전 한직으로 밀려나 지냈습니다. 그 덕에 고구려와 왜의 사정을 싫도록 듣고 알게 되었답니다. 마립간께서는 고구려와 왜에 붙들려 있는 왕자님들을 돌려받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하문을 내리시면 이  사람을 추천해주십시오. 이 사람은 두 나라의 사정을 잘 알뿐더러 처지가 바람 앞에 등불이니 스스로 적임이라 생각합니다. 구리내님과 파로님을 잘 설득하시어 이 사람에게 일을 맡겨주신다면 은혜를 잊지 않을 뿐더러 왕의 신임 또한 한층 깊어질 것입니다.”
비로소 벌모발이 남자를 똑바로 보았다.
족하 (足下)의 사람됨에 대해서는 충분히 들어 알고 있다오.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나면 서라벌에서의 입지가 달라질 텐데 그 때 족하의 칼날이 나를 향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약조할 것이오?”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은 성씨 뿐 아니라 목숨도, 피붙이도 내놓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 사람이 영원히 사는 길이요, 처자가 비천한 처지로 떨어지지 않는 길이요, 태어나고 자란 이 땅이 낯선 이들의 창칼에 쓰러지지 않는 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아들 또한 없으니 따로이 걱정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2.
삼국사기의 박제상, 삼국유사의 김제상, 일본서기의 모마리 (毛末利)는 같은 인물을 지칭한다. 두 역사서에서 언급한 성씨가 서로 다르고, 일본 사서에는 성씨가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것은 제상(堤上)'이라고 불리는 인물의 성씨가 김씨도 박씨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나 성을 가질 수 없었던 사회, 왕의 사위가 될 수 있을 만큼 명망 있는 가문에 성이 없을 리 없다. 신라에서 박씨와 김씨를 제외한다면 토착 가문이 아닌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석(昔)씨 가문만이  제상이 속했을 가문의 후보로 남는다.
제상(堤上)의 활약시기는 석씨계의 몰락시기와 겹쳐져 있다.
신라왕의 계보를 보면 석씨계의 마지막 왕은 16대 홀해 이사금이다. 그의 뒤를 이어 김씨계의 내물 마립간이 17대 왕으로 즉위한다. 제상을 대마도와 고구려에 보낸 눌지 마립간은 내물 마립간의 맏아들이다
더해서 석탈해의 신화는 우리에게 석씨성의 원류는 신라사회의 외부에서 진입한 해상세력임을 알려준다. 그 내력은 시간이 흘러도 가문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3.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
혼인하기 전 아비는 그녀를 불러놓고 말했다.
내 어머니는 석씨가문의 사람이다. 석씨는 먼 옛날 배를 타고 이곳에 흘러와 기반을 잡았다. 그러나 이미 터를 잡고 있던 이들은 우리를 반기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왕위에 올랐지만 이제 한계에 온 것 같구나.”
7척이 넘은 아비의 구부러진 어깨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너와 혼인하기로 한 이 또한 내 외가의 가문에 속한다. 하지만 그는 총명하니 기울어져가는 싸움에 힘을 보태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를 삽량주 지금의 양산으로 내려보내려 하니 그곳이라면 네 일생은 행복할 것이다.”
아비의 바램은 실행되지 않았다.
아비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죽었고, 남편 또한 고구려를 거쳐 일본으로 가 죽을 것이다.
살을 부대끼며 몇 십년 살아온 남자는 그때의 애비와 같은 표정으로 떠나며 말했다.
나를 죽은 사람으로 생각하시오. 약조된 바가 있으니 두 딸아이와 당신은 비천해지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지금 집을 나서면 다시는 집에 들르지 못할 것이며, 바다를 건너가 있더라도 소식을 보낼 수 없을 것이오.”
처음부터 그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를  더욱 사랑한다.
치술령(鵄述嶺)의 신모(神母)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도 그러했고 얻은 후에도 내내.
 

울주군에 위치한 박제상 기념관은 한적한 곳에 위치한다.  ​​​​​​​정자옆의 길은 그의 위패를 모신 치산서원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울주군에 위치한 박제상 기념관은 한적한 곳에 위치한다.  정자옆의 길은 그의 위패를 모신 치산서원으로 향하고 있다.


​​​​​​​나 또한 그의 충(忠)을 믿지 않는다.
그의 사랑만을 믿을 뿐이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해인 주주통신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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