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날씨가 무척 덥네요.
그러고 보니 내일이 초복이네요.

수그러들 줄만 알았던 코로나가 7월 들어 더욱 기승을 부려 마음이 불안한데, 날씨마저 후덥지근하니 더욱 몸과 마음이 무겁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잘 버티고 계시죠?

참, 며칠 전에 친구 도연(道然, 최공웅, 초대특허법원장)이
"한송, 나 엊그제 인사동에서 열린 김충현 탄신 100주년 특별전에 다녀왔어. 위 '明通公溥'는 일중 선생님 마지막 작품이라네." 사진과 함께 카톡 보내왔더라고요.

명통공부(明通公溥)
명통공부(明通公溥)

"도연, 일중 김충현 탄생 100주년 기념전 다녀오셨군. '明通公溥'! 선생님 마지막 작품이라고! 고맙네!"

도연은 저와 중. 고등학교(서울 경동) 동창이고,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1921-2006) 선생님은 1950년대 당시 저희 은사님이세요.

2021년 6월 8일(화) - 7월 6일(일) 한 달간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선생님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렸어요. 이 '明通公溥'는 거기 전시된 작품으로 선생님이 1997년 파킨슨병으로 절필하기 전에 남기신 마지막 작품이더라고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일중 김충현 선생님은 근대 우리나라 서예계의 대표로 그의 예술세계에서 보이는 큰 특징은 서체의 혼용이에요.

특히 한글의 요소와 전(篆). 예(隸). 해(楷). 행서(行書)를 모두 활용해 화면을 조화롭게 구성한 그의 작품은 1970- 80년대에 서예가 미술작품으로서 나가야할 방향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근대 이전의 글씨와는 다른 맥락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선생님, 오랜만에 선생님 글씨를 대하니 문득 학창시절 생각이 나더라고요.

선생님, 일중 선생님 별명이 무엇인지 아세요? 모르시죠. 선생님께만 살짝 알려드릴게요. 아셨죠!

당시 저희들은 선생님을 '핏대'라 불렀어요. ㅎㅎㅎ
왜냐고요? 선생님은 성품이 호탕하시고 얼굴색이 늘 약주를 잡수신 듯 붉으래 하셨어요. 마치 얼굴에 핏발이 선 듯...

그래서 우린 선생님을 '핏대'라 불렀어요. 이 핏대를 점잖게 '血竹'이라해 '혈죽 선생님'이라 호칭하기도 했어요. ㅋㅋㅋ

목소리가 우렁차시면서도 한편 아쟁을 타는 듯 째지기도 하셨어요. 큰 풍채에 뒤뚱뒤뚱 걸으시는 발소리는 멀리서도 알아챌 수 있어 선생님이 저만치서 오시면 벌써 알아차리고 "핏대 온다!"하면 모두들 놀다가도 제자리에 가서 앉았어요. ㅎㅎㅎ

당시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고문>을 가르치셨어요. 강의 때 마다 자주 하시던 "주를 보시오!"가 지금도 귀에 쟁쟁해요.

파킨슨병으로 손목에 힘이 없어 어린애 그림 그리듯 쓰신 전서체 '明通公溥'를 보니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선생님, 이 글귀가 어디에서 나온 지 아세요?

그래요? 맞아요! <주자통서>(周子通書>에 나오는 말예요. 주자(周子)라고 하니 어떤 사람들은 주희(朱熹)인 줄 잘못 아는데, 여기 주자(周子)는 <태극도설>(太極道說)을 쓴 북송 때 유학자 염계(濂溪) 선생 주돈이(周敦颐, 1017-1073)를 말해요.

그는 그의 저서 <통서>에서, " '탁월함은 배울 수 있습니까?' '있다' '그 요체가 있습니까?' '있다' 그걸 청해 듣기를 원합니다.

마음을 하나로 통일 하는 것이다. 하나로 통일한다는 것은 욕심이 없는 것이다. 욕심이 없으면 고요할 때 텅 비고, 움직일 때는 곧고 바르다. 고요할 때 텅 비면 밝고, 밝으면 통한다. 움직일 때 곧으면 공명정대해지고, 공명정대하면 넓다. 밝아서 통하고, 공명정대해서 넓어지면 거의 탁월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周子通書曰聖可學乎?. 曰可. 有要乎?曰有. 請聞焉. 曰一爲要一者無欲也. 無欲則靜虛動直, 靜虛則明, 明則通, 動直則公, 公則溥, 庶矣乎!)

선생님, 여기서 고요할 때 텅 빈다는 것은 마음 그 자체의 상태를 말한 것이고, 고요하고 평온해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틈타지 않는 상태가 되면 하늘의 이치와 통하게 된다는 뜻예요. 그러면 세상의 이치를 깨칠 수 있기 때문에 어두운 곳이 없이 밝아져요. 움직일 때 곧다는 것은 마음이 겉으로 들어날 때의 사람이 걸어야 할 올바른 길, 즉 행동이 올발라야 한다는 뜻으로 천명(天命)과 인성(人性)의 이치를 분별하여 도의 큰 근본을 환히 알아내고, 지행(知行)을 병진하는 공부를 하여 명통공부(明通公溥)하게 되고, 경(敬)과 의(義) 이 두 가지가 다 견지하게 되면 속이 곧고 겉이 반듯하게 된다는 말로 이는 당시 성학(聖學)을 공부하는 길잡이였어요.

선생님, 너무 말이 어려워졌죠?!

'공정'이 요즘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른 이때 이 '明通公溥'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선생님, 먼 길을 앞당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두르지 않고 쉬엄쉬엄 걸어가는 것이라 했어요.

自强不息!

당장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욕심을 버리고 쉬엄쉬엄 가다 보면 어느덧 도착지가 보이겠죠.

선생님, 도연에게 카톡 받은 뒷날 그와 함께 수원 근처 광교 호수공원 걸으며 옛 은사님이 남기신 마지막 유작 이 '明通公溥' 묵상하며 하루 즐겼어요. 옛 학창시절로 돌아가.

선생님, 어느새 마음에 점찍을 시간 됐네요.
선생님, 끝까지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배려에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신축 7월10일 초복 전날
김포 여안당에서
한송 포옹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양성숙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통신원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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