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기억은 철거한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기억관(기억 공간)을 보존하라.’
'오세훈 시장은 일방적인 철거 통보를 철회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들어라!'

 

(사진1) 서울시의회  1인시위
(사진1) 서울시의회 1인 시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7년 3개월 긴 시간이 흘렀다. 또한, 2017년 3월 10일 국기 문란-국정 농단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판결로 탄핵당하고, 3월 31일 구속되었다. 구속과 함께 깊은 심연에 침몰해 있던 세월호도 1,090일 만에 인양했다. 세월호를 영원히 수장 시켜 진실을 감추려고 했던 적폐 세력의 음모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1,700만 촛불의 힘으로 진실을 인양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그해 5월 10일 대선에서 당선된 촛불 정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여 본격적인 진상 규명 시작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 304명 국민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사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4.16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단 하루도 그날을 잊은 적이 없다. 세월호에 갇힌 학생과 시민의 무사 귀환, 진상규명특별법 제정 1000만인 서명 운동, 진상조사위원회 출범과 청문회, 세월호 참사 진상 조사 연장과 사참법 통과를 위한 무기한 국회 농성, 세월호 특검 요구와 임명 등 한시도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서 함께하지 않은 날이 없다.

이 기간에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와 진상 규명을 위해서 유가족과 촛불이 하나뿐인 목숨을 바쳐 어둠을 밝히려고 했는지.... 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다. 지면을 통해서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낱낱이 진상이 규명되는 날, 별이 된 아이들과 함께 지켜주지 못한 부모가 아닌 자랑스러운 부모로, 아이들의 삼촌이 되고 언니, 오빠가 되어 부활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날이 갈수록 무더위는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게다가 코로나 19 확진자가 1주일째 1,000명대로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엄중한 시기에 1인 시위를 위해서 서울시의회 앞에 도착하니 4.16연대 채은 활동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상황에서 1인 시위 주의 사항과 방법에 대해서 듣고 동행한 정영훈 대표(촛불 혁명 완성 책불 연대)는 서울시청 정문으로 이동하고, 나는 오전 11시 30분에 피켓을 들고 서울시의회 정문 앞에 섰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7년이 지났는데 생각해 보니 이곳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한 것은 처음이다. 서울시의회는 세종대로 태평로 1가 125번지에 있다. 맞은 편에는 서울시청이 있고, 그 옆에 프레스센터와 언론중재위원회가 있다.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시의회의 역할과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프레스센터와 분쟁 발생 시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역할이 겹쳐지면서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2) 부민관 의거 터비
(사진2) 부민관 폭파 의거 터 비

 

서울시의회 건물은 일제강점기 1935년 건립되어 부민관 또는 경성부민관으로 사용되었고, 해방 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서울시의회로 이용되고 있다. 새삼스럽게 건물의 연혁을 말하는 것은 이곳에서 찾아야 할 자랑스런 역사에 대해서 기억을 되살려보기 위해서다.

이곳 입구와 도로 쪽에는 두 개의 기념비가 건립되어 있어서 그날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하나는 대일 항쟁기 항일 무장 투쟁 대미를 장식한 부민관 폭파 의거를 기념하기 위해서 2016년 12월 서울시에서 세운 ‘부민관 폭파 의거 터’ 기념비와, 다른 하나는 4.19혁명 50주년 기념 사업회에서 2010년 12월 10일에 건립한 ‘4.19혁명의 중심지’ 비석이다. 서울시의회에 가 보면 누구나 접할 수 있고 기념비를 읽으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는데 이렇게 소개를 하는 이유는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킨 인연과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의 기억과 기록이 모여 사회와 국가의 역사가 되는 것이라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서 역사의 장으로 한 걸음 들어가 보자.

민족 반역자 악질 친일파 박춘금이 1945년에 조직한 대의당이 태평양전쟁 말기에 동족을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동원하고 국내와 해외에 있는 항일 애국지사 3만여 명을 암살하기 위한 궐기 대회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개최되었던 장소이다. 위와 같은 친일파들의 반민족 행위를 입수하고 1945년 7월 24일 강윤국, 류만수, 조문기 애국지사 등 대한애국청년당 독립투사들이 설치한 폭발물을 터트려 대회를 무산 시켜 친일파의 만행을 사전에 차단한 부민관 폭파 의거가 발생한 곳이다. 조문기 애국지사는 한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통일 정부 수립, 그리고 친일파 청산을 위해서 헌신한 선생이다. 필자와 인연은 선생이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1999~2008)으로 취임하여 서거할 때까지 10년 동안 활동할 때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개척하는 청년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한 인생의 이정표를 밝혀 준 선생이다. 76년 전 부민관 폭파 의거 애국지사를 생각하면서 1인 피케팅을 하니 무더위보다 더 뜨거운 기운이 샘솟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고 뜨끈하다.

(사진3) 4.19혁명  중심지비
(사진3) 4.19혁명 중심지비

 

또 하나의 인연은 60년대 후반에 출생한 필자가 4.19혁명과 무슨 인연이 있고,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스토리를 전하면 다음과 같다. “둘이 걸으면 스승이 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성현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1993년 처음으로 민족문제연구소와 인연을 맺고 2004년까지 민족문제연구소 서울 남서지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양주시로 이사하여 만난 홍갑표 선생과의 인연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홍갑표 선생이 서울대 사범대학 재학 중 1960년 3.15부정선거에 분노한 마산시민의 의거 때 희생된 김주열 학생의 주검에 폭발한 학생 시민의 항쟁이 들불처럼 번져 4.19혁명 그날 경무대(청와대)까지 선봉에서 ‘3.15선거 무효’, ‘학생의 죽음에 보답하라’, ‘민주주의 사수하자’ 구호를 외치고 진격할 때 경찰의 발포로 수많은 학생과 시민이 학살되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그래서 4.19혁명에 대한 진실과 과정을 현재의 관점에서 그날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민주주의의 소중함과 독재 권력의 폭력성과 야만성에 대해서 각성할 수 있도록 참교육을 해 주신 사상의 은사님이다. 요즘 건강이 좋지 못해서 걱정이 많지만 회복하시어 생생한 경험담을 오랫동안 청년 학생에게 들려주시길 두 손 모아본다.

1인시위를 시작하고 30분 정도 지나니 온몸이 땀에 젖고 등줄기 따라 땀이 흘러내리고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불편하였다. 그러나 세월호 기억 공간을 7월 26일까지 철거하겠다고 통보한 오세훈 시장의 불통과 기억 지우기에 분노하는 마음이 크니 육신의 불편함은 그저 낙엽처럼 가벼울 뿐이다.

9년 동안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서울시를 세계적인 명품 도시로 만들고, 약자와 서민의 삶을 살핀 고 박원순 시장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죽음으로 치러진 보궐 선거에서 10년 전 무상 급식을 반대하다 스스로 시장직을 내팽개친 오세훈이 다시 시장이 된다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와신상담 끝에 10년 만에 시장에 당선되었으면 과오를 뒤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반추하고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가지고, 서울시민의 삶의 질 향상과 시급한 코로나 19 감염 예방과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로 고통받고 있는 서민과 소상공인 등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기에도 시간이 없는데 뜬금없는 세월호 기억 공간 철거를 통보하는 구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낡은 과거의 형태를 되풀이하겠다는 선언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번 세월호 기억 공간 철거 통보는 불통을 넘어 지난 7년 동안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는 시민의 상처를 덧나게 하고, 잊고 싶은 기억을 소환하는 자충수를 둔 패착임이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실책을 인정하고 철거 통보를 철회하고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고 상처 입은 서울시민을 위해서 세월호 기억 공간을 확충하고 추모비 등 상징물을 건립하여 시민을 위로하는 보수의 품격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인가?

1인시위 소회를 정리하면서 오세훈 시장에게 공개적으로 묻는다.
하나. 광화문 광장 세월호 기억 공간을 일방적으로 철거한다고 세월호 참사가 잊힐 것 같은가?
둘. 세월호 기억 공간을 철거한다고 박근혜 정권에서 단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한 무능과 잘못이 잊힐 것 같은가?
셋. 세월호 기억 공간을 철거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1,700만 촛불이 동의하고 인정할 것으로 판단했는가?
넷. 세월호 기억 공간을 강제로 철거한다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250명 단원고 학생과 304명 국민이 잊힐 것 같은가?

10년 전 우리 아이들 밥 한 끼 주는 무상급식을 반대하다 시민이 선택한 시장직을 내팽개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성찰과 반성을 통한 환골탈태가 우선이다. 시장에 취임하고서 한다는 것이 고작 기억을 지우고, 나아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과 시민을 능멸하고 유가족과 촛불의 가슴에 아픔을 덧나게 하는 것이 시장으로서 할 짓인가? 그대의 자성과 반성을 강력히 촉구한다.

“기억 공간을 철거한다고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기억 공간이 더 많이 만들어질 뿐이다.”

-2021. 7. 15 촛불시민 김재광-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김재광 주주통신원  gamkood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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