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오늘은 딸 다뢰 스콜라스티카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딸은 지난 6월 10일 외손녀 은채 줄리아와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

딸이 코로나 사태로 해외여행이 어려운 중에도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한국에 온 것은 혼자 살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보기 위해서다. 아울러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졸업기념 여행을 하는 딸의 보호자로서 겸사겸사해서 왔다.

외손녀 은채 줄리아는 올 6월, 고등학교(California High School)를 졸업하고, 졸업기념 여행으로 한국출신 부모를 둔 친구들과 함께 모국인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들만 보낼 수 없어 엄마들이 보호자로 따라온 것이다.

귀국하자마자 바로 2주간 자가격리를 했다. 그 뒤 한 달간 자유롭게 친구들과 관광을 즐겼다. 그러니 꼭 44일 만에 가는 것이다.

오는 날 딸에게 "혜원아, 나는 하던 대로 내가 밥해 먹을 터이니 아버지 걱정 말고 너희들은 너희들끼리 편리한 대로 챙겨 먹어라"했다. 그건 먼 여행에서 돌아온 딸에게 수고를 끼쳐주지 않으려는 점도 있지만, 나의 생활에 딸의 도움으로 리듬이 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딸이 있어도 매일 예전처럼 밥은 내가 안치고 반찬만 딸이 챙겨줬다.

허나, 딸이 떠나는 그날 아침엔 나는 밥을 안 안쳤다.
"아빠, 밥 안 해요? "그래, 오늘은 네가..."
딸은 아빠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밥을 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딸이 해준 밥을 먹었다. 딸은 아빠 옆에서 밥 먹는 아빠를 바라본다. 마음이 뿌듯한가 보다.

만일 오늘 아침도 내가 하고 딸이 떠난 뒤 다시 아빠를 볼 수 없게 된다면 딸은 아빠에게 밥 한 끼 못해준 게 얼마나 한이 될까? 평생 가슴에 못이 될 것이다. 이렇게 나는 떠나는 날 아침에 딸이 해준 밥을 먹었다.

그리고 조반이 끝나자 바로 외손녀에게 대학입학 축하금을 수여했다.

우리 경주정씨 양경공파 황산공종중(회장, 정우열)에서는 올해부터 딸 자손에게도 대학입학 축하금을 주기로 했다.

대부분의 문중이 아들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우리 문중에서는 아들, 딸 구별 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대우를 한다.

외손녀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미국 동부지역 로드아이랜드주의 주도 프러비던스에 위치한 예술대학 로드아이랜드스쿨 오브 디자인(Rhode Island School of Disign, 약칭 RISD '리즈디')에 입학했다.

딸은 준비가 끝나자 어제저녁부터 꾸린 짐을 차에 싣고 공항으로 일찍 떠났다.

그때 난 떠나는 차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언제나 헤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텅 빈 집으로 들어와 혼자 방 정리를 했다.

오후 8시, "아빠, 비행기 이륙했어요."

딸의 카톡이다.

"드는 건 몰라도 나는 건 안다"고 했던가?!

어느새 밤이 깊었다.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 난 미친 듯 벌떡 일어나 테라스로 올라갔다.

"저기 딸이 탔겠지?"

멍하니 비행기를 쳐다봤다.

다시 내려와 잠을 청했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겨울 해수욕장에 온 기분이다. 쓸쓸하고 허전하다.

뜬눈으로 지새우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카톡!' 딸의 카톡이다. "아빠, 무사히 잘 도착했어요." "휘~" 안도의 한숨이 난다. "그래, 장거리 비행하느라 수고했다. 들어가 푹 쉬어라!"

손녀들과 황톳길 걸으며(왼쪽 친손녀 세린, 오른쪽 외손녀 은채 주리아)
손녀들과 황톳길 걸으며(왼쪽 친손녀 세린, 오른쪽 외손녀 은채 주리아)

누가 딸을 애물단지라 했던가?!
문득 아내 생각이 난다. "여보, 딸 갔어!"

신축 7월16일
김포 여안당에서
취석 한송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통신원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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