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수요일, 중복! 체감 온도 40도, 36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다.

오늘 세홀회(三鰥會, 세 홀아비 모임)에서는 우영(又英, 조동원 교수)의 제안으로 충남 태안반도 천리포 수목원을 찾기로 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으로 1979년 귀화한 민병갈(1921-2002) 박사가 설립했다는 이 수목원에 관한 이야기는 그동안 신문 지상이나 TV를 통해 많이 들었지만 한 번도 찾아볼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오늘 이 수목원 방문은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우리는 아침 7시 김포를 출발, 중간 시흥 하늘 휴게소에서 어묵 우동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오전 11시쯤 목적지 천리포 수목원에 도착했다. 예전 같으면 붐벼야 할 주차장이 한산하다. 바로 표를 끊고 들어갔다. 성인 9,000원인데 경로 우대 6,000원이다.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수목원! 문을 들어서니 작은 연못에서 다양한 모습의 수련들이 수런수런 속삭이며 우리를 반긴다. 범산(凡山, 이경회 한국환경건축연구원 이사장)이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수목원에서의 첫 포옹이다.

수련이 수런수런 속삭이며
수련이 수런수런 속삭이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다양한 수국들이 멀리 가까이에서 서로 봐달라고 손짓을 한다. 건생초지원, 남이섬수재원, 암석원, 동백나무원을 지나 큰 연못 정원으로 갔다. 연못을 배경으로 우리는 기념사진을 한 컷 찍었다.

연못을 배경으로 세홀
연못을 배경으로 세홀

우영은 봄이면 전 세계에서 수집한 다양한 목련이 형형색색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한다. 이때 목련 축제가 볼만하다 하면서 내년 봄에 때맞춰 오자 한다. "그래, 좋아!" 우린 내년 봄 목련 축제 때 다시 오기로 약속했다. 그땐 목련 외에도 수선화와 동백나무, 마취목, 만병초 등이 무리지어 피어나 장관을 이룬다 한다.

우리는 다시 추모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임산 민병갈 박사 동상
임산 민병갈 박사 동상

'임산 민병갈 박사 1921-2002' 동상!

우린 동상 앞에서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잠시 묵념했다. "당신은 영원한 한국인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다시 '안녕, 나무야' 카페를 오른쪽으로 끼고 민병갈 기념관으로 올라갔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잃어 홀로된 어머니를 고향에 둔 채 이국땅 한국에서 혼자 살았다. 그는 3년 동안 어머니를 졸라 한국 사람으로 귀화했다. 마침내 어머니도 자식의 뜻을 따라 이곳 천리포 수목원에서 삶을 사시다 105세 나이로 생을 마감하셨다.

자료실에 어머니의 사진은 있어도 부인 사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기념관을 나와 다시 해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갔다. 얼마쯤 가니 언덕에 한옥 카페가 있다. 추녀엔 능소화가 한창이다.

언덕 위에 한옥 카페
언덕 위에 한옥 카페

"차 한잔하고 가세!"
누군가의 제안에 우린 카페로 들어갔다.

확 트인 넓은 바다. 망망창해(茫茫滄海) 그대로다. 바다 위에서 섬이 손짓을 한다. 또 옆 푸른 숲이 윙크한다. 머리를 드니 푸른 하늘이 빙그레 웃는다. 온통 푸른 세상이다.

우린 그 푸른 바다와 숲을 배경으로 한 컷 '찰칵!'했다.

카페 앞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카페 앞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뭐 할까?"
"망고 생주스!"
망고 주스를 주문했다.

점원 아가씨가 망고를 정성껏 믹서에 간다. 아가씨 모습이 너무 진지하다. 아가씨 마음도 푸른 바다, 푸른 숲처럼 푸를 것만 같다. 그래서 내가 아가씨를 향해 "아가씬 가슴이 파랗겠어요?" 했다.

그때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가씬 정색하며 "그건 성희롱인데요!" 한다. 난 당황했다. 성희롱! ....

그때 옆에 있던 김 실장이 "그건 푸른 바다와 숲을 늘 보니 아가씨의 마음도 맑고 푸르겠다." 하신 어르신의 문학적 표현이에요." 했다.

그제야 "그런 걸 전 '가슴'이라 해서 오해했네요. 죄송합니다" 하며 겸연쩍어했다.

문득 지난번 딸이 한 말이 생각났다. "아빠, 요즘 밖에 나가시면 젊은 사람들에게 말조심하셔야 해요." 하던 말이.

푸른 바다. 푸른 숲, 그리고 푸른 하늘, 온통 세상이 모두 푸르다. 그러니 그런 속에서 생활하는 아가씨의 마음이 얼마나 맑고 푸르겠는가!? 그래서 난 그 아가씨에게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말한 것인데, 이를 성희롱으로 받아들인다니...

새삼 세대 간에 감성적 차이가 너무 크다는 걸 느꼈다. 왠지 마음이 우울했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구나! 해학이 없는 세상! 앞으로 말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자꾸 아가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집에 돌아와 줄리엣 자매에게 오늘 겪은 일을 이야기했더니, "한송 선생님은 아직 마음이 젊으시네요!" 한다.
우린 모두 한바탕 웃었다. ㅎㅎㅎ

신축, 7월23일, 중복 다음날
김포 여안당에서
취석 한송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통신원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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