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산 천지(출처 : 한겨레신문, 이길우 기자, 2017.11.2.)
    배두산 천지(출처 : 한겨레신문, 이길우 기자, 2017.11.2.)

한반도를 아우르며
드넓은 만주를 거느리고
장엄하게 중심에 솟아
압록 두만의 젖줄을 흘려 먹이며
고조선부터 고구려까지
수천 년을 살찌우고 키워 왔는데

아! 고구려 쓰러지고
중앙에 흐르던 젖줄은
중심을 잃고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네

슬픔이 분노로 끓어올라
백두정상 분화하여
피 용암 하늘로 하늘로 치솟아 토해
시뻘건 용암, 온 대지를 뜨겁게 덮고
컴컴한 화산재 수수년년
대지에 켜켜이 내려앉아
부끄러운 역사를 묻어 버렸다.

아! 세계의 중심이 되리라고
그처럼 거룩한 백두제단을 쌓았건만
그토록 맑고 순결한 압록 두만 성수로 흘렀건만
이제는 끝자락 변경이 되어
압록 두만 강변은 서로 다른 땅으로 울고
백두성산은 경계선으로 조각나 버렸다.

아! 한반도 허리 잘린 것도 통한이거늘
수치스런 변두리로 바뀌어
수천 년 젖줄의 천지가
천년의 눈물길 시원이 될 줄이야

나는 수수천년 전 고구려 사비성읍이었던
대련에서 이천 리 넘게 달리고 달려
백두산정에 올라 천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못난 후손으로 한스러워 눈물을 훔쳤다.

그 먼먼 옛날 고구려의 광활한 땅이었던
지금은 낯설고 말 다른 남의 땅이 되어버린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 사이사이 붉은 지붕을 이고
옹기종기 모여 농민 주택에 살고 있는
그 먼먼 조상들은 강성한 고구려의
자랑스런 백성이었을
지금은 남의 나라 인민으로 살고 있는
언어가 다른 후손들을 보았다.

단동의 압록강변에 줄지어 서 있는
삼십 층도 넘는 아파트들은
강 건너 신의주 땅을 삼킬 듯이 내려다보고
신 압록강대교는
21세기 인해 전술의 대로로 질주하고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단동고려관에서 만찬을 하며 관람하는
북한 어린 아가씨들의 공연은
마음이 착잡해서 흥을 낼 수가 없었다
결코 쉽게 웃지 않으며
절도 있는 그들의 행동거지는
약소국의 최소한의 자존심이리라.

아! 얼마나 슬프고 부끄러운가
수수천년 전 우리의 땅이었던
지금은 남의 땅이 되어버린 단동에서
한 언어 같은 문화를 피로 나눈 남북이
북쪽은 앵벌이 아닌 외화벌이를 하고
남쪽은 남의 자식 재롱 보듯 웃음이 헤픈
닮은 얼굴, 같은 말을 쓰면서도
마음이 옹졸하게 멀어져
남보다 더 남이 되어가는 못난 한겨레 

누가 우리를 이처럼 갈라 놓았는가
망국의 대한제국 치욕의 역사
일제 침탈 36년의 식민 근성
자력으로 이루지 못한 독립
동족끼리의 이념의 대리전쟁까지
70년이 지나도록 반목을 풀지 못하고
백년을 넘어 못나게 살고 있다.

아! 천지는 울고 있다
나는 등을 돌려 이천릿길을 내려와
압록강변에서 흐느끼고 있다
이룰 수 없는 백두산 중원의 꿈
다시 한반도를 가슴에 품고
만주 시베리아를 등에 업고서
풍만하게 흐를 압록 두만의 젖줄이
그립고 서러워서
그 꿈이 사무치고 한스러워
그렇게 강변에 앉아 
푸른 거친 압록루수(淚水)에 눈물을 떨구고 있다.
 

* 이 글은 2016년 여름, 백두산 천지를 다녀 온 필자의 소감문이다.

     평양 정상회담 사흘째인 2018년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있다.(출처 : 한겨레신문, 2018.9.20.)
     평양 정상회담 사흘째인 2018년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있다.(출처 : 한겨레신문, 2018.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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