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조사평가위원회는 산재 요양급여 신청 노동자의 직업 생활 중에 발생한 주요 질병이 업무 관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상당한지 혹은 부족한지를 판단한다. ‘상당하다’는 ‘꽤 많다’는 뜻이다(법제처, <알기 쉬운 법령 정비기준>(제9판), 2019.12). 상당하면 ‘직업 관련성 높음’으로, 부족하면 ‘직업 관련성 낮음’으로 정리한다. 이러한 결말을 보기기까지 쌍방은 서로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신청인의 간절함과 절실함을 어떻게 헤아리랴.

출처: 법제처
출처: 법제처

이번 사례의 신청인은 2012년 6월 진단, 2018년 4월 역학조사 의뢰, 2021년 5월 역학조사평가위 심의 완료에 이르기까지 9년가량을 감내해왔다고 볼 만하다.

근로자 ○○○은 2012년 5월 건강검진에서 범혈구감소를 발견하였다. 범혈구감소증(汎血球減少症; Pancytopenia)은 혈액의 모든 세포 성분(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이 감소한 상태이다. 혈구세포는 골수에서 만들어진다. 2012년 5월 16일 어느 대학병원에서 골수 검사를 하고 다른 대학병원으로 옮겨 32세가 되던 2012년 6월 7일 골수형성이상증후군(骨髓形成異常症候群; D46.9)으로 진단받았다. 이후 항암치료를 하였으며 2014년 8월 타인 공여자로부터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고 추적관찰 중이다. ○○○은 부모와 형제에서 혈액 질환이나 암 관련 가족력은 없었다.

○○○은 □사업장 근무 전인 2003년에서 2006년까지 2년 11개월 동안 △사업장에서 형광등 안정기와 소켓 전선조립의 작업을 하였다. 환기 시설은 창문과 환풍기가 주된 것이었다. 모든 공정은 칸막이 없이 공유하는 형태였다. 용접 흄(fume)과 분체분진(粉體粉塵) 등으로 공장 내부는 뿌연 적이 많았다. ‘용접 흄’은 용접 때 열에 의해 증발한 물질이 냉각되어 생기는 미세한 소립자이다.

50은 실린더블록, 10은 뼈대부재.     출처: ‘자동차용 실린더블록의 제조방법 및 그 제조방법으로제조된 자동차용 실린더블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scienceon.kisti.re.kr)
50은 실린더블록, 10은 뼈대부재. 출처: ‘자동차용 실린더블록의 제조방법 및 그 제조방법으로제조된 자동차용 실린더블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scienceon.kisti.re.kr)

요양 신청인 ○○○은 2008년 3월 □사업장에 입사하여 약 4년간 엔진부에서 조립과 세척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 기간은 엔진조립 2년 6개월간, 조립세척 2011년 1월부터 1년 6개월간이었다. 조립·세정 작업은 가공에서 넘어온 실린더블록(Cylinder block)을 세정기(洗淨機) 안으로 투입하는 일이었다. 신청인은 개폐 방식인 세정기의 문이 열릴 때마다 세정유(washing oil) 수증기를 흡입하였다. 피부도 노출되었다. 참고로 △사업장에서 나와 □사업장에 입사하기까지 시차는 약 1년여이다.

작업환경으로 보건대, 신청인은 파워트레인(엔진과 변속기 등)이라는 핵심부품을 만드는 공정에서 작업했다. 이 공정은 ‘주조→단조→소결→열처리→기계 가공→조립’이다.

노동형태는 주야간 2교대 작업으로 1주마다 교대하였다. 업무 수행 시간은 주간반은 08:30-17:30(9시간), 야간반은 19:30-04:00(8시간 30분)이었다.

출처: 근로복지공단
출처: 근로복지공단

신청인은 □사업장의 가공과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에 노출되었고, 세정기에 톨루엔과 자일렌(xylene; 또는 크실렌) 등 유기용제를 사용하여 상병(傷病)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하였다. 이에 공단은 2018년 4월 30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2021년 제5회 역학조사평가위원회(2021.5.21)는 신청인의 상병은 업무 관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첫째, 근로자의 질병과 관련된 작업환경요인으로 벤젠, 포름알데히드가 충분한 근거가 있고, 디클로로메탄(이염화 메탄; dichloromethane)은 제한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 포름알데히드의 노출 가능성이 낮으며, 벤젠은 불순물로 포함될 가능성은 있으나 그 노출 수준은 낮았을 것으로 판단한다. 둘째, 디클로로메탄과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은 현재까지는 연관성이 부족하다.

판단 서면의 ‘고찰 및 결론’에 산재 요양급여 신청인의 질병과 ‘주야간 2교대 작업’ 간의 관련 확률에 관한 언급은 없다.

국제암연구소,    출처: https://monographs.iarc.who.int/list-of-classifications/
국제암연구소,    출처: https://monographs.iarc.who.int/list-of-classifications/

한편, 국제암연구소(IARC;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는 야간교대근무(night shift work)를 Group 2A(2A 등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Agents Classified by the IARC Monographs, Volume 98, 124). Volume 98(2010)에서 교대근무는 (24시간을 주기로 변하는 생물체의) 생물학적 주기의 교란과 관련됐다고 평가했다. Group 2A는 국제암연구소가 설정한 발암유발 물질 분류 등급 중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유력한 발암 물질(Probably carcinogenic to humans)이다. Group 1은 확실하게 암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이번 사례는 역학조사 의뢰 이후 역학조사평가위원회 심의가 완료되기까지 3년 걸렸다. 눈여겨봐야 할 기간이다.

 

대한민국 103년 8월 14일

편집: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f61255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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