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란 무엇일까? 나는 왜 카페를 하려고 하는가?

프랑스어에서 차용한 영어의 카페(café)는 '커피'라는 뜻의 터키어 kahve에서 유래한다. 커피가 유럽에 도입되자 술을 마시지 않고도 사교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17세기 중반 이후 200년 동안 런던을 중심으로 번성한 유럽의 유명한 카페들은 새로운 소식과 정견 등을 나눌 수 있는 장소였으며, 문필가·배우·예술가들은 단골 카페에서 동인들과 함께 공연하거나 시낭송회를 가졌다. 또한 19세기에 발표된 문학 작품이나 그림에 나타나듯이 프랑스의 카페와 음식점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는 지적 교류를 위한 최상의 장소였다. 돈 많은 미식가는 파리의 고급 음식점에서 식사했지만, 카페와 선술집은 여전히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출처 - 다음 백과)

현재의 카페는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곳, 혹은 맛은 상관없이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는 청년들이 대부분입니다. 또 베이커리와 결합해서 대형화되는 추세에 있지요. 이 시점에서 ‘카페란 무엇일까?’, ‘나는 왜 카페를 하려고 하는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인생을 나그넷길이라 표현하는 건 동서양에 차이가 없습니다. 먼길을 가는 나그네는 지치게 마련이고, 자연히 쉴 곳을 찾게 됩니다. 큰 나무의 그늘 아래 바닥이 평평하고, 풀이 고르게 나 있는 곳, 바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지요. 그런 곳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해야 또 다음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졸린 눈을 부비면서 일어나서 학교로, 직장으로 달려갑니다. 버스와 지하철로 뛰어가고,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의 명장면처럼 줄지어 서서 지하철을 내려가고, 올라가기를 반복합니다. ‘왜?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바쁘게 살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대신 한 손에 든 커피를 마시고, 다른 손에 든 핸드폰을 보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한계에 이르면 힘들다, 외롭다고 신세 한탄을 하지요. 그런 분들께 휴식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잠을 쫓거나 피로를 속이려고 마시는 질 낮은 커피가 아니라 정말 맛있고, 향기로운 커피와 디저트를 대접하며 말벗이 되고 싶은 거지요. 영화 <심야식당>의 고바야시 카오루처럼 소통을 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곳이 내가 꿈꾸는 카페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반론이 들어옵니다. “그건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거지.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잖아.”, “요즘은 그렇게 작은 가게로는 성공할 수 없어. 네댓 개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죽치고 앉아있으면 어떻게 할 건데?”, “제주에서 운영했던 카페는 자네 집이니까 가능했겠지만, 월세랑 관리비, 세금 내면서 그게 가능하겠어?”

열 평 남짓의 작은 가게도 얻지 못하는 마당에 이런 말까지 들으면 의기소침해집니다. ‘난 여전히 꿈만 좇는 이상주의자인가?’ 싶기도 하고요,

모두가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내 커피를 좋아하고, 그 맛을 잊지 못해서 “언제 다시 카페를 시작할 거냐? 돈이 없으면 펀딩을 하라”는 지지자들도 있지요. 예전엔 커피만 있었지만 다향이의 오랜 노력으로 이제는 훌륭한 디저트까지 준비되었습니다. 강력한 무기가 하나 더 생긴 셈이지요.

그런데 맛있는 걸 만들어서 대접할 수는 있지만, 경영을 모른다는 것과 자금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카페를 열까? 말까?’ 지금도 고민하는 이유입니다.

제주에서 운영했던 찻집 둥구나무
제주에서 운영했던 찻집 둥구나무

 

제주에서 운영했던 찻집 둥구나무
제주에서 운영했던 찻집 둥구나무
제주에서 운영했던 찻집 둥구나무
제주에서 운영했던 찻집 둥구나무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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