烟楊有地拂金絲
幾被行人贈別離
林下一蟬椛別恨
曳聲來上夕陽枝

離人日日折楊柳
折盡千枝人莫留
紅袖翠娥多少淚
烟波落日古今愁

얼마 전에 캐나다 밴쿠버에 사는 큰며느리 야죽당(野竹堂)이 위의 시 두 편을 보내왔다. 그래서 난 바로 야죽당에게 아래와 같이 긴 글을 보냈다.

野竹堂에게

일전 보내준 두 편의 시 잘 읽었다. 첫째 편은 고려 때 시인 노봉(老峰) 김극기(金克己,1150-1209)의 <通達驛)이고, 둘째 편은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의 <浿江曲)이다.

두 편 모두 '버들가지'를 주제로 하여 이별의 슬픔을 노래 했다.

당나라 때 시인 저사종(儲嗣宗)은 그의 시 <贈別>에서 "동성엔 봄풀이 푸르다지만, 남포의 버들은 가지가 없네 (東城草雖綠, 南浦柳無枝)"라고 하였는데, 여기에는 '南浦'와 '버들'(柳)이 모두 이별을 상징하는 어휘로 동시에 쓰였다. 봄이 와서 풀은 푸른데, 떠나는 임에게 버들가지를 꺾어주려 해도 이미 사람들이 죄다 꺾어버려 남은 가지가 없다는 말이다.

역사(驛舍)의 버들가지가 이별의 징표로 쓰이고 있다. 첫련에서 '烟楊'이라 했으니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봄날임을 알 수 있다. 파릇파릇 물오른 버들가지의 여린 초록빛을 '金絲'로 표현했다. 헌데, 그 어린 가지는 푸른 잎을 달아보기도 전에 사람들의 손에 수도 없이 꺾이었다. 헤어지는 장소가 역참(驛站)이고 보니, 으레 수많은 이별을 이 수양버들은 지켜보았을 게고, 그 많은 사람마다 한두 가지씩 꺾어 재회의 바람을 실어 보냈을 것이다. 헌데, 네가 '有地'라 한 것은 내가 본 책엔 '猝地'(어느 내)로 돼 있다.

"내 낀 버들이 어느새 금실을 너울댄다"는 말이다.

헌데 시인은 갑자기 매미를 등장시켰다. 춘접추선(春蝶秋蟬)! 매미는 가을의 상징이다. '林下'라 했으니, 현재 그녀가 있는 곳이 저 아래로 숲이 내려다보이는 꽤 높은 곳임을 알 수 있다.하루 종일 덧없는 기다림에 지친 그녀는 이제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울음이 터질 것 같다. 숲 저편으로 기다리는 임의 모습은 보이질 않고, 해만 속절없이 뉘엿뉘엿 지려하고 있다. 바로 이때, 아래 숲에서 울던 한 마리 매미가 상향 곡선을 그리면서 그녀가 서있는 나무 위로 날아든다. 이별의 한을 안다는 듯(諳別恨). 그런데 넌 '諳'(안다)을 椛한자로 썼다. 그게 무슨 자냐?'

마치 매미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잘 알겠다는 듯이 말이다. 숲 아래에 있던 매미가 위로 올라온 것에서 시인은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 더 멀리 바라보고픈 그녀의 마음을 포착했다. 그녀는 지금 저렇듯 해가 지고 마는 것이 원망스럽고 아쉽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임은 영영 오지 않고...

석양에 가지 위로 소리 끌며 올라온다(曳聲來上夕陽枝) 했다. 배를 불룩불룩 소리통 울리며 '매얌~ 매얌~" 기어오른다. 曳聲! 소리 끌며!

 

野竹堂! 매미 소리 들리냐?

둘째 편 백호 선생 시는 선생이 평양 감사로 있다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관기(官妓) 죽향(竹香)이 올린 <大同江別離>에 화답한 시다.

大同江上別情人
楊柳千絲未繫人
含淚眼看含淚眼
斷腸人對斷腸人

대동강에서 정든 임과 헤어지는데,
천만 올의 실버들도 잡아매지 못하오.
눈물 어린 눈으로 눈물 젖은 눈 바라 보니,
임도 애가 타는가 나도 애가 끊기오!

이별하는 사람들 날마다 버들 꺾는다(離人日日折楊柳)했으니 이별하는 사람들을 묶으려 버들가지를 꺾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천 가지 꺾어 묶은들 어찌 가는 임 묶을 수 있겠는가!

어여쁜 아가씨(紅袖翠娥)들 눈물 탓이런가?
부연 물결(烟波)! 지는 해(落日)!
모두 수심에 잠겨 있다.

떠나는 임을 붙잡지도 못하고, 떠나신 임이 돌아오는 것도 못 보았다. 보내는 사람은 이별이 서러워 눈물을 흘리고, 기다리는 사람은 임이 오지 않아서 눈물을 떨군다. 그러고 보면 정지상이 "대동강물이 마를 날 없다"(大同江水何時盡)라 한 말이 빈말이 아니다.

그녀들의 한없는 기다림이 안쓰러워, 강물 위엔 한숨인 양 안개가 짙어 있고 눈물인 듯 강물은 넘실거린다. '烟'은 한숨, '波'는 눈물이다. 여기에 강물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해(落日)마저도 수심을 보태고 있다.

임백호의 이 시는 <한겨레> 에 실은 나의 '思婦曲' 앞부분에 인용돼 있다. 이 두 편의 시 다시 읽으며 엄니 생각 했다.

바로 아래와 같이 며느리 야죽당의 답글이 왔다.

긴 글 감사합니다.

여기서 매미 소리를 듣거나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한 여름 매미 소리는 애간장을 끊을 듯 쉼 없이 들리지요

캐나다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지내니 떠나온 고향을 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세라는 겨울에 할아버지랑 경주 유적지를 돌아볼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고 하네요.

아버님께서 오래전 그 애에게 선물한 삼국유사 책을 한 페이지 마다 주석을 달아가며 열독하니 공부한 내용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고 한 것이겠지요.

저는 기억에도 없는 두 분 할아버지가 세라에게는 일생의 획을 긋는 존재로 각인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님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많은 추억과 글을 남겨 주신 것 같습니다. 오는 겨울 세라를 잘 부탁드려요. 긴 답글은 정말 감사합니다. 늘~

이렇게 오늘은 멀리 떨어져 있는 며느리와 시로 서로 화답 했다.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며느리와 시로 화답 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가?!

신축 8월25일
김포 하늘빛 마을
여안당에서 취석 한송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통신원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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