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주에 사회복지관으로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잘 나오던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뒷손질(애프터서비스)을 신청해 달라고 하셨지요. 당신은 그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멀쩡하게 나오던 텔레비전이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연결선이 빠졌을 수 있으니 제가 봐 드리겠다고 할머니를 따라나섰습니다. 뒷손질 기사가 나오면 출장비가 나갈 테니까요. 연결선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건 예전에 쓰던 건데 안 돼.” 할머니가 말합니다. 두 개의 원격 조정기를 번갈아 가면서 눌러봐도 KBS 1 텔레비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돋보기를 쓰고 살펴보니 새 원격 조정기라는 건 텔레비전에 딸려오는 것이니 소용이 없습니다.

통신사의 원격 조정기를 살펴보니 건전지의 방향이 맞지 않습니다. 건전지를 바르게 끼우니까 제대로 작동합니다. 할머니가 손뼉을 치고 기뻐하시면서 이리저리 경로를 돌려봅니다. 역시 잘 나옵니다.

“아유, 어제 아침부터 이게 켜지지 않아서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 하는 할머니한테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식혜 먹어요?”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괜찮다고 해도 굳이 컵 가득히 식혜를 따라 줍니다.

“내가 옛날 사람이라 이런 걸 몰라도 식혜는 잘 만들어요. 쌀 나오는 거 혼자 다 먹을 수 없어서 이렇게 식혜를 만들어 둬. 식혜 한 병 가져갈래요?”

일하는 시간이라 얼른 돌아가려고 식혜 한 컵을 꿀꺽꿀꺽 마셨더니 할머니가 묻습니다. 뭐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식혜까지 받아올 수 있나요? 그래서 몇 번이나 괜찮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냉동실에서 2L짜리 생수병에 담긴 식혜를 건네주셨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나왔습니다.

어제는 매일 도시락을 받으러 오는 할머니와 간병인이 찾아왔습니다. 손에 든 커다란 건전지 두 개를 보여주면서 가스레인지가 켜지지 않으니까 봐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말투로 “젊은 직원이 가면 안 될까요?” 합니다. 자신들의 일만으로도 바쁜데 굳이 이런 일까지 하는 마음으로 할머니를 따라나섰지요.

가스레인지를 켜보지만 역시 불꽃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가스레인지를 돌려서 건전지를 빼내는데 간병인 어른이 묻습니다. “이런 거 할 줄 알아요?” “국민학교 때 배웠잖아요.” 했더니 “아, 양극과 음극을 배우긴 배웠는데, 도무지 생각이 안 나서…….” 합니다.

건전지를 바꿔 끼우고, 가스레인지를 켜니까 불꽃이 올라옵니다. 두 분이 박수하면서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는데 ‘고맙다, 이젠 살았다.’ 라면서 “커피 한잔 타 드릴까?” 합니다. 할머니 댁에 가기 전에 막 커피를 마신 터라 사양하고 돌아왔습니다.

별것도 아닌 일로 갈채를 받으려니 서글퍼집니다.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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