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락산의 시인 김명식 선생님과의 인연

1998년 어느 날이다.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노동리를 찾았다. 통일문학을 위해 이바지할 바를 찾던 나는 한락산의 시인 김명식 선생님과 그 일가족을 만났다. 

사람은 항상 숨을 쉬는 것처럼 어디론가 가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은 항상 눈을 뜨고 있어서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사람은 항상 움직이는 발을 따라 숨을 쉬고 있다. 강원도 화천에 사시는 김명식 선생님을 찾은 것은 내가 가장 왕성하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매진하던 도서출판 문화발전소를 운영하며 격월간 <시와 혁명>이라는 시 전문지를 만들던 때다.

 김명식 선생님께서 4.3항쟁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알려낸 시집 한락산 
 김명식 선생님께서 4.3항쟁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알려 준 시집, 한락산 

 

경황없이 세상의 변화와 의미 있는 일상을 위해 투신하던 아름답던 시절이다. 지금은 녹슨 기차마냥 망연자실한 것처럼 멈춘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는 반성이 깊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아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내가 바라는 것과 남이 바라보는 것이 다르지만, 사람이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분명한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고금의 진리인 듯하다. 모자라지만, 불투명하지만, 그렇지만 여전히 묵묵히 자기 길을 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삶은 아름답다.

김명식 선생의 아름다운 일상은 자연을 경배하고, 자연을 위해 수행하며, 자신을 닦는 모습이었다. 필자는 2박 3일의 아쉬운 시간 동안 산속에서 머물며 산허리를 걸으며 세상을 배웠다.

1998년 장원도 화천 노동리 산속에서 만난 가족 - 김명식 선생님과 사모님께서 직접 교육을 담당하시고 학교에는 보내지 않았다.  
1998년 장원도 화천 노동리 산속에서 만난 가족 - 김명식 선생님과 사모님께서 직접 교육을 담당하시고 학교에는 보내지 않았다.  

그리움이 아득하다. 사모님이 고인이 되셨고 산허리를 감고 있던 나무와 벌레와 산새들과 동무하던 아이들은 무엇을 하는지 안부가 궁금하고 그립다. 사람이 살면서 스스로 부여한 사명을 안고 일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하다고 믿는다. 나는 나의 사명이 어느 곳에 이르고 무엇을 위해 가야 할 것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사명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그렇게 생각 속에서 탑을 쌓는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기운을 배우자. 2009년 10월 28일 새벽 나의 블로그에 남긴 메모다.

그리고도 세월이 흘렀다. 2021년 4월 나는 민족작가연합 출판위원장을 맡게 되고 다시 통일문학의 길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다시 고민이 쌓여가는 날들 김명식 선생님을 떠올리게 되었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선생님의 연락처를 수소문 끝에 알게 되었다. 

강원도 화천 노동리 산에서 논을 일구시는 김명식 시인
강원도 화천 노동리 산에서 논을 일구시는 김명식 시인

 

사진 왼쪽은 김명식 시인 가운데 필자 오른쪽으로 사진작가 김일목
사진 왼쪽은 김명식 시인, 가운데 필자, 오른쪽은 사진작가 김일목

산길을 걸을 때 내게 나뭇잎을 뜯어서 무슨 나뭇잎인 줄 아느냐고 물었던 소년 김일목이 당시 8~9세였다. 이제 자라서 그는 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사진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이 전시된 삼청동 <류가헌 갤러리>를 알아냈다. 그러나 사정이 있어 가보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제3 통일시집을 출간하게 되고 대전역 인근 네팔 커뮤니티센터에서 출판기념회를 연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김명식 선생님과 아들 김일목 군이 함께 찾아주셨다. 

나는 1991년 방송대학교 강당에서 제주 4.3항쟁 학술 토론회를 개최하고 선생님을 강연자로 초청한 인연 후 실로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출판 기념회에 많은 시인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통일문학을 위해 힘써야 할 작가들과 깊은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난 오늘 지난 10월 5일부터 오는 17일까지 <류가헌 갤러리 제2관>에서 “나를 품은 살갗”이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 전시회를 찾아 만났다. 

따뜻한 감성으로 품은 사진첩
따뜻한 감성으로 품은 사진첩

 

한락산의 시인이 자식을 품은 살갗의 주인이다. 작가 김일목은 어떻게 아버지인 시인 김명식 선생님을 품어냈을까? "나를 품은 살갗", "우리를 품은 살갗"이기도 하다. 작가 김일목이 자신을 품어온 살갗을 적나라하고 은근히 렌즈에 담아 자신이 숨 쉬어 온 터전인 아버지를 품어 안는 역전된 의식, 혹은 인식태는 우리 모두를 품어온 조국의 산하로 확장되어 갈 것이다. 

내가 본 김일목의 작품 사진에서 작가 김일목은 멀고 아스라한 천공을 살피는 아버지의 시선을 따르고 잔잔한 걸음으로 산과 밭, 능선과 구릉을 기대고 살아온 몸과 마음을 읽는다.

나는 그 김일목의 시선을 따라 민족의 아픈 역사인 4.3항쟁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낸 문학적 스승에게 정정하시라! 스승이시어. 그리고 온전히 품어온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사람 마음과 몸의 공양길이시어. 끝없이 온전하시라! 라는 소원을 품에 안고 빌고 또 빌어본다.

 

<김일목 사진전  : 나를 품은 살갗> 안내

▲기간 : 2021. 10.05(화).~10.17(일).
▲곳 : 사진위주 류가현 갤러리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 106 아카이브빌딩 2층 지하1층
  -전화 : 02-720-2010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김형효 주주통신원  tiger30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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