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란 대기 속에서 빛의 굴절 현상에 의하여 공중이나 땅 위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신기루 현상은 홀연히 나타나 짧은 시간 유지되다가 사라지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일이나 현상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신기루 현상은 공기의 밀도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필자도 어릴 적에 이러한 현상을 많이 보고 자랐다. 타원형인 섬이 네모로 보이다가 또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것을 그냥 신기하게만 생각했다.

옛 어른들은 바닷속에 거신(巨蜃)이 있어서 뜨거운 숨을 내뿜어 신기루를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택당선생집 제2권). 신기루를 두고 허루신(噓樓蜃)이라고도 하고 신시(蜃市)라고도 한다.

고전번역서 장유(張維)의 계곡집(谿谷集)에는 이런 시가 있다.

가리포진(加里海鎭, 지금의 완도)

남쪽 바다 파도만 넘실대는데 / 漲海波濤積
외로운 성 비스듬히 걸려 있도다 / 孤城睥睨懸
돛단배 저 너머는 해가 뜨는 곳 / 扶桑帆影外
한 잔 술 드노라니 신기루(蜃氣樓) 나타나네 / 蜃市酒盃前
썰렁한 날 울리는 뿔피리 소리 / 畫角鳴寒日
저녁 운무(雲霧) 헤치며 전선(戰船) 돌아오누나 / 危㫌入暮煙
이제 훈련 마친 이층 배 갑판 위에 / 樓船罷擊櫂
달빛 안고 쓰러져 자는 수병(水兵)들 / 戍卒月中眠

아래 글은 1928년 8월 4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이 기사를 쓴 최용환 기자는 완도를 순회하면서 완도의 모든 것을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보길도의 서쪽 길을 걷다 보면 넙도(芿島), 닭섬(鷄島) 등 자잘한 여러 섬이 보인다.이 길을 걷다가 지역 주민으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듣고 기사화하였던 것 같다. 내용인즉 오랜 옛날 어느 날 목사가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파손되고 아무도 살아나오지 못한 사고가 있었는데, 매년 그맘때가 되면 마치 군사 행렬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말을 듣고 기사 제목을 섬 노리(놀이)라는 재미나는 기사 제목을 쓴 것일 것이다. 그것들이 신기루 현상이었을 것인데 그 사고와 연계시켜서 말하다 보니 꼭 전설을 말하는 것처럼 되었다.

기사의 제목은 莞島方面(五) 창해(蒼海)에 춘애(春靄) 돌면 섬노리의 릉파보(凌波步), 윤고산의 화원을 차자(찾아) 甫吉島의 절승(絶勝)이란 제목으로 신기루 현상과 고산에 관한 것까지 기사화하였다.

섬노리 기사
섬노리 기사(동아일보, 1928년 8월 4일)

보길도의 절경을 윤선도는 한마디로 표현한 대목이 있다.
어느 겨울 고산이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온 산야가 하얗게 뒤덮인 눈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이를 보고 읊조린 것이 어부사시사의 동사 4장에 있다.

'선계(仙界)인가 불계(佛界)인가 인간(人間)이 사는 곳이 아니로구나' 라고 써 놓았다. 이 시 한 구절만으로도 보길도의 절경을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아랫글은 고전번역서인 계산기정 3권에 실려 있는 시다.

흑산도 민속은 매우 어리석어 / 黑山民俗太蠢蠢
바다에서 이익을 쫓느라니 대부분 곤궁하구려 / 濱海逐利多困窘
석우풍(石尤風)이 어찌 다니는 사람 사랑할 리 있나 / 石尤何曾愛行人
만경의 사나운 물결 한없이 이네 / 萬頃惡浪吹不盡
일엽편주 아득히 가는 대로 놓아두니 / 一葦茫然縱所之
떠가는 배 문득 허루신과 같구나 / 泛泛忽如噓樓蜃
길은 강절의 하늘 아득한 데로 통하였고 / 道通江浙天浩渺
돛대는 오초의 산 높은 데에 떨어졌네 / 帆落吳楚山嶾嶙
일록국 사람 가죽으로 옷해 입고 / 日鹿國人皮爲衣
가을바람에 새 쫓는 매처럼 용맹스럽네 / 猛如逐雀秋風隼
해동의 여아는 공연히 한이 맺혀 / 海東女兒空結恨
누굴 위해 다시 공후인을 짓는고 / 爲誰更作箜篌引
네 만약 문장의 안목 갖추었다면 / 使汝若具文章眼
닿은 곳마다 시로써 번민 잊을 수 있었을걸 / 觸境有詩能排憫
원하노니 네 고향엘 가거들랑 / 願汝鄕山歸去日
농가에 안식해서 농사나 힘쓰게나 / 安息田家服畦畛

★ 석우풍(石尤風)이란 역풍(逆風)으로 어원은 다음과 같다. 석씨(石氏)의 딸이 우랑(尤郞)에게 시집가 정의가 매우 좋았다.

하루는 그 남편이 장사하러 먼 길을 뜨려 하니, 그녀는 만류했다. 우랑은 듣지 않고 떠나더니 영영 돌아오지 않자, 그녀는 병이 나서 죽게 되었다. 그녀는 죽을 임시에, “내 능히 만류하지 못해 이 지경 된 게 한이니, 이제 장사하러 원행하는 이 있으면, 내 마땅히 큰바람을 일으켜서 천하의 부인들을 위해 저지하리라.” 했다.

이후로 장사치들은 배를 띄울 적에 역풍을 만나면 ‘석우풍’이라 하고 가지 않았다 한다. 《江湖紀聞》

★ 허루신(噓樓蜃)과 신기루(蜃氣樓)는 같은 뜻으로 사용하였다.
★ 공후인(箜篌引) : 노래 이름으로 고려 때 곽리자고(霍里子高)의 처 여옥(麗玉)이 지었다.

여옥은 그 미친 남편이 물을 마구 건너는 것을 미처 뒤따르지 못하여, 결국 빠져 죽게 되자, 다음과 같이 노래했던 것이다.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

이러한 신기루 현상을 옛날에는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전혀 볼 수 없다. 아마도 대기의 오염 탓일 것이다.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가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 되었으니 누구를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죗값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 없이 훼손하는 자연 때문이리라. 먼 훗날도 생각해야 하는데 그냥 눈에 보이는 것, 일하기 편한 것만을 생각하고 무자비하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덮어씌워 일을 처리한 탓이라고 본다.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마광남 주주통신원  wd3415@naver.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