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로잘린 카터는 이전의 퍼스트 레이디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남편의 업무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국내 정치는 물론 외교 문제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심지어 내각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대통령을 대신해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에 대한 순방외교에 나섰다가 부적격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있다. 그렇지만 평판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는 "남편의 척추를 보강하는 철목련"이라고 썼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클린턴은 더 적극적이었다. 미국 대통령 부인 집무실은 통상 백악관 동관(이스트윙)에 있는데 힐러리는 관례를 깨고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서관(웨스트윙)에 자신의 사무실을 두었다. 정치적 야심도 대단했다. 퍼스트 레이디 시절 연방 상원의원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고, 훗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백악관 재입성 문턱까지 갔다.

퍼스트 레이디 시절 국정 개입으로 가장 논란을 빚은 이는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이었다. 대통령의 인사와 정책 등에 전방위적으로 관여했다. 자신의 뜻을 잘 따르지 않는 도널드 리건 백악관 비서실장을 쫓아냈다. "남편 대신 칼을 든 맥베드 왕비", "권력에 굶주린 퍼스트 레이디" 등의 비판이 언론에서 쏟아졌다. 훗날 도널드 리건 전 비서실장의 회고록을 통해 낸시가 점성술에 깊이 빠졌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점성술사 조앤 퀴글리와 하루에도 두세 번씩 전화 통화를 해서 대통령 일정 등을 상의했다고 한다. 퀴글리는 "내가 고르바초프의 별자리를 읽고 영부인을 설득해 대통령의 소련 정책을 바꿨다" "7년 동안 대통령의 외교, 냉전체제 정책, 심지어 대통령의 암 수술 일정까지 내가 결정했다"고 회고록에서 주장했다.

현재 유력한 대선 후보의 부인은 장차 어떤 모습의 퍼스트 레이디가 될까. 로잘린 카터형, 힐러리 클린턴형, 아니면 낸시 레이건형? 어떤 형의 퍼스트 레이디를 맞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우선 그들은 대선 과정에서 '영부인 적격 심사'부터 통과해야 한다. 대선에서는 후보자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의 도덕성, 자질, 성품 등도 유권자의 지대한 관심사다.

대선 후보 배우자는 후보의 득표력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표를 잠식할 수도 있다. 과거의 예를 보면 득표에 도움을 주기는 쉽지 않지만 실점 요인이 될 위험은 상대적으로 크다. 배우자 본인의 그동안 전력이나 언행 등이 시빗거리가 되고 대선 과정에서 한순간의 실수가 후보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부인 김혜경씨가 최근 낙상 사고를 당했다. 사고를 둘러싼 각종 루머가 떠돈다. 'VIP 환자 이송'에 대한 '보고 누락'을 이유로 구급대원들이 상부의 질책을 받았다는 뉴스도 나왔다. 이재명 후보 쪽은 이런 잡음을 '방어'하느라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사안은 이 후보에 조금이라도 마이너스 요인이 됐으면 됐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후보자 배우자를 둘러싼 논란은 이처럼 조금만 불이 붙어도 크게 번질 인화성을 늘 내포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의 부인이 낙상 사고로 당분간 공개 활동이 어려워진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는 조만간 공개 무대에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다만 대외 활동을 시작하더라도 선거 유세 지원 등 정치적 활동은 최소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정치적 논란이 무성한 상태에서 대중에 너무 노출될 경우 집중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김건희씨는 역대 어느 대선 후보 배우자와도 '비교 불가'의 특이한 캐릭터다. 후보 배우자 본인이 김씨처럼 '핵 폭탄급 의혹'을 안고 있던 경우는 없었다. 당장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만 해도 검찰은 11일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이 도이치모터스의 주가가 인위적으로 조작됐다고 판단함에 따라 김건희씨에 대한 검찰 조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가 조작을 위해서는 다량의 주식 확보가 필수적인데 김씨는 돈을 대는 '전주'(錢主) 노릇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또 2012년 도이치모터스 신주인수권을 헐값에 사들였다가 되팔아 큰 차익을 챙겼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김씨를 둘러싼 의혹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학위 논문 표절 의혹,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 협찬 의혹, SNS에 올린 '개 사과 사진' 연출 의혹 등 가히 '의혹 백화점 퍼스트 레이디 후보'다. 앞으로 건너야 할 검증의 강이 간단치 않아 보인다.

:사진 출처(:2021-10-31  한겨레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7323.html)
:사진 출처(:2021-10-31  한겨레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7323.html)

퍼스트 레이디들의 성향을 보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림자 내조형' 보다는 점차 '활동적 참여형'이 대세다. 여야 양대 정당 후보 배우자들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후보의 부인 김혜경씨는 그동안 이 후보가 참석하기 힘든 행사나 경조사에 대신 참석하는 등 남편의 정치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지난 대선 뒤에는 김씨가 만든 것으로 의심되는 트위터 계정 사건으로 한때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결국 검찰의 무죄 판정을 받았지만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도 '정치적 욕망'이 대단하다고 전해진다. 윤석열 후보를 추동해 정치판으로 이끈 사람이 바로 부인 김씨였다는 말도 들린다. '개 사과 사진' 역시 연출자가 김씨라는 것이 정설이다. 낸시 레이건과 마찬가지로 역술에 관심이 많은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낸시는 레이건 대통령의 피격 사건 이후 갑작스럽게 점성술에 빠졌지만 김씨는 오래전부터 무속과 역술에 젖어 있는 듯하다. 윤 후보의 '인생·정치 자문역'을 해온 '천공'을 윤 후보에게 소개해준 사람도 김씨였다고 천공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무속이 성했던 조선 시대에도 요무(妖巫)와 음사(淫祀, 부정한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금하는 것이 궁중의 원칙이었는데, 자칫 잘못하면 청와대에 '도인'과 '역술가'들이 출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여야 양대 정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서 후보 배우자들 간의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최대 변수는 김건희씨를 둘러싼 숱한 의혹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인가다. 앞으로 진행될 검찰 수사 등을 통해 그의 혐의가 입증될 경우 대선 구도는 또 한번 출렁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에 입성할 퍼스트 레이디가 '리스크'가 될지 '메리트'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퍼스트 레이디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그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 이글은 프레시안에 실린 글입니다.
* 출처  :https://news.v.daum.net/v/20211115083327866?x_trkm=t

 

<편집자 주> 김종구 언론인은 1988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서 한겨레21 편집장, 한겨레신문 편집국장, 편집인,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남서울대 객원교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로 매스컴과 글쓰기 등의 강의를 하고 있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김종구 언론인  kjg2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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