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양의 유서와 인간 노무현의 유서

1986년 1월, 친구에게 편지 형식의 글로 쓴 ‘H에게’는 O양의 유서가 되었다. 당시 O양은 서울사대부속여자중학교 3학년 학생으로 15살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바로 O양이 쓴 편지글 형식의 유서다.

이 글에서 O양은 당대 입시경쟁교육으로 치닫던 우리교육현실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친구조차 사귀지 못하게 하고 오직 입시공부만 강요하는 분이 바로 사랑하는 어머니임을 15살 어린 소녀는 그 모순된 현실 앞에 가슴 아파했다. 결국 O양은 죽음으로써 당대 ‘병든 교육’을 질타했다. 더 이상 어린 동생들을 위해서도 ‘죽음의 교육’을 방관할 수 없다고 가슴 절절이 절규했다. O양의 유서를 읽다 보면 35년도 더 지난 오늘날 우리 교사들은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절규하며 죽어간 어린 소녀의 영혼 앞에 오늘의 교육도 35년 전 교육현실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페스탈로치 이오덕(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이오덕은 절망의 시대!  <죽음의 교육>이 지배하던 시대, 아이들의 눈으로 <병든 교육>, <거짓교육>을 증언했다. 실천적 교육운동가로서 이오덕은 <오늘의 시대,  교사란 무엇인가>를 온 몸으로 보여준 시대의 스승이었다.
한국의 페스탈로치 이오덕(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이오덕은 절망의 시대! <죽음의 교육>이 지배하던 시대, 아이들의 눈으로 <병든 교육>, <거짓교육>을 증언했다. 실천적 교육운동가로서 이오덕은 <오늘의 시대, 교사란 무엇인가>를 온 몸으로 보여준 시대의 스승이었다.

한국의 페스탈로치 이오덕 선생과 성래운 교수는 86년 1월, 아이의 소식을 접하고 한없이 마음 아파했다. 그래서 그해 두 분이 공동의장을 맡았던 「민주교육실천협의회」에선 기관지 『일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책자에 참회하는 심정으로 O양을 추모하는 교사들 추모 글을 실었다. 그리고 그해 5월 교육운동을 하던 교사들이 「교육민주화 선언」을 발표하며 당대 교육현실을 고발했다. 아니 O양의 죽음 앞에 「교육민주화선언」으로 참회했다. 선언문에 서명한 교사들은 학교현장에서 쫓겨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그런 고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매년 100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여전히 성적 비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 내내 그런 현실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절규한 O양의 죽음 앞에 당대 교사들은 참담했고 부끄러웠다. 그 참담함과 부끄러움을 딛고 87년 「민주교육 추진 전국교사협의회」(약칭 전교협)를 창립했다. 그리고 2년 뒤 군사독재정권의 가혹한 탄압을 뚫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약칭 전교조)을 건설해 냈다. 전교조가 내세운 <참교육> 이념은 ‘민족교육’ ‘민주교육’, 그리고 ‘인간화교육’이었다. 이오덕 선생의 표현대로 ‘죽음의 교육’, ‘병든 교육’을 더 이상 지속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86년 1월 O양의 죽음은 이 땅의 교사들을 죽비로 내리친 사건이었다.

전교조 운동의 이념 <참교육>은 민주교육, 민족교육, 그리고 인간화교육이다. 입시경쟁교육으로 병들어 가는 현실에서 아이들이 고통 받고 때론 죽어가는 현실에 80년대 교사들은 침묵할 수 없었다. 학교는 배움을 통해 인간적으로 성장을 경험하는 행복한 공간이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핀란드나 덴마크와 정반대이다. 유초중고로 올라갈수록 아이들은 학교 가기를 싫어한다. 이젠 우리 어른들이 <사람을 살리는 교육! >, <행복한 삶을 위한 교육!>을 위해 성찰하고 변화를 가져와야 할 시점이다. (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
전교조 운동의 이념 <참교육>은 민주교육, 민족교육, 그리고 인간화교육이다. 입시경쟁교육으로 병들어 가는 현실에서 아이들이 고통 받고 때론 죽어가는 현실에 80년대 교사들은 침묵할 수 없었다. 학교는 배움을 통해 인간적으로 성장을 경험하는 행복한 공간이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핀란드나 덴마크와 정반대이다. 유초중고로 올라갈수록 아이들은 학교 가기를 싫어한다. 이젠 우리 어른들이 <사람을 살리는 교육! >, <행복한 삶을 위한 교육!>을 위해 성찰하고 변화를 가져와야 할 시점이다. (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

아이들 삶을 위한 교육! 바로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을 해야 하는 최전선에 우리 교사들은 서 있다. 교육은 피를 흘리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정교한 예술이자 사회적 무기이다. 교육이 왜 교사에게 운동이며 실천하는 삶인지 O양의 유서는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에 유서 전문을 여기에 소개한다.

H에게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헤어짐에 울 수도 있는 사람인데 어떤 땐 나보고 혼자 다니라고까지 하면서 두들겨 맞았다. 나에게 항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라고 하는 분, 항상 나에게 친구와 사귀지 말라고 슬픈 말만 하시는 분, 그 분이 날 15년 동안 키워준 사랑스런 엄마라니 너무나 모순이다.

순수한 공부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멋들어진 사각모를 위해, 잘나지도 않은 졸업장이라는 쪽지 하나 타서 고개 들고 다니려고 하는 공부 천만 번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고, 그렇게 해놓고는 하는 짓이라고는 자기 이익만을 위해 그저 종이에다 글 하나 써서 모박사라고 거들먹거리면서 나라, 사회를 위해 눈곱만치도 힘써 주지도 않으면서 외국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하는 따위 공부만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공부만 한다고 잘난 것도 아니잖아?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해 이 사회에 봉사,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그것이 보람 있고 행복한 거잖아. 꼭 돈 벌고, 명예가 많은 것이 행복한 게 아니잖아. 나만 그렇게 살면 뭐해? 나만 편안하면 뭐해?

매일 경쟁, 공부밖에 모르는 엄마. 그 밑에서 썩어 들어가는 내 심정을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난 로봇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다. 밟히다, 밟히다 내 소중한 내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버릴 땐, 난 그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떤다. 하지만 사랑하는 우리 엄마이기 때문에 아, 차라리 미워지면 좋으련만, 난 악의 구렁텅이로 자꾸만 빠져 들어가는 엄마를 구해야만 한다. 내 동생들도 방황에서 꺼내줘야 한다. 난 그것을 해야만 해. 그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난 그 성적순위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

"전교 ○등, 반에서 ○등, 넌 떨어지면 안 된다. 선생님들이 널 본다. 수업시간에 넌 항상 가만히 있어야 한다. 넌 공부 잘하는 학생이니까 장난도 치지 마라. 다음번에 ○등 해라. 왜 떨어졌어? 친구 사귀지 마. 공부해! 엄마 소원성취 좀 해 줘. 전교 1등 좀 해라. 서울대학교 들어간 딸 좀 가져보자. 그렇게 한가하게 음악 들을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공부해"

매일 엄마가 하시는 말씀들. 자기가 뭔데 내 친구 편지를 자기가 읽는 거야. 그리고 왜 찢는 거야. 난 사람도 아닌가? 내 친구들은 뭐, 다 못난 거야? 그리고 왜 약한 사람을 괴롭혀? 돈! 그게 뭐야~ 그게 뭔데 왜 그렇게 인간을 괴롭히는 거야. 난 눈이 오면 한껏 나가 놀고 싶고, 난 딱딱한 공해보다는 자연이 좋아. 산이 좋고, 바다가 좋고 하긴 지금 눈이 와도 못 나가는 걸. 동생들도 그러하고 너무 자꾸 한탄만 했지, 그치? 졸업하면 나는 아예 그 먼 고등학교에 가서는 집에 갇혀서 죽도록 공부만 해야 될 것이다(으~ 끔찍하다).

난 나의 죽음이 결코 남에게 슬픔만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아. 그것만 주는 헛된 것이라면, 난 가지 않을 거야. 비록 겉으로는 슬픔을 줄지는 몰라도, 난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줄 자신을 가지고 그것을 신에게 기도한다.

1986년 1월 15일 새벽에

한국 사회에 권위주의를 해체시킨 최초의 대통령 노무현! 그는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인간 노무현>이었다.(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 사회에 권위주의를 해체시킨 최초의 대통령 노무현! 그는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인간 노무현>이었다.(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 아래 국정원과 정치검찰은 피의 사실을 언론에 흘리면서 갖은 망신을 주었다. 수구언론들은 “뇌물로 받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며 인간 노무현의 인격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긴가민가했고 진보언론을 자처하는 신문조차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 한 발을 담갔다. 그렇게 정체성을 상실한 채, 이명박 정권 하 정치검찰-수구언론들과 한편이 돼버렸다. 고립된 속에서 인간 노무현은 무척 고독했을 것이다.

당시 인간 노무현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12년이 지났어도 안타까운 마음이다. 논두렁 시계도 아방궁도 모두 거짓이었다. 그렇게 노무현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욕되게 했던 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뻔뻔한 사회다. 뻔뻔해야 권력을 틀어쥐고 큰소리치는 사회다. 한 마디로 역사정의가 무너진 속에서 사회정의를 세우기 어려운 사회다. 뻔뻔한 자들이 권력을 쥐고 한국 사회를 난도질해 왔다.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 받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저지른 명명백백한 범죄에도 오히려 큰소리쳤다. 그 뒤집힌 역사 속에서 5‧18 학살 당사자를 두고 “민주주의의 아버지”요, “영웅”이라는 큰소리마저 나왔다.

인간 노무현이 죽음을 앞두고 쓴 유서 전문을 읽다 보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 눈물이 난다. 왜 선한 사람들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악인들은 천수를 누리는지 이게 해방된 나라인지, 도대체 민족정기가 살아 있는 국가인지 의구심만 든다.

노무현은 노동인권변호사로서, 그리고 권위주의를 해체시킨 최초의 탈권위주의 대통령으로서 겸손한 삶을 살았다. <인간 노무현>을 통해 우리 시대 삶을 스스로 성찰하게 만든 분이다.

노무현의 유서 전문은 인간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진수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님웨일즈의 『아리랑』에 나오는 김산 만큼 빛나는 영혼을 간직한 사람이기에 혼탁한 시대, 유서 전문을 여기에 소개한다.

<노무현 유서 전문>

연일 제 가족과 측근들에 대한 의혹으로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몰랐다고, 모함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냐고 따져 묻지도 않겠습니다. 노무현답게 하겠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누구든 벌을 받아야 하며, 전직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제 제가 할 선택으로 상처받을 이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어떤 꾸중과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 서운하고 노여운 마음, 부디 저의 마지막 진심을 담은 이 편지로 조금이라도 달래지기를 빕니다.

누군가 저의 인생을 '싸움'이라는 한마디로 정의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정말로,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정치인이 되기 전 인간 노무현의 삶도 그랬습니다. 그 최초의 상대는 '가난'이라는 녀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난은 단지 불편한 게 아니라, 사람을 비겁하고 치졸하게 만드는 고약한 놈이었습니다. 어쩌다 먹을거리가 하나 생기면 형제들이 볼새라 저만의 비밀 장소에 감춰두고 먹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너무나 배가 고파 나눠 먹을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집이 풍족하여 화기애애 식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눠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저의 꿈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 가난과의 긴 싸움을 끝냈을 때, 저는 어느새 처자식을 거느린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세무 전문 변호사로 돈을 좀 만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뻤던 건 제 아이들이 어린 날의 저처럼 먹을 걸 숨겨두고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양보해라, 나눠 먹어라, 힘주어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성공한 사람들과 어울려 요트도 타고 멋도 좀 부렸습니다. 안사람은 그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종종 추억하곤 합니다. 정말로 이제 행복할 일만 남은 것 같았습니다.

그 행복은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그 나이가 되도록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눈앞에서 나와 내 가족의 목을 죄는 가난과 싸우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그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풍요와 여유에 취해갔지만, 눈에는 자꾸 그런 것들이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곧 세상엔 수없이 많은 ‘노무현’들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죽어라 이 악물고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먹을 걸 숨길 수밖에 없는 건 예전의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럴까. 왜 나라는 성장하는데, 가난한 이들은 왜 학교에조차 갈수 없는 가난을 자식에게까지 대물림하게 되는가. 점차 사회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왜곡된 역사가, 도처에 널린 반칙과 특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뒤늦은 깨달음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들을 외면하고 저 혼자 소시민적 행복을 느끼며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 후 저의 삶은 아시는 대로입니다. 인권변호사가 되었고, 국회의원이 되었고, 청문회에 나가 이름도 얻었고, 그리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늘 예전의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돈이 없고 힘이 없어 세상으로부터 매 맞고 짓밟히는 이들 편에 서고자 했습니다. 그 눈물을 멈추게 할 힘이 내게 없다면, 최소한 내 손등으로 닦아주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들 ‘대세’니 ‘주류’니 하는 것에 우루루 몰려갈 때, 원칙을 지키며 버티려 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비웃음 살 때도, 그 바위가 잘못된 것이라면 내 몸이 박살나더라도 부딪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그 바위가 잘못되었다는 표시라도 나지 않겠습니까. 저를 굉장한 싸움꾼처럼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겁도 많고 무서운 것도 많은, 그런 보통 사람입니다.

3당 합당에 반대하고 재야의 길을 선택하며 큰소리는 쳤지만 사실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따 놓은 당상이라던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갈 때도, 대통령 당선 확정을 통보받고도, 다리가 떨려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할 만큼 두려웠습니다. 제가 대담한 강골이었다면 안 그랬을 것입니다.

그렇게 겁이 나도 그런 선택들을 한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힘없다고 짓밟히지 않는 세상, 한번 가난하면 죽을 때까지 가난한 게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면 일어날 수 있는 세상, 명백한 부정에 타협하고 고개 숙여야 살아남는 세상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에 따라 '이의 있습니다.!' 라고 외칠 수 있는 세상에 내 아이들을 살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신 국민의 뜻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노무현은 짓밟혀도 됩니다. 무너져도 됩니다. 하지만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들과, 그들이 꾼 꿈은 짓밟히고 무너져선 안 됩니다. 그 꿈은 이 나라의 미래입니다. 우리의 아이들 뿐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그 아이들의 아이들도 살아가야할 나라입니다. 언제까지 대결과 분열을 가르칠 것입니까. 언제까지 증오와 반목을 가르칠 것입니까. 언제까지 특권과 반칙을 가르칠 것입니까. 사실은 모두가 불안하고, 또 불행하지 않습니까.

할아버지가 된 지 오래지 않습니다. 자식들보다 더 귀엽습니다. 그 애들이 자라나고 시집도 가는 걸 왜 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늘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해 왔습니다. 변호사 시절의 안락한 삶보다 눈앞의 부조리에 맞서는 것이,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것보다 지역주의 보스정치에 저항하는 것이, 대통령 되는 것보다 원칙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2002년, 저와 여러분이 함께 꾸었던 꿈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키는 건 이 길 뿐입니다. 너무 슬퍼하거나 미안해하지 않기 바랍니다.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의 운명입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작별인사 하겠습니다. 대통령이었음보다, 이 아름다운 나라의 국민이었음이 더 큰 영광이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드림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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