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는 문어목 문어과에 속하는 연체동물이다.
낙지를 두고 자산어보에서는 낙제어(絡蹄魚)라고, 여덟 개의 낙지 발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 데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풀 수도 있다고 한다.

낙지를 뜻하는 한자어는 다양한데, 낙지와 비슷한 발음의 한자어로는 낙제어(絡蹄魚), 해초자(海梢子), 落只(낙지), 洛池(낙지), 樂只(낙지), 낙제(落蹄), 석거(石距), 장어(章魚), 장거어(章擧魚), 초어(梢魚)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경남에서는 낙지를 낙제(落第), 전남에서는 낙자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같은 음으로 읽히는 낙제(落第)를 경계하여, 수험생들에게는 낙제어를 먹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치윤(韓致奫, 1765년-1814)이 편찬한 해동역사(海東繹史) 제27권에서는 허준(許浚: 1539-1615)의 말을 인용하며 문어와 낙지를 설명하면서 팔초어(八梢魚)는 문어이며, 소팔초어(小八梢魚)는 팔초어보다 작은 것으로 세속에서는 낙체(絡締)라 하고, 본초(本草)에서는 장거어(章擧魚)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를 먹으면 사람의 원기를 돋운다고 했다. 말라빠진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를 먹이면 곧 강한 힘을 갖게 된다고 적혀 있다.

살아있는 낙지
살아있는 낙지

동의보감에서도 다리가 여덟 개인 낙지를 소팔초어(小八梢魚)라 하여 '낙제로 불리는 이 생물은 성질이 온순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많은 한방고서에서도 낙지는 기혈을 순조롭게 하는 식품이라고 전하고 있다.

중국의 의서인 천주본초(泉州本草) 역시 낙지는 익기양혈(益氣養血), 즉 기를 더해주고 피를 함양해주기 때문에 온몸에 힘이 없고 숨이 찰 때 효능이 있다고 했다.

자산어보에서는 낙지가 겨울에 뻘 속에 틀어박혀 구멍 속에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어미를 먹는다.(大者四五尺狀類章魚而脚尤長頭圓而長好入泥穴

…… 冬則蟄穴産子子食其母).”라고 했다.
낙지는 봄과 가을에 산란하고 겨울에는 펄 속에 박혀 겨울잠을 잔다.

민간에서는 원기 회복을 위해 낙지를 주로 먹었으며, 그중에서도 발이 가는 세발낙지를 최고로 쳤다. 세발낙지라고 하니 다리가 세 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발이 가늘다는 가늘 細자를 의미한다. 죽어가는 소도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메뉴로 이용된다. 전남에선 ‘갯벌 속의 인삼’으로 통할 정도로 보양음식으로 인기가 높다.

농사철에 쉼 없이 소를 부리면 소의 몸에 땀이 난다. 이는 소가 몹시 힘들다는 것을 나타내는 신체의 변화이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는 소를 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일을 하다가 힘이 들면 담배를 피우면서 쉬는 시간을 소도 함께 쉴 수가 있어서 하는 말이다.

전라남도 해역이 국내 연간 낙지 총생산량의 약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낙지 어업이 왕성하다.

낙지에 관련된 속담을 살펴보면 낙지의 생태 등에 관련된 것들이다.

'오뉴월 낙지는 개도 안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낙지가 봄철에 알을 낳은 후 2~3개월 동안 알을 돌보는데 오뉴월 알이 부화해서 태어나는 새끼를 위해 모든 영양을 다 쏟아내고 죽기 때문에 맛이 없다는 것이다.

일이 매우 쉽다는 뜻으로 ‘죽은 낙지 꿰듯’이라는 속담이 있다.

개(犬) 꼬락서니 미워서 낙지 산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개가 즐겨 먹는, 뼈다귀가 들어있지 않는 낙지를 산다는 뜻으로,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에게 이롭거나 좋은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이르는 말.

낙지와 관련된 설화는 낙지 머리와 남성의 성기를 착각했다는 음담이 농담처럼 전하기도 한다.

남도에서는 소가 새끼를 낳거나 여름에 더위를 먹고 쓰러졌을 때 큰 낙지 한 마리를 호박잎에 싸서 먹여주면, 이를 받아먹은 소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그만큼 낙지가 원기회복에 좋다는 것이다. 실제로 예전에는 산후조리용 음식으로 낙지를 넣은 미역국을 최고로 쳤다.

전남의 무안 등지에서 시원하게 국물과 함께 먹는 ‘연포탕’이나 낙지를 통째로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 양념장을 발라 구워 먹는 ‘낙지호롱구이’에는 세발낙지를 으뜸으로 쳐준다.

충남 태안군 이원반도 일대는 박속 밀국낙지탕이라는 독특한 낙지 요리법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밀과 보리를 갈아 칼국수와 수제비를 뜨고 낙지 몇 마리를 넣어 먹었던 밀국낙지탕을 상품화한 것으로 현재 원북면과 이원면 일대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고 한다. (고려와 조선 시대엔 밀 수확이 끝나는 유두(음력 6월15일)와 칠석(음력 7월 7일) 사이에 갓 나온 햇밀로 칼국수와 밀전병을 해 먹었다.)

낙지 맛은 계절과도 관계가 깊다. 
서남해안 세발낙지나 서해 중부의 밀 낙은 음력으로 4~5월, 그러니까 늦은 봄에서 초여름의 낙지가 어리고 야들야들할 때가 제 맛이다.

생김새가 비슷한 문어, 낙지, 주꾸미는 제 몸이 위험하다고 느낄 때는 묵집(墨什, 먹물)을 터트려 주변을 까맣게 만들어 자기 몸을 감추고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아래 글은 고전번역서 다산시문집 4권 탐진어가(耽津漁歌)에 실려 있는 시의 한 소절이다.

지국총 지국총 들리느니 뱃노래라네 / 歌曲唯聞指掬蔥
수신사 아래 가서 모두가 엎드려서 / 齊到水神詞下伏
칠산바다 순풍을 맘속으로 비노라 / 黙祈吹順七山風
어촌에선 모두가 낙지국을 즐겨 먹고 / 漁家都喫絡蹄羹
붉은 새우 녹색 맛살은 치지를 않는다 / 不數紅鰕與綠蟶
홍합이 연밥같이 작은 게 싫어서 / 澹菜憎如蓮子小
돛을 달고 동으로 울릉도를 간다네 / 治帆東向鬱陵行

이 시에서는 어느 것보다 낙지 맛이 으뜸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북한에서는 오징어를 낙지로, 낙지를 오징어로 불러 남북 간의 교역이 시작되면서 낙지라고 수입한 것을 뜯어보니 오징어가 들어있어 수산업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남한의 ‘낙지’를 북한에서는 ‘서해낙지’라고 부른다고 한다.

마광남 주주통신원  wd34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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