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해천자문>(홍성원 편저, 註解千字文, 1752; 동양고전종합DB)의 번역에서 천자문(지은이: 중국 남조 양나라(502~549)의 주흥사)의 첫 부분 ‘4자 2구’(혹은 8자 1절)를 아래와 같이 풀어놨다.

天地玄黃 宇宙洪荒(천지현황 우주홍황);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 크다.

천도(天道)의 이치를 드러내는 내용이다. 2구에서 주부는 천지, 우주이고, 술부는 현황, 홍황이다.

 제1구 번역은 천지를 ‘천’과 ‘지’로, 현황을 ‘현’과 ‘황’으로 분리하여 서로 대응시켰다. 즉, ‘천현 지황’(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이다. 하늘이 검고 땅이 누르다고 표현한 지은이의 깊은 뜻은 거의 이해하지 못하겠다. 소박하게 생각건대, 하늘이 검은 먹구름으로 가득할 때 비가 내리고 땅에는 누런 흙탕물이 흐른다. 하늘이 검기에 종국에는 땅은 누런색으로 변한다. 즉, 천현(天玄)은 인(因)이요, 지황(地黃)은 그 과(果)이다. 이른바, 천현이지황(天玄而地黃)이다. 이는 주역 64괘 중 2번 괘인 중지곤(重地坤)의 문언전(文言傳)에 나온다. 어떤 4자 1구인 ABCD는 ‘AC & BD’로 풀어야 둔한 나에게는 이해가 쉽다. AC는 원인이고 BD는 결과이다. 조금 앞서 봤듯이, 그 첫 번째의 예가 ‘천지현황이다. 두 번째 예는 ’천지개벽‘(天地開闢)이다. 무심코 풀이하면, ’하늘과 땅이 열리고 열리다‘이다. 하늘이 열리는 방식과 땅이 열리는 방식이 서로 같지는 않을 테고, 그 열리는 시점도 똑같지는 않을 거다. 따라서 ’천지현황‘을 풀이하는 방식을 적용하면, 천지개벽은 ’천개이지벽‘(天開而地闢)이다. 즉, 하늘이 열리니, (그 힘을 받아) 땅이 열린다. 천개와 지벽의 관계는 인과관계이다. 땅이 열리지 않음은 아직 하늘이 열리지 않았음을 뜻하리라.

<황극경세>(皇極經世)는 중국 송나라 소옹(邵雍; 1011年—1077年)이 지은 천서(天書)이다. 천서는 하늘의 이치를 다룬 책이다. “왜 ‘황극경세’가 천서인가?”( kknews.cc/culture/836p2ml.html)에 나오는 내용을 연결하면 ‘천개어자 벽지어축 개물어인’(天開於子 闢地於丑 開物於寅)으로 요약된다. ‘하늘은 자시(23시~다음날 01시)에 열려 땅을 축시(01시~03시)에 열고 또한 인시(03시~05시)에 만물을 연다.’ 열리는 순서는 하늘, 땅, 만물이다. 땅과 만물이 열리는 힘의 근원은 하늘의 열림이다. 요컨대, 천개이지벽(天開而地闢)과 천지개벽은 뜻이 같다.

“천자문이 한문 입문서? 우주 이치 담은 책” / 대산 김석진(84) 선생. 출처: 한겨레, 2012-01-03.
“천자문이 한문 입문서? 우주 이치 담은 책” / 대산 김석진(84) 선생. 출처: 한겨레, 2012-01-03.

<주해천자문>의 번역은 宇宙洪荒(우주홍황)을 ‘우주는 넓고 크다’로 풀어놨다. ‘우주’는 주부이고, ‘홍황’은 술부이다. 宇는 ‘집 우’, 宙는 ‘집 주’이다. 그 한자의 뜻은 ‘집’이나 서로 똑같은 집은 아니다. 宇는 공간이고, 宙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띈다. <주해천자문>에서 宇宙洪荒을 풀이하길, 천지의 안을 횡(橫; 공간)으로 말하면 상하사방(上下‧四方)이 되고, 종(縱; 시간)으로 말하면 ‘옛날과 지금’(왕고래금; 往古來今)이 되는데, 넓고 멀어서 가장자리가 없고 끝이 없다. 상하(Z축) 전후(Y축) 좌우(X축)로 구성된 3차원 공간이 宇이고, 고금(古今)의 상황을 보여주는 글자는 宙이다. 그렇다면, 우주홍황은 ‘우홍이주황’(宇洪而宙荒)으로 풀어야 뜻이 다가온다. 공간으로서의 집, 즉 집(건축물)과 집터는 홍수를 감당할 만큼 넓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넓은 집과 집터는 荒 = {艹 풀 초, 巟 물 넓을 황), 즉 잡초가 거칠게 우거졌도다. 이렇게 풀이하니, 머리가 조금 가볍다.

위 내용을 잘 묶어 천자문의 첫 4자 2구를 소박하게나마 다음처럼 옮기고 싶다. 하늘이 검은 먹구름으로 가득하다가 비가 내리니 땅에는 누런 흙탕물이 흐르고, 집과 집터가 그 누런 흙탕물을 감당할 만큼 넓어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넓은 집과 집터는 잡초로 거칠게 우거지리라.

8자 1절인 4자 2구 ‘ABCD EFGH’에서 제1구와 제2구를 각각 원인과 결과로, 각 구의 앞뒤 두 글자를 각각 원인과 결과로 풀이하면 줄거리(story line)를 엮기가 편하다. 우선 필요한 작업은 한 단어로 익숙해진 AB, CD, EF, GH를 각각 A와 B, C와 D, E와 F, G와 H로 분해한 후 일대일 대응을 맺어 쌍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EG, FH이다. ‘우주홍황’은 ‘우훙 주황’이다.

낱말로서의 우주(宇宙)는 우(宇)와 주(宙)의 결합이다. 宇는 제1차원 좌우(X축), 제2차원 전후(Y축), 제3차원 상하(Z축)가 서로 묶인 ‘3차원 공간’(Three-dimensional space)이다. 宇에 제4차원(The fourth dimension)으로서의 시간차원(time dimension; T축)인 宙가 하나의 구조로 묶여 이뤄진 공간이 바로 宇宙이다. 따라서 우주는 4차원 공간이자 시공간(spacetime)이다. 집합(set)으로 표시하면, 우주(Universe) = X×Y×Z×T = {(xi, yi, zi, ti)}i=1,···,n. 시공간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장론(量子場論; quantum field theory)에서 중요하게 사용하는 개념이다(위키백과).

대한민국 103년 12월 11일

편집: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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