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무렵엔 의문이 올라온다. 왜 태어남과 죽음을 유별나게 차별하여 표현하는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날을 사후에 누구에게는 출생일이라고 하고, 어떤 분에게는 탄생일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죽음을 어느 분에게는 서거라 하고, 현장 노동자에게는 사망이라 한다. 태어나고 떠나는 자에 대한 사후의 표현은 이처럼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구별이 심하다.

성탄절 트리용 나무도 모자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부인 질 여사가 지난 2일(현지시각) 워싱턴 디시(DC) 백악관 남쪽 일립스 공원에서 크리스마스트리에 점등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출처: 한겨레, 2021-12-07.
성탄절 트리용 나무도 모자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부인 질 여사가 지난 2일(현지시각) 워싱턴 디시(DC) 백악관 남쪽 일립스 공원에서 크리스마스트리에 점등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출처: 한겨레, 2021-12-07.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매일 <사망사고 속보>를 그 누리집에 올린다. 노동현장에서 사고로 목숨 빼앗긴 노동자의 죽음을 ‘사망’이라 표현한다. 공무원이 업무 수행 중 목숨을 잃으면 ‘순직’이라 한다. 국민에게 최선을 다한 죽음이라는 가치평가를 드러낸다. 역시 업무수행 중이었는데도 노동자의 죽음은 어떤 가치판단도 배제한 그저 ‘사망’이다.

올해 7월 4일부터 지난 12월 4일까지 일주일 단위로 <사망사고 속보>를 정리해봤다. 22주간에 현장 노동자 218명이 목숨을 빼앗겼다. 매주 약 9.9명이 ‘사망’했다. 목숨을 가장 많이 빼앗긴 주간은 10월 17일~23일과 11월 28일~12월 4일로 각각 그 숫자는 16명과 15명이다. 가장 적은 주간은 추석 연휴 4일이 낀 9월 19일~25일이고 그 숫자는 3명이다. 지극히 예외에 가까운 그 주간을 빼면 21주간 215명이, 매주 약 10.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빼앗겼다.

예수(Jesus)님을 따른다고 하는 기독교인에게 현장 노동자는 이웃일까? 아니면 그저 막노동꾼일까? 기독교인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image of God)이라고 믿는다는데, 현장 노동자도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믿을까?

이탈리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대성당 내에 전시돼 있는 생전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 사진 조현. 출처: 한겨레, 2013-03-14.
프란치스코(1182 ~ 1226) 성인은 아틸리아 아시시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하게 자랐으나 모든 소유물을 걸인들에게 나눠줘버리고 출가해 평생 청빈과 가난 속에서 나눔을 실천해 ‘제2의 그리스도’로 까지 칭송 받는 인물이다. 요즘으로 보자면 그는 재벌가의 후계자였는데, 그 모든 부를 버리고 스스로 십자가를 진 것이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대성당 내에 전시돼 있는 생전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 사진 조현. 출처: 한겨레, 2013-03-14.

오래전에 바이블(Bible)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읽으면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예수님이 눈길을 주고 눈 맞춤하려고 애쓰는 상대방은 장애인, 남편 잃은 여인, 당시에 치료가 어려운 피부병을 앓는 병자 등이었다. 예수님에게는 그들이 하느님의 모상이었으리라. 아마도 예수님은 그들 속에서 어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일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실천이라고 믿으셨으리라. 그렇게 사시는 중에 수난과 고통을 겪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목숨을 빼앗기고 결국에는 부활에 이르렀으니, 예수님의 출생은 거룩한 탄생, 즉 성탄으로 자리매김했다.

예수님의 삶을 응축하는 네 글자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하늘을 공경하고 남을 사랑하라. ‘남’은 나를 제외한 세상 만물로서의 이웃이다. 기독교 용어로 표현하면, ‘하늘 공경’은 ‘하느님 자비에 대한 흠숭’이고 ‘남 사랑’은 ‘이웃 사랑’이다. 이웃의 범위는 내가 속한 자연과 사회의 생태계이다.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실천도 이웃 사랑이 아니겠는가.

모모한 인사들이 반려견이나 반려묘(猫)의 생명권과 복지권에 관심을 기울이는 정도만큼이나마, 이번 성탄절에 경천애인자, 즉 기독교인이 현장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관심을 기울이고 노동자가 ‘산재로 살해되지 않고’(killed by occupational injuries) 안전하게 집으로 퇴근하도록 조그만 일이라도 실천하면, 아마도 예수님은 기뻐하시리라. 배움이 적은 탓이겠으나, 반려견과 반려묘가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박형규(89) 목사 /23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박 목사는 부산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신학대 대학원과 미국 뉴욕 유니온신학대에서 수학했다. 서울 공덕교회와 제일교회에서 목회했고 <기독교사상> 주간, 도시산업선교회와 사회선교협의회를 설립해 빈민 선교에도 앞장섰다. 현재 남북평화재단 이사장으로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출처: 한겨레, 2012-04-30.
박형규(89) 목사 /23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박 목사는 부산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신학대 대학원과 미국 뉴욕 유니온신학대에서 수학했다. 서울 공덕교회와 제일교회에서 목회했고 <기독교사상> 주간, 도시산업선교회와 사회선교협의회를 설립해 빈민 선교에도 앞장섰다. 현재 남북평화재단 이사장으로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출처: 한겨레, 2012-04-30.

지난해 이맘때 <화요세평>에 ”4촌 이내 친척 중 비정규직 공장ㆍ건설 노동자 없으시죠“를 썼다. 당시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상황을 다뤘다. 올해 <화요세평>에 올린 칼럼 6편 중 2편이 산업재해에 관한 글이다. ”광주·전남 산업재해 예방 대책 수립, 준비하는가“(9월 1일), “2022년 교육감후보가 선점할 의제 ‘교육현장 산재와 직업병’ ”(10월 26일). 더는 나의 글이 황야에서 울부짖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내년에 장례식장으로 퇴근하는 노동자가 확 줄어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자를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우리의 가까운 이웃으로서 대우해야 하지 않겠는가. 산재와 직업병으로 목숨을 빼앗긴 노동열사와 그 유가족에게 성탄절에 하느님의 사랑이 소복소복 쌓이기를 바란다.

*이 글은 <남도일보>(2021.12.13.)에 실린 기사입니다.

*원문 보기:  http://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67282

편집: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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