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는 2013년 3월 입사, 그로부터 3년 6개월 후 2016년 9월 백혈구 수 증가 발견, 그 이후 3개월 지난 2016년 12월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확진. 그 노동자는 36세 남성. 노동 생애가 채 5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노동자가 백혈병을 진단받는 대한민국의 일터는 삶의 터전인가, 아니면 질병 유발의 장소인가? 이에 대답할 자 누구 없소.

이번에 살펴보는 직업병 인정 신청인은 코크스오븐(coke oven), 즉 코크스로(爐)의 유지보수원이다. 질병의 해부학적 분류는 림프 조혈기계 암이고, 유해인자는 화학적 요인이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건 류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우선 먼저 코크스로(爐)의 유지보수 작업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철강생산의 필수 원료인 코크스는 코크스로에 유연탄을 장입(裝入; 용광로 따위에 원료나 연료 따위를 쟁여 넣음)한 후 1,100∼1,200℃에서 17∼18시간 건류(乾溜)하여 만들어진다. 코크스 생산과정에서 협력업체 노동자는 코크스로의 시설보수작업, 코크스로 위에서의 장입 보조, 상승관(gooseneck; 거위 목 모양의 관) 청소, 코크스의 건식 소화(Coke dry quenching; CDQ) 설비 청소, 코크스 건류과정에서 발생하는 ‘코크스로 배출물’(Coke Oven Emissions; COE) 가스가 문(door)에서 누출될 때 밀봉(sealing) 등을 하고 기타 코크스로 보수 업무를 담당하기에 실제 COE에 대한 노출 수준이 높을 것이다(권은혜 외, “코크스오븐 작업자들의 코크스오븐배출물 및 다핵방향족탄화수소 노출에 관한 연구”, 2000.11).

또한, COE의 유해성에 관한 지식도 필요하다. 제철사업장에서 유해요인으로서 엄중하게 다뤄야 할 COE는 코크스 제조 시 발생하는 다핵방향족탄화수소(Polynuclear Aromatic Hydrocarbons; PAH)를 포함하는 증기, 고형물질 또는 분진에 흡착된 상태로 존재하는 물질로서 벤젠에 녹는 물질의 총칭이다. PAH의 여러 성분은 발암성 물질과 변이원성 물질로 인식되는데도 흡입, 눈 또는 피부접촉을 통해 흡수된다. PAH에 노출될 경우 접촉성 피부염, 피부암, 폐암, 신장암, 백혈병, 임파종, 위암, 방광암, 혈뇨 등이 발생할 수 있다(권은혜 외, 2000).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마당 재해사례 직업병’(www.kosha.or.kr/kosha/data/occupationalDisease.do)에 올라온 역학조사평가위원회의 <심의 결과서>를 토대로 살펴본다.

시민단체 직업성·환경성암119와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지난해 12월 포스코 직업성암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보건진단을 촉구하는 모습. 직업성암119 제공. 출처: 한겨레, 2021-04-25.
시민단체 직업성·환경성암119와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지난해 12월 포스코 직업성암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보건진단을 촉구하는 모습. 직업성암119 제공. 출처: 한겨레, 2021-04-25.

작업 이력과 환경을 보기로 한다. 직업병 신청인은 2013년 3월부터 □사업장에 입사하여 근무하던 중 2014년 8월, □사업장에 고용 승계되어 현재까지 근무 중이다. □사업장은 어느 제철업체의 협력 사업장으로 보인다. 신청인은 2013년 3월부터 약 2년간 도어(door) 공정에서 코크스로에 붙어 있는 문(door)을 수리하거나 문에서 코크스로 가스가 새어 나오는 부분에 회반죽(mortar)을 발라서 막는 작업 등을 수행하였다. 2015년 4월부터 약 1년 8개월 동안 노상(爐上) 공정에서 장입구裝入口) 카본 제거 작업, 상승관 카본 제거 작업 등을 수행하였다.

직업병 신청인의 근무형태는 □사업장 소속 당시 주6일 근무하였고, 2014년 □사업장부터는 주5일로 토요일은 격주 휴무하였다. 근무시간은 08:30~17:30으로 도어공정 및 노상공정 모두 동일하며, 도어공정 근무 시 도어 수리작업 및 오븐작업을 수행하는데 1시간 작업 후 20분 정도 휴식하는 형태로 근무하였다고 한다. 신청인은 2기 노상공정에서 장입구 카본제거 작업을 주로 수행할 때 1시간 작업 후 20분 정도 휴식하였고, 3기 노상공정에서는 상승관 카본 제거 작업을 주로 수행 시 1시간 또는 1시간 30분 작업 후, 20분 정도 휴식하는 형태로 근무하였다고 한다. 신청인은 그 외 설비나 현장 대기실 내의 도장작업을 아주 가끔 수행했다고 한다.

지난 1일 오전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 정전 뒤 코크스 공장에서 대기오염물질이 배출되고 있는 모습. 전남도 제공.  출처: 한겨레, 2019-07-02.
지난 1일 오전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 정전 뒤 코크스 공장에서 대기오염물질이 배출되고 있는 모습. 전남도 제공. 출처: 한겨레, 2019-07-02.

질병 진단 경과를 보기로 한다. 신청인은 근무를 시작한 지 약 3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인 2016년 9월 26일에 시행한 특수건강진단에서 백혈구 수치가 높다는 소견을 받았다. 당시 특별한 전신 증상은 없었으나 발목에 염증이 보였기 때문에 백혈구 증가 소견이 발목염증 때문인지 혹은 다른 까닭인지를 감별하려고 3개월 뒤인 2016년 12월 29일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 정밀검사를 시행하였고, 검사결과 만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확진 받았다. 정기적으로 질병경과에 대해 추적 관찰을 하고 글리벡(Glivec; 1차 표적 항암 치료제) 부작용 증상에 대한 대증치료를 하며 지내고 있다. 과거에 진단받은 질환이 없고 부모님을 포함한 직계가족 중 암이나 백혈병을 진단받은 사람이 없다고 진술하였다. 흡연은 2016년도까지 12년간 하루 반 갑이었고, 현재는 하루 3개비 정도이다. 음주는 질환을 진단받기 전까지 주 2~3회 1회 소주 1병을 마셨으나 현재는 금주 중이다.

신청인 노동자는 작업장 근무 시 노출됐던 화학물질로 인해 상병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요양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의 결정에 필요한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청년기후긴급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서 ‘기후·노동·인권 악당 포스코 규탄대회’를 열고 발언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출처: 한겨레, 2021-03-17.
청년기후긴급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서 ‘기후·노동·인권 악당 포스코 규탄대회’를 열고 발언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출처: 한겨레, 2021-03-17.

2020년 제5회 역학조사평가위원회(2020.05.22)는 노동자의 상병은 업무 관련성에 관한 과학적 근거가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첫째, 신청인은 36세가 되던 2016년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둘째, 신청인은 2013년 3월 □사업장에 입사하여 약 3년 10개월간 도어공정 및 노상 공정에서 근무하는 동안 코크스로 도어작업, 도어 오븐작업, 카본 제거작업 등 코크스로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하였다. 셋째, 신청인의 질병과 관련된 작업 환경 요인으로는 벤젠, 1,3-부타디엔, 포름알데히드, X선, 감마선 등이 충분한 근거가 있으며, 석유정제업 등이 제한적인 근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청인은 근무기간 내내 벤젠에 지속하여 노출됐고, 최대 0.366 ppm 적용 시 3년 10개월간 1.40 ppm․years의 벤젠에 누적 노출됐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신청인은 작업형태에 따라 짧은 시간 고농도의 벤젠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고, 신청인은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백혈병을 진단받았고, 벤젠 노출 외 가족력 등 상기 질환을 유발할 만한 충분한 위험요인을 확인할 수 없었다.

신청인이 2016년 12월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확진 받은 이후 2020년 5월 역학조사평가위 심의 완료에 이르기까지 약 3년 5개월이 떠나갔다.

신청인이 이른 시일 내에 쾌차하길 빈다. 그대의 고통과 참담함을 별이 떠도, 새가 날아도, 꽃이 피어도 어찌 잊으랴.

대한민국 103년 12월 25일

편집: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f61255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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