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는 아마도 23세쯤인 1989년 1월 입사, 그로부터 28년 4개월 후 2017년 5월 급성 골수모구성(骨髓母球性) 백혈병 진단, 2018년 10월 대학병원에서 골수이식. 그 노동자는 51세 남성. 이는 근 30년에 가까운 노동 생애의 시종(始終)을 응축하는 내용이다.

이번에 살펴보는 직업병 인정 신청인은 자동차 공장 부품 조립원이다. 질병의 해부학적 분류는 림프 조혈기계 암이고, 유해인자는 화학적 요인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마당 재해사례 직업병’(www.kosha.or.kr/kosha/data/occupationalDisease.do)에 올라온 역학조사평가위원회의 <심의 결과서>를 토대로 살펴본다.

작업 이력을 보기로 한다. 신청인은 1989년 10월 입사 이후 2005년 7월까지 약 16년간 연료탱크, 브레이크 튜브, 캐니스터(canister; 연료 탱크에서 생성되는 가솔린 가스(탄화수소, HC)를 모아두는 퉁), 리어휠가드(Rear Wheel Guard) 등 주로 차량 하체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 및 엔진, 머플러(muffler; 자동차의 소음기) 등을 조립(체결)하는 작업을 하였다. 전장 수정작업은 숙련도가 필요하여 1년을 주기로, 전장 수정을 제외한 나머지 공정은 1개월 단위로 각각 순환 근무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옵 공정.  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 실물길잡이_자동차제조업, 2020.11.
자동차 제조옵 공정.  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 실물길잡이_자동차제조업, 2020.11.

질병 진단 경과를 보기로 한다. 신청인은 2017년 4월부터 감기 증상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호전이 되지 않고 상복부의 불편감이 더해져서 검사한 결과, 혈색소 7.6 g/dL, 혈소판 7만/μL 등으로 이상소견이 보여 같은 해 5월 대학병원에서 3차에 걸쳐 관해(寬解) 유도 치료를 받았다. 2018년 5월 재발하여 다시 항암치료를 받았고, 2018년 10월 대학병원에서 골수이식을 받았다. 백혈병을 진단받기 전에는 특이할 만한 병력이 없었고, 2009년부터 2016년까지의 건강검진에서도 특이할 만한 소견이 보이지 않았다. 가족력으로는 부친의 담낭암이 있었다.

신청인 노동자는 주변 공정에서 발생한 매연과 성능시험 중 발생한 엔진 열에 의해 가열된 오염물질 등에 노출되어 백혈병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질병 인정을 요청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의 결정에 필요한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이번 <심의 결과서>는 역학조사의 과정과 결과를 꽤 자세하게 제시했다. 전장수정 공정의 근로자에게서, 하체 조립을 하는 공정의 근로자에게서 각각 개인 시료를 채취하였다. 전장수정이 실시되는 장소 바로 앞에 놓인 테이블에서 지역 시료를 채취하였다. 지금은 칸막이로 막혀 있지만, 과거에 매연이 발생해서 노출되었다고 진술한 롤테스트 공정에서도 지역 시료를 채취하였다. 롤테스트(Roll Test)는 주행에 필요한 전반적인 검사이다. 즉, 계기판, 에어컨, 히터, 가속력, 기어 변속의 문제점, 엔진 소음 등에 대한 검사이다.

검수.   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 실물길잡이_자동차제조업, 2020.11.
검수. 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 실물길잡이_자동차제조업, 2020.11.

전장수정 공정 작업자의 개인 시료에서 MEK(Methyl Ethyl Ketone; 메틸에틸케톤; 휘발성 유기화합물이자 유해화학물질)가 31.87ppm, 포름알데히드가 0.0256ppm 각각 검출됐다. 하체 조립 공정의 근로자 개인 시료에서는 포름알데히드가 0.0371 ppm 검출됐다. 전장수정 검사장의 지역 시료에서는 MEK가 검출되지 않았으나 포름알데히드는 0.0149ppm 검출되었다. 롤테스트 공정에서는 포름 알데히드가 0.0296ppm 검출됐다.

MEK의 발생원은 세척제라고 추정하였고, 포름알데히드의 발생원은 차량 매연과 담배 연기로 보였다. 공장 내부에 흡연 장소가 있었고, 실제로 일부 직원이 이용하고 있었다.

2020년 제4회 역학조사평가위원회(2020.04.24.)는 신청인의 상병은 업무 관련성에 관한 과학적 근거가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첫째, 신청인은 만 51세인 2017년 5월 감기 증상이 낫지 않아 검사를 받던 중 급성 골수모구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둘째, 신청인은 1989년 10월 □사업장에 입사하여 2005년 7월까지는 자동차 하체 부품 조립작업을 하였고, 2005년 8월부터 상병을 진단받은 2017년 5월까지 자동차 내부와 외부를 수정하는 자동차 수정 공정에서 근무하였다. 셋째,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직업적 위험요인으로는 벤젠, 1,3-부타디엔, 포름알데히드 등이 있다. 과거 같은 사업장 다른 공장의 작업환경측정 자료를 적용할 경우, 신청인은 조립반에서 근무한 16년간 벤젠의 누적 노출량은 0.96~19.76 ppm·yrs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더욱이 그리 높지는 않았겠지만, 수정공정에서 근무한 12년간 차량 엔진 배기가스로 인하여 벤젠, 포름알데히드, 1,3-부타디엔 등의 노출도 있었을 것이다.

신청인이 2017년 5월 급성 골수모구성 백혈병을 진단받은 이후 2020년 4월 역학조사평가위 심의 완료에 이르기까지 약 2년 11개월이 떠나갔다.

신청인이 이른 시일 내에 쾌차하길 빈다. 그대의 고통과 참담함을 별이 떠도, 새가 날아도, 꽃이 피어도 어찌 잊으랴.

대한민국 103년 12월 27일

편집: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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