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 주일 학교 탄생의 이면에는 18-19세기 노동자의 비참이 존재했다. 산업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발달한 영국 사회에서 어린이 노동은 19세기 자본주의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노동 계급의 경우, 6-7살 어린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 부모에게 응석을 부리는 일은 없었다. (구로역사연구소. 우리나라 메이데이의 역사. 서울 거름. 1991. 14-15.)  더구나 어린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를 가는 게 아니었다. 공장이나 탄광으로 내몰렸다.

 

당대 산업 자본가들은 성인 노동을 대신해 값싼 어린이 노동을 선호했다. 성인 남성 노동자 1명을 부리는 대신, 여성 노동자 두 명을, 어린이 노동자 서너 명을 부리는 게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본의 요구대로 어린 노동자들은 공장이나 탄광으로 내몰렸다. 그리고 14-15시간 동안 임금 노예로 혹사 당했다. 그런 모습이 19세기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실상이었다.

 

특히 탄광 갱도에서 석탄 수레를 끌었던 어린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햇볕을 볼 수 없어서 비타민 D가 결핍돼 구루병으로 고통 받았다. 산업혁명이 앞서 발발한 영국 리버풀 노동자 평균 수명이 20세 이하였다고 하니 19세기 자본주의는 '흡혈귀 자본주의'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40세가 되면 이미 할아버지 축에 끼었을 정도이니까.

 

19세기 중엽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으로 영국 의회에선 10시간 노동을 법제화했다. 동시에 어린이 노동과 여성 노동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1833년 공장법(Factory Act)을 통해 9세 미만 어린이 노동을 금지 시켰다. 1842년 광산법(Mines Act)을 통해 모든 여성과 10세 미만 어린이의 지하 노동을 금지 시켰다. 그런 영국 산업 자본주의의 가혹한 노동 현실과 야만성을 배경으로 교회 주일 학교가 탄생했다.

 

18세기 말 움트기 시작한 일요 학교(Sunday School)운동은 10년이 지난 1795년도엔 75만 명에 이르는 노동 계급 어린이들이 다니기 시작했다. 1833년에 이르면 155만 명 어린 노동자들이 일요 학교를 다닐 정도로 폭발적인 증가를 보였다. 20세기 초인 1906년도에 일요 학교 인기는 정점에 이르러 617만 명을 넘어섰다. (조용욱. 19세기 영국 노동계급과 교육. 한국학 논총34. 2010. 1399, 1405 -1406) 교육은 거의 무료였으며 교회에 가면 음식과 옷가지를 받는 등 물질적 혜택이 컸던 탓이다.

 

그러나 교회 주일 학교에선 쓰기와 셈하기 등 세속적인 교육을 금기시했다. 주로 읽기 능력을 길러주는 정도였다.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줌으로써 경건함과 종교적 구원의 희망 속에서 노동 계급 어린 노동자들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거나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교회 주일 학교의 탄생에는 자본주의 사회 노동 계급의 비참과 어린 노동자들이 처한 참혹한 현실이 응축돼 있다.

 

마치 오늘날 여성들 머리 형태 가운데 파마가 등장한 배경과 비슷하다. 사업주들은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의 긴 머리카락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긴 머리카락을 자를 것을 강요했다. 그러자 여성 노동자들이 짧게 자른 머리 모양이 싫어서 파마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주일 학교의 등장 이면에는 자본주의 사회 경제적 약자인 어린 노동자들의 비참이 어려 있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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