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학부모, 지역 인사 등이 모여 신은 교육 뿐만 아니라 교육 전반에 대한 의견 나누기

학부모 16분, 선생님 8분, 외부 인사 4분  총인원 28명 ....구름반 의자 모자라 옆반에서 빌려왔네요. (서승희 박부가 정리한 내용)2017년 4월 24일 '샘과 맘이 만나는 교육 이야기'라는 주제의 포럼에 많은 학부모들과 교사, 외부 인사가 참여하여 성황리에 이루어졋다. 의자가 모자라 옆에 반에서 빌려왔다. 
학부모 16분, 선생님 8분, 외부 인사 4분  총인원 28명 ....구름반 의자 모자라 옆반에서 빌려왔네요. (서승희 박부가 정리한 내용)2017년 4월 24일 '샘과 맘이 만나는 교육 이야기'라는 주제의 포럼에 많은 학부모들과 교사, 외부 인사가 참여하여 성황리에 이루어졋다. 의자가 모자라 옆에 반에서 빌려왔다. 

 

<김광철의 혁신학교 이야기 41>

5.16 군사 쿠데타로 정지되었던 주민 참여 교육 자치는 비록 간선제이지만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 조치 이후 도입이 된다. 학교운영위원들이 교육위원을 선출하고, 교육위원들이 교육감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때만해도 보수 학부모들과 시립학교 운영위원 등이 많이 진출해 있던 시기라서 전교조 출신 등 진보 성향의 교육위원 진출조차 쉽지는 않았다. 더구나 진보 출신이 교육감에 당선되는 것은 더욱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6 년 교육자치법이 개정 되면서 2007년부터 주민 직선에 의한 교육감 선출 제도가 시행된다.  진보 진영에서는 후보 단일화 등을 통하여 분열되어 있는 보수진영 후보들을 누르고 진보 교육감들이 진출하기 시작한다.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진영 단일 후보로 출마한 김상곤 교육감 후보가 당선이 되면서 교육 개혁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다. 혁신학교 제도의 도입, 일제고사의 폐지, 교장공모제의 도입과 확대  등 그동안 꿈을 꾸기도 어려웠던 개혁적인 교육이 도입되기 시작한다.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 서울, 경기, 강원, 전북, 광주, 전남에서 진보교육감들이 당선이 되면서 일제고사 폐지, 혁신학교 도입, 0교시 자율학습 폐지, 교장 공모제 확대 등 서서히 진보적 교육 개혁 조치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학교 현장의 분위기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진보 교육감들이 진출을 하더니 세월호 사건 이후 치러진 제7기 지방선거 결과 17개 시도 중에서 전교조 출신 등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13명이나 진출하고 4명의 보수 성향의 교육감이 선출됨으로써 우리나라 초, 중등 교육이 과거와는 획기적으로 바뀌는 계기를 마련한다.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우리 교육은 성적 줄 세우기의 수월성 교육에서 공교육 정상화의 방향으로 진로를 틀게 된다. 학교장 중심의 학교에서 교육의 3주체가 주체로서 바르게 자리 잡아 행복한 교육 공동체를 이루자는 방향으로 교육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다. 그 방법 중 하나로 혁신학교를 도입하고, 교장 공모제를 통하여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의 학교로 교육 혁신을 꾀한다.

그렇지만 이번 6.1 지방선거에서는 8개 지역에서 보수 성향이 교육감들이 뽑히면서 혁신학교 운동도 서서히 쇠퇴의 길을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보수 성향 교육감들이 선출된 시도에서는 이미 선거 기간 동안에 공약으로, 학력 제일주의를 내걸고 일제고사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한 국가 안에 살면서 교육을 받으면서도 민선 교육감들의 성향에 따라 정 반대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교육 혼돈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바뀌더니 ‘탈원전’에서 ‘친원전’으로 정책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국민들은 가치 혼돈의 시대를 살아야만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2009년 경기도에서 시작된 혁신학교 운동은 서울과 강원도 인천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 되면서 충청, 호남, 경남, 제주 등 전국으로 확대되어 나간다. 진보교육감이 등장하기 시작한 초창기 때는 몇 안 되던 혁신학교가 지금은 전국적으로 1800여 개 교에 이르고 있을 정도다. 혁신학교 초창기 때만 하여도 ‘혁신학교’가 어떤 모습의 학교인지 생소하여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혼란스러워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혁신학교 운동을 처음 시작한 경기도의 경우, 남한산초등학교 교육의 사례를 모델로 하여 혁신학교의 상을 잡아나간다. 새로 시작하는 혁신학교들은 선행 혁신학교의 사례들을 벤치마킹하고 자신들의 조건을 감안하여 혁신학교로서의 철학을 정비하고, 그에 따른 학교 교육 목표를 세우고 교육과정을 마련하여 운영해 나갔다. 혁신학교의 성공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교사는 물론이고 학부모와 학생들이 교육의 주체로서 자신의 교육을 설계해 나가는 것이다. 특히 학부모들의 이해와 협조가 혁신학교 성패의 키워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신학교의 성패는 교사와 학부모들의 소통과 이해, 협력에 달려있다. 몰론 교육청이나 교장, 교감 등의 학교 행정가들의 역할은 기본이 되어야 한다. 교육청과 학교 행정가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비를 하고 있는데, 학부모와 교사들의 이해와 협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면 혁신학교는의 성공은 쉽지 않다.  글쓴이가 혁신학교에 근무를 하면서 주변의 혁신학교들을 보면 혁신에 대한 큰 의지도 없으면서 혁신학교라고 하여 교육청 예산이나 따다가 ‘혁신’이라는 무늬만 띠고 일반학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형태의 ‘혁신학교’를 운영하는 경우들도 보아왔다.

 

  다양한 이해 관계를 갖고 있는 구성원들을 통합할 수 있는 소통 구조의 필요성

 

2011년 2학기부터 개교한 서울신은초등학교는 교사 구성원들도 다양했다. 신은초로 발령을 받아 오기 전부터 혁신학교 연구모임을 결성하여 세미나와 토론, 강좌 등들 통하여 혁신학교 전반에 대하여 많은 연구 노력을 하고 온 교사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단지 혁신학교라는 호기심을 가지고 지원을 하였거나 원거리 출퇴근이 힘들어 내신을 냈는데, 우연히 신은초로 발령을 받은 경우 등 다양한 이유로 발령을 받고 온 교사들로 구성이 되었다. 교장과 교감은 해당 자격을 가진 사람들 중 지원을 받아 교육청 심사를 통하여 선임되었다.

학부모들의 경우는 신은초가 혁신학교라서 일부러 학교 근처로 이사를 와서 입학을 한 소수의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혁신학교가 어떤 학교인지도 모르면서 새로 지은 이피엔하우스가 입주를 하면서 인근에 있다는 이유로 신은초로 전입을 온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신은초로 입학을 하고 보니 혁신학교라고 하여 그때부터 학부모와 아이들이 ‘혁신학교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학교에서 마련한 각종 학부모 연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개교할 당시 저녁시간에 처음으로 연 학부모 연수에는 1100여 명 학생들의 학부모들 중 400여 명이 학교 안내 연수에 참여한 것을 보면 대단한 관심이었다. 이후에도 학부모회 구성, 각종 학부모 동아리 활동, 학부모의 봉사 활동 등 각종 모임에 많은 학부모들이 참여하였다. 학년초가 되어 신학년도 학년 운영과 학급운영에 대한 대화의 시간에는 70~90%의 학부모들이 참여할 정도로 학교 교육에 대하여 높은 관심을 보이곤 하였다. 그렇다고 그런 높은 참여를 보일만큼 학부모들이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은 동네는 아니다. 초등학교 자녀들을 두고 있으면서 세를 살다가 어렵사리 내 집을 마련해 온 사람, 다자녀 가구라는 이유로 우선 입주할 수 있는 혜택를 받아 입주해 온 사람 등 대부분 학부모들은 경제적 형편들이 넉넉한 가정은 별로 없었다. 단지 젊은 학부모들이 많다 보니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이 많았다고나 할까?

아무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모인 학부모들은 신은 혁신학교에 대하여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하고 협조를 하려는 분위기는 높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 중에는 자녀 교육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학교의 다양한 학부모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은초의 교장은 글쓴이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린 후배 교장이었다. 중간에 교장이 바뀌어 들어온 분도 내 대학 2년 후배였다. 그러니까 글쓴이가 이 학교에서는 제일 원로였던 것이다.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으로 다양한 전교조 활동 경력을 갖고 있어서 전교조의 참교육 운동에도 정통해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왔다. 더구나 혁신학교인 신은초에 들어가서 혁신학교의 기틀을 잡기 위하여 전교조 초등 강서지회를 중심으로 ‘혁신학교 연구 모임’을 만들어 주도하기도 했다.  그런 준비 속에 신은초로 들어갔으니 글쓴이가 신은초의 혁신 방향에 대하여 줄기를 잡아가는데 일정 부분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다. 글쓴이가  혁신학교와 관련된 일이거나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회, 교사다모임, 학부모 동아리, 초록 동아리 등 학교의 주요한 활동에 간여하고 있기 때문에 학부모들 중에는 글쓴이와 학교 일들에 대하여 어떻게 나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하여 의논하거나 상담을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혁신학교의 성공을 위한 교사, 학부모들이 만나는 혁신 교육 연구모임의 필요성이 생겨

 

글쓴이는 이참에 혁신학교 운동에 관심이 많은 교사들과 학부모들을 모아 정기적인 연구모임을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글쓴이의 생각을 혁신학교를 주도해 가는 몇몇 교사들과 앞장서서  활동을 하는 몇몇 학부모들에게 제안을 했더니 다들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그렇게 하여 ‘혁신신은교육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월 1회의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운영해 가자고 결정을 하였다. ‘혁신신은교육포럼’이 창립되면서 교장과 교감에게도 알리고 협조를 구했다.  관리자들은 이런 취지를 크게 환영하지는 않았지만 부정을 하지도 않았다. 이들 관리자들도 필요할 때는 포럼에 부르면 잘 참석했다. 그렇게 하여 자연스럽게 학교 운영에 대하여 교사와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포럼에서 학교 관리자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눌 때, 사안에 따라 그들의 입장을 듣고 협조를 구할 것은 구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 협력 관계를 조성해 갔다. 그렇다고 이들 관리자들이 포럼의 고정 멤버는 아니었다. 옵서버 정도로 필요할 때 참여하는 정도였다.

교사들 중에는 혁신학교 업무를 떠안고 중심적으로 활동하는 팀장들도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이들은 학교 일에 바빠서 그렇게 열심히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팀 업부와 관련된 주제를 가지고 포럼을 운영할 때는 참석을 권유하면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모인 정규 멤버로 교사들은 7~10명에 이르렀고, 학부모들은 학년, 동아리, 학부모회 활동을 하는 분들을 중심으로 15~20명이 모였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 중에서 포럼을 운영하기 위한 교사, 학부모 공동 운영위원장을 1인씩 두고 각종 기록과 진행을 돕는 총무와 운영위원 등 6~8묭 정도 두어서 포럼이 운영될 수 있는 임원들을 확보하였다. 

이런 준비 과정을 거쳐 2014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포럼을 운영하였다. '혁신신은교육포럼'은 간단한  창립대회를열고 운영 규약을 마련하고 연간 운영 계획을 세워 출범하게 되었다. 느슨한 연구, 토의 모임이기 때문에 강한 구속력은 없었지만 교내의 학년, 학급, 동아리, 학교운영위원회 등 다양한 활동 속에서 만나는 관계라서 생각보다 끈끈하게 운영이 잘 되었다. 비록  신은초 교사나 학부모들은 정회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원할 때는 언제라도 참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많은 학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가정통신문을 가정으로 발송하고, 포럼 참여를 권유하였다. 정규 회원들은 포럼이 열릴 때면  주변 학부모들에게 알려 함께 하자고 권유하기도 하였다. 주제에 따라서는 교육청이나 관련 교육단체 등의 외부 인사들을 초청하여 강연 시간을갖고, 그들의 의견을 구하기도 하였다. 주제에 따라서는 50~60명이 모일 때도 있지만 잘 모이면 20명 내외가 모였고, 그렇지 않을 때도 10~15명 정도는 모여서 포럼이 진행 되었다.

 

 포럼의  주제는 교육의 본질과 학교 현안 중심으로 선정되어

 

사람들은 ‘포럼’하면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이우러지는 학술모임 등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포럼은 ‘심포지움’ 등의 전문가들만의 토론회가 아니라 전문가와 비전문가 등이 자연스럽게 섞여서 전문가 그릅이 정해진 시간(10분 내외 등)의 발표를 듣고 참가자들로부터 자유로운 질의, 응답을 할 수 있게 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혁신신은교육포럼’도 이런 방식으로 느슨하게 만나서 ‘교육의 본질’, ‘힌국 교육의 역사와 특성’, ‘교육 혁신’, ‘학교 현안’, ‘영어 교육에 대한 의견’, ‘독서 교육’, ‘자녀 교육’, ‘학부모의 학교 참여, 혁신한마당, 평가와 통지 방법, 법제화된 학부모회, 학부모의 교육과정 참여, 학교 자치, 봄과 가을학기 운영’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하여 교사와 학부모들이 자유롭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시작한  '혁신신은포럼'에 글쓴이 2016년 8월 말로 정년퇴직을 했음에도 그후 근 1년 간 지역 사회 인사 자격으로 계속 참여를 하였다 . 카페를 운영하면서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보면 3년 간 24회의 포럼이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창립 준비를 위한 모임이나  중간에 임원들 모임, 비정기 모임 등을 포함하면 40여 회 모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졸업을 하거나 이사를 가는 등 일부 회원들이 빠져나가면서 지금은 운영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혁신신은교육포럼’에서는 포럼을 활성화 시키고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기 위하여 카페를 만들어 운영했다. 카페에는 발제했던 글이나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 포럼에 참여했던 소감 등을 정리하여 비회원들도 일별할 수 있도록 운영하기도 하였다.

앞으로 몇 회차에 걸쳐 ‘혁신신은교육포럼’에서 운영된 내용들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이런 소개는 당시 운영했던 카페 등에 정리된 기록들이 있고, 글쓴이의 기억 등을 근거로 소개될 것이다.

김광철 객원편집위원  kkc0828@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