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속이 참 좁다. 스스로 ‘밴소’란 별명을 달았다. 밴댕이 소갈머리 또는 소갈딱지 준말이다. 

밴댕이                                                                   사진 : 나무 위키
밴댕이                                                                   사진 : 나무 위키

옹졸하고 편협하니 좋은 게 있다. 폭력을 저지르거나 싸울 일이 없어진다. 생각과 가치관이 크게 다르면 부딪치지 않고 피한다. 특히 기본이나 인간성이 안 되거나 못 됐다고 생각하면 시비 가릴 것 없이 모든 관계를 끊어버린다. 뒤에서 비난하거나 흉볼 생각조차 갖지 않고. 사람도 아닌데 욕한들 무슨 소용 있겠느냐며. 

난 비폭력주의를 추구하지만 아직 비폭력주의자는 아니다. 비폭력이란 단순히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넘어 원수나 적이라도 사랑으로 감화시키는 언행이기 때문이다.

3월 대통령선거 이후 윤석열 정권에 대한 평가나 전망에 관한 원고청탁과 강연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공부해온 대로 미중관계 포함 국제정세에 관해서는 신나게 글쓰고 말할 수 있지만, 윤석열-김건희-검찰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조차 하기 싫다. 비판은 대상의 실체를 인정하며 그에 대한 사랑을 어느 정도 담아야 하기에.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옹졸과 편협을 감추기 위해 가끔 위선을 부린다. 예를 들어, 지난달 분단체제와 통일에 관해 강연하면서, 남쪽 안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는 게 바람직하고, 남북 사이엔 자유와 평등이 어우러지는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게 좋다고 했다. “진보는 개혁을 통한 발전을 이루기 좋지만 사회 안정을 깨뜨릴 수 있고, 보수는 현상 유지를 통한 안정을 이루기 쉽지만 발전을 꾀하기 어렵다. 인류의 가장 기본적 가치 두 가지는 자유와 평등인데, 남쪽은 자본주의 자유를 지키되 복지정책을 확대하며 평등으로 나아가고, 북쪽은 사회주의 평등을 유지하되 개혁개방을 실시하며 자유를 확장하면, 막대한 통일경비나 엄청난 사회혼란 없이 복지사회 통일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강연이 끝나자 질문이 들어왔다. 진보와 보수의 공존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윤석열 정부도 인정해야 하느냐고. “우리가 윤석열을 아무리 싫어해도 그는 가장 많은 유권자 표를 얻었다. 국민 거의 절반이 그를 뽑았으니 인정해야 하지 않겠느냐. 1-2년 안에 그가 탄핵당할 만큼 나라를 말아먹는 것보다 이왕 정권 잡았으니 나라를 조금이라도 발전시키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으로 답했다. 너그러운 듯 위선을 부린 것이다.

밴댕이가 위선을 부리지 않고도 윤석열 정부를 인정하며 사랑을 담아 비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재봉 주주  pbp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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