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도로에서 만난 '거지덩굴'과 '산수국', 보목 포구에서 바라보는 서귀포의 새끼섬들
지난 7월 19일 사촌 누이 아들 결혼식이 있어서 제주를 다녀왔다. 가서 장모님 댁에서 잤다가 다음날 제주시 산천단에 있는 난타호텔에서 열리는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난 아내와 함께 버스를 타고 결혼식장을 찾아가는데, 교래리 입구 정류장에서 갈아탈 버스를 기다리면서 주변에 보이는 들꽃들을 살펴보았다.
결혼식이 끝난 다음 기왕에 제주에 왔으니 ‘자리 물회’를 먹어볼 생각을 했다. 어릴 때 여름철이면 즐겨 먹었던 ‘자리 물회’가 생각이 난 것이다. 재료들을 사고 장모님 댁에 가서 만들어 먹을 수도 있었지만 너무 번거로울 것 같아서 ‘자리 물회’로 유명한 서귀포시 보목동을 찾았다. 보목동을 찾은 김에 포구 뒤쪽에 우뚝 솟아있는 제재기 오름을 올랐다. 제재기 오름은 오름이라야 해발 94m 밖에 되지 않은 낮은 오름이다. 제재기 오름을 오르면서 꽃이 피어있는 식물들을 중심으로 몇 종을 살펴보았다.
‘교래리 입구’ 정류장은 516도로의 한라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운향과의 ‘구릿대’와 꽃봉오리가 한창인 포도나무과의 ‘거지덩굴’을 살펴볼 수 있었다. 옛날에 뿌리를 캐어 당뇨 치료제로 쓰였다는 '하늘타리'도 하얀 꽃들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그 꽃 모양이 마치 털복숭이 강아지를 연상케 하여 여기 ‘한겨레 온’의 ‘이 사진 한 장’에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 꽃을 보고 있으니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키우는 개가 떠올라 ‘한겨레 온’에 ‘토리 세상’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소개한 것이다.
결혼식장에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여 시간이 남아서 ‘난타호텔’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 특이한 식물이 없나?'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눈에 띠는 것은 ‘산수국’과 ‘치자’, 귀화식물인 '금계국' 등이었다. 요즘은 봄, 가을에 비하여 주변에서 꽃을 보기가 쉽지 않은 계절이다. 꽃들이 많이 보이질 않아 아쉬웠다.
‘산수국’은 한라산 중턱에 지천으로 피어 널려있지만 조경수로 심어 가꾸는 것은 멋이 덜한 것 같다. 산수국은 다른 꽃들보다 벌, 나비를 불러들이기 위하여 헛꽃을 달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하지만 그 헛꽃들이 벌써 퇴색이 되어 노랗게 변한 것들도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버스를 타서 서귀포 보목동으로 향했다. 가서 제재기 오름도 오르고 ‘자리 물회’를 먹을 요량으로 보목동을 찾은 것이다. 제재기 오름을 오르면서 꽃이 피어있는 식물 몇 종을 살폈다. 우리나라 전국 어디에서나 봄부터 가을까지 피는 '개망초'는 지천에 널려있고, ‘루드베키아’ 속의 ‘원추천인국’들도 피고 있었다. 이 식물들은 모두 귀화식물들이라 큰 관심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며 꽃을 피우고 있는 백합과의 ‘참나리’와 ‘노랑원추리’ 꽃이 참 예쁘게 피어 우릴 반겼다. 우리나라 남부지방과 제주도에서 겨울철 숲 밑에 보면 ‘자금우’와 함께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백량금’이라는 목본성의 자그마한 식물을 만날 수 있다. 그 백량금이 여름철에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꽃을 살펴본 아내는 꽃모양이 5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외에 꽃을 피우고 있지는 않았지만 관상용으로 좋은 ‘석위’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보리장나무’, ‘팽나무’, ‘예덕나무’, ‘까마귀쪽나무’, ‘천선과나무’, ‘사스레피나무’, '동백', ‘곰솔(해송)’ 등 난대성 상록수와 낙엽수들도 만날 수 있었다. 고사리들도 몇 종 만날 수 있었지만 이들의 이름은 확실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일색고사리’와 줄기를 뻗어 자라는 ‘실고사리’, 포자가 별모양으로 생겼다는 '별고사리', 잎면이 유난히 반짝이는 ‘도깨비고비’ 등은 남부지방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양치식물들이다, 이곳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그 외에 요즘 제주에 가면 등산로나 산책길에 많이 심어져 있는 ‘털머위’들 번쩍이는 잎을 드러내 놓고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제재기 오름을 내려온 우리 부부는 보목동에서 ‘자리 물회’로 유명한 ‘어진이네 집’을 찾았다. 그곳에서 나와 아내는 ‘자리 물회’ 한 그릇씩 시켜 먹었다. 그 전에도 이곳에서 ‘자리 물회’를 시켜먹어 보았는데, 내가 어릴 때 집에서 만들어 먹었던 ‘자리 물회’ 맛은 아니다. 육지에서 여행 온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좀 달게 만들었고, 각종 야채들이 덜 들어가서 불만이었다. 우리가 어릴 때 집에서 만들어 먹었던 ‘자리 물회’에는 반드시 초피 잎을 다져 넣었다. 추어탕을 먹을 때 산초가루를 넣어 먹기도 하는데, 초피와 산초는 나무 모양과 잎 등이 너무 닮아 사촌지간이라고나 해야 할까? 둘 다 운향과에 속하는 작은키나무이다. 차이점은 잎과 가시가 달려있는 차이다. 초피는 잎이 달린 잎자루와 가시가 마주나는데, 산초는 어긋난다.
산초는 우리나라의 어느 지방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초피는 지리산 주변이나 남부지방, 제주도 등 따뜻한 곳에 자란다. 요즘 해안국립공원으로 개장을 했다는 인천 무의도에서도 초피나무를 많이 본 적이 있다. 초피는 서해안 바닷가와 섬에도 자생을 한다. 제주에서는 여름에 '자리 물회'에 넣어 먹기 위하여 집집마다 초피나무 한두 그루는 심어 가꾼다.
초피의 알싸하고 자극적인 맛이 ‘자리 물회’의 독특한 맛을 낸다. 하지만 이곳 식당에서는 초피를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부추와 미나리, 오이, 풋고추, 양파 등을 썰어 넣고 국물은 된장을 사용하는데, 이곳 ‘자리 물회’에는 된장 대신 고추장을 넣어 국물을 하고 있어서 어릴 때 먹었던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어릴 때 먹었던 ‘자리 물회’에는 시큼한 맛을 내기 위하여 빙초산을 사용했다. 이곳 물회 집에서는 식용 빙초산과 요즘 시중에 흔히 파는 발효 식초가 준비되어 있어 골라 넣어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제주도에 가서 ‘자리 물회’ 식당을 찾으면 초피를 준비해 주는 식당들도 있다. 고추장 대신 된장을 사용하는 등 맛을 내는 방법들이 다양하여 식당마다 ‘자리 물회’의 맛이 다르다. 입맛에 맞는 식당을 찾아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내가 고향을 찾을 때는 서귀포 올레시장에 가서 손질해 놓은 자리돔을 사고 와서 직접 만들어서 먹을 때가 많다. 그래야 내 취향에 맞게 '자리 물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초피, 부추, 미나리, 마늘, 양파, 오이, 당근 등을 썰어넣고, 거기에 고춧가루와 마늘 다진 것, 참깨가루 등의 양념을 넣어서 만든다. 사람에 따라서는 참기름을 한두 방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옛날 냉장고가 없을 때는 바닷가 등에서 솟는 시원한 용천수를 넣지만 요금은 냉장고의 어름 등을 넣어 더욱 시원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자리 물회’에 ‘한라산’ 소주 한 병을 곁들이면 이보다 더 환상적인 제주의 여름 음식이 있을까?
나와 아내는 ‘자리 물회’를 먹고나서 보목포구로 나가 바닷가를 산책하였다. 포구 앞에는 파초일엽이 자생하는 곳이라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 섶섬이 우뚝 솟아있다. 화산암 중의 하나인 안산암 바위덩이가 바다 가운데에 불쑥 솟아 이루어진 섬이다. 섶섬 주변은 산호초 등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서 해양생태계 보전 지역으로 지정이 되어 보호하고 있는 곳이다.
섶섬 동쪽 바다를 보면 섶섭과 같이 우뚝 솟지는 않았지만 넓적하게 떠 있는 섬이 보인다. 그곳은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무인도인 ‘지귀도’이다. 아내와 함께 바닷가 산책을 하면서 보목 포구 인근에 세워진 한기팔 시인의 ‘자리 물회’ 시비의 시를 읽으며 시에 대한 평을 나누기도 하였다. 소형 선박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 가까이 다가갔더니 옛날 등대의 일종인 ‘도대’와 제주 사람들이 통나무를 엮어서 만든 배, ‘테우’를 볼 수 있었다.
보목동은 옛날에 '볼레낭개'라고 불렀다. '볼레낭'은 '보리장나무'나 '보리밥나무'를 이르는 말이다. '개'는 바닷가를 의미한다. 이런 옛지명을 한자말로 옮기면서 '보목동(甫木洞)'이라는 지명으로 바뀐 것이다. 보목동은 제주 본섬에서는 최남단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이어서 겨울에도 거의 눈이 내리지 않는 따뜻한 지역이다.
보목동은 제주 올레 6코스 중에 들어있다. 6코스는 쇠소깍, 제재기오름, 보목포구, 거문여, 소정방, 칼호텔 해변, 허니문 하우스 절벽, 정방폭포, 소남머리 등 해안의 절벽과 주상절리, 용천수, 검은 빌레(너럭바위 모양을 한 화산암) 해안 등이 어우러져 제주 올레길 중에서도 그 아름다움이 7코스와 쌍벽을 이룬다. 제주 올레길을 찾을 때 6코스를 걷다가 카페에 들러 바다 풍광을 바라보며 아메리카노 한 잔 하는 것도 좋고, 소라, 전복, 해삼 등 해산물 안주에 소주 한 잔은 어떨까?
편집 : 김광철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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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불이 옛날 등대 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