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른 생각들로 순서도 정오(正誤)도 없다. 오호(惡好)와 시비(是非)를 논할 수는 있지만 대상은 아니다. 중복도 있으므로 고려하시면 좋겠다. 여러 차에 걸쳐 싣는다.

 

251.

인간 본연의 性은 자연 性이다. 구태여 찾거나 연구하지 말자. 그럴수록 본연에서 멀어져 괴물이 된다. 자연 성은 억지나 가식이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발현되니 그에 따라 행하면 된다.

산과 물은 절친이다. 산은 산을 두고 흘러가는 물을 정 없다 하지 않고, 물은 물과 함께 떠나지 않는 산을 정 없다 하지 않는다. 지금은 떠나고 보내도 언젠가는 만날 것이기에.
산과 물은 절친이다. 산은 산을 두고 흘러가는 물을 정 없다 하지 않고, 물은 물과 함께 떠나지 않는 산을 정 없다 하지 않는다. 지금은 떠나고 보내도 언젠가는 만날 것이기에.

 

252.

젊은 시절에 편리와 편안만을 쫓지 말자. 성장과 진보는 고통과 고난의 산물이다. 편리와 편안은 안주다. 안주는 퇴보다.

 

253.

왜 山林인가?

모든 생명체를 낳고 기르며 존재케 하는 근원이 무엇인가? 흔히 태양, 물, 공기, 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보다 직접적인 게 있다. 산림이다.

산과 숲이 있기에 흙은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고, 흙은 더욱 흙다워져 모든 생명을 낳고 키운다. 또한 산이 있고 숲이 있기에 물은 흘러야 할 때 흐르고 멈춰야 할 멈춘다. 산과 숲은 만물이 숨 쉬게 한다. 산림은 만물의 식량이고 생명근원이다.

 

254.

기도祈禱는 이기利己와 자만自慢으로 가득한 자기를 부정하고, 만물 만사를 수용하고 포용하면서 마음과 정신을 모아 그들과 하나 되게 하는 심신운동이다. 결국  大一로 가는 것이다. 자기 부정이 없는 기도는 탐욕의 늪이다.

 

255.

성공은 남보다 잘한 결과이고 실패는 못한 결과일까? 성공은 잘한 것이고 실패는 못한 것일까? 잘하고 못한 기준은 무엇일까? 앞섬과 뒤짐, 상위와 하위도 같을까? 앞섬과 상위가 뒤짐과 하위보다 항상 좋을까?

더 상위, 더 앞섬, 더 많이, 더 큼, 더 잘남 등은 좋은 걸까? 그리 될수록 세상은 좋아지고, 뒤짐과 하위 같은 나쁨은 다 사라질까? 앞섬과 상위 같은 좋은 것만 남을까? 모자람과 부족은 다 없어지고, 똑똑함과 영리함만 남을까? 그게 가능하고 바람직할까?

그렇게 될 수 없고 되지 않음도 다 알고 있지만, 대부분 그를 다 추구한다. 그게 세상이라 긍정하고 살아가야 할까? 대안은 없을까? 강자는 옳고 약자는 그를까? 승자는 선이고 패자는 악일까? 다 같이 누리는 성공과 승리는 없을까?

사실 천사는 악마에게 가장 감사하고, 악마는 천사에게 가장 감사하지 않을까? 

확실하고 유일한 것은 태양 뿐인가? 또 다른 우주와 태양은? 하지만 난 오직 나 뿐이다. 그 어디에도 없는 유일 존재다. 유일한 그 안에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무한의 공간이 있다. 오늘도 난 그곳에서 자유롭게 노닌다.
확실하고 유일한 것은 태양 뿐인가? 또 다른 우주와 태양은? 하지만 난 오직 나 뿐이다. 그 어디에도 없는 유일 존재다. 유일한 그 안에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무한의 공간이 있다. 오늘도 난 그곳에서 자유롭게 노닌다.

편집 : 김태평 객원 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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