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를 알리는 현수막
이주를 알리는 현수막

사택 생활에 익숙해 있던 시절 아이들 학교 때문에 결혼10년 만에 천신만고  끝에 내 집을 마련하였다.

대조동 본가의 집은 부모님과 동생들이 함께 살고 있어 우리식구까지  지낼 수 없어서 작은 집이지만 한칸 세를 주고 겨우 몇년 살다가 지금 이 집에 이사를왔다.

그것이 80년도이니 꼭 42년 되었다. 아직도 셋방살이를  경험하지 못한 나에게 경험해 보라는  재개발 덕분에 이사 하게 되었다.

롯데 시그니처 캐슬로 이름지어질 롯데건설과 계약이 되어  기쁜 마음으로 떠나게 되었다.

우리집 이야기1
우리집 이야기1

 

이 집이 낡고 춥고 그렇게 살면서도 처음에는 연탄난로로, 연탄보일러로, 기름보일러로, 태양열과 태양광을 설치하여 더운물과 전기를 생산하면서 검소하게 살았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초, 중, 고 대학을 여기서 다녔고 결혼도 하게 된 정말 제2의 고향인 셈이다.

100평 넓은 땅에 처음에는 잔디를 심어 마당에서 텐트를 치면서 놀았고, 아이들이 커 가면서 잔디를 없애고 텃밭으로 푸성귀를 자급자족했으며, 꿈에 상징인 감나무 두 그루가 풍성한 가을을 선물 해 주었던 유서 깊은 집이다.

지금은 나무가 너무 많이 커서 그늘 때문에 꽃도 피어주질 않지만, 각종 꽃이 겨울 전까지 피어주던 환상의 전원이었다.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고 부추가 셀 수도 없이 자라서 가계에 도움을 주고 씀바귀, 도라지, 맨드라미, 진이 하얗게 나는 상추는 보양식에 도움을 준 행복한 순간을 기억합니다.

며칠 전 감을 수확하고 이웃과 나누고, 한집 두집 떠나면서 공가로 써 붙이고 이사해서 정말 처음으로 느껴 보는 썰렁한 동네가 되었다.

낙엽이 시작되어 감나무 잎과 담쟁이가 낙엽을 이루어서 마당을 쓸면서 내 생애 이제 마당 쓸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며 잡티 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하였다 이 또한 하늘이 준 건강 비법이기도 하다.

돌 하나, 풀 한 포기 싹이 날 때마다 신기했던 추억이 스며 있는 곳 내가 자라던 북녂에 두고 온 고향 집보다는 아니지만, 이 집의 추억도 버금가는 애틋한 정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결혼한 손녀가 감을 따면서 중학교까지 다녔던 추억을 남기고 갔다.

우리집 이야기2
우리집 이야기2

 

반달이라고 부르는 강아지도 운동이 필요 없이 마당에서 뒹구는 놀이터가 되어주었던 곳 어느 것 하나 놓치기가 아쉬워 영상으로 남기려 하고 있다.

딱 보름 후에 이사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어 아들이 이사업체와 재개발조합의 일을 모두 맡아서 처리해 주었다.

정들었던 가구들 소품들 모든 걸 버리면서 내가 죽으면 다 소용이 없게 된다고 생각하고 이 집에 이사 올 때 가까운 곳에서 손수레로 이주하러 와서 한 트럭은 버렸을 것 같은 기분으로 다 버리게 되었다.

우리집 장식물
우리집 장식물

 

아들이 엄마에게 보낸 편지에 버리는 리스트와 그 이유를 조목조목 써서 솜이불은 아파트에 필요가 없고 1년 동안 안 입은 옷도 버리고 그릇 등 새로 구입하는 게 정답이라고 편지를 보내왔다.

얼마나 살게 될 줄은 모르지만 남은 인생 가장 아름답게 살겠다는 아직도 철없는 꿈을 꾸고 있다.

이제 네 번째 스무 살을 살았고 건강할 때까지 멋진 삶을 살아 볼 것을 여기에 남기면서

이사 소감으로 대신한다.

 

 

편집: 최호진객원편집위원

최호진 객원편집위원  chj1959c@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