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른 생각들로 순서도 정오(正誤)도 없다. 오호(惡好)와 시비(是非)를 논할 수는 있지만 대상은 아니다. 중복도 있으므로 고려하시면 좋겠다. 여러 차에 걸쳐 싣는다.

 

271.

왜 태어났는가? 목적과 의도된 탄생인가? 성공? 행복? 승리? 위대해지기 위해서인가? 그렇다면 삶이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

그런 건 없다. 생명은 예정되지 않았고 될 수도 없다. 다 인간의 작위논리다. 이게 모든 문제를 양산한다. 성공, 승리. 경쟁, 싸움 등은 결국 생명을 부정하는 살상과 전쟁으로 이어진다. 그를 위해 태어났단 말인가? 그러므로 업적이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살지 말자. 특별한 원함 없이 그냥 사는 게 좋다. 하지만 삶은 각자의 몫이다.

 

272.

힘! 즉 勸力이라면, 武力, 財力, 腕力, 知力, 學力, 美力, 能力 등이다. 그 중 특히 無道한 것은 武力과 財力이다. 어떤 힘이나 굳건한 사람도 그 앞에서 無力하더라. 아무리 高孤한 者들도 그 앞에서는 맥을 못 추더라. 목숨과 명예를 내 놓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더라. 더럽고 치사하다 야유하고 비난하지만 결국엔 비겁하게 굴복하고 굴종하더라. 그게 인간의 한계인가? 설혹 견디는 자가 있다 해도 극소수다.  그들이 다중에게 길이 되고 빛이 된다고 하지만 극히 미미하더라.

 

273.

60대 접어들었다.(현재는 60대 후반)

이제 나는 나를 떠나려 한다.

지금까지의 나로 살고 싶지 않다.

나에게 씌워진 껍질을 벗겨야겠다.

나니까 나답게 살아야 한다말자.

나는 애초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세속에 때 묻고 더럽혀진 것이 지금 나다.

참 나는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았다.

혼백魂魄도 없었다.

나에게 씌워진 형상과 영혼을 지우자.

나에 대한 내외의 기대를 접자.

외부에 맞춰진 나를 없애자.

더 이상 지금까지의 내가 아니어야 한다.

그렇게 살고 싶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게 진정한 나의 삶이리라.

 

274.

이젠 지금까지의 세상을 잊어야 한다.

현상에 눈 감고 귀 닫아야 한다.

무엇에도 반응하지 말아야 한다.

걸음을 멈추고 생각도 끊어야 한다.

그래야 몸이 순해지더라.

그래도 세상은 그대로일 테지만.

 

생각은 구태의연舊態依然하다.

새로운 생각이란 불가능하다.

생각은 과거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생각은 옹졸하고 협의한 지식의 산물이다.

생각에 기대하거나 따르지 말자.

생각은 실마리를 풀기보단 얽히게 한다.

생각은 고여 있는 물의 순환과 같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악화될 뿐이다.

신선한 생각샘물은 원천이 없고 고리타분해지더라.

 

275.

인간의 삶은 신의 존재유무와 무관하더라.

과거는 물론 작금의 현상들이 그렇지 않는가?

내부기반이 약한 사람들이 외부 힘에 의존한다.

인간이 한계에 봉착할 때, 신은 잠시 위로위안이 된다.

한계극복은 자기내부의 힘뿐이다.

죄악으로 구속하지 말고 신으로 장난치지 말자.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자기의 선택에 따른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