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새로워야... 재미있고... 신난다는...

딸은 만 34세가 되어서야 정규직 직장에 들어갔다. 이제 근무한 지 두 달 되어간다. 처음 한 달은 회사의 근무 방침, 직원이 지켜야 할 수칙 등을 교육받느라 막상 제 일은 하지 못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회사가 하고 싶은 일을 대부분 하게 해준다며 신이 나서 회사 자랑이 끊이질 않는다.

며칠 전에는 “엄마. 나 이번 프로젝트 계획 발표했는데 다들 관심을 많이 보였어요. 시니어 매니저가 타전공 직원들도 이해할 수 있게 쉽고 깔끔하게 발표했다고 엄청나게 흐뭇해했어요. 앞으로 일이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한다.

딸이 제대로 된 첫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니 첫 알바를 했을 때가 생각난다. 딱 15년 전이다. 수능을 본 딸은 수능을 망쳤다고 생전 흘리지 않는 귀한 눈물을 이틀 동안이나 흘렸다. 며칠 의기소침해 있었다. 여태 본 시험 중 최악이라 했다. 첫 과목부터 뭔가 막히기 시작했는데 그다음부터는 머리가 멍해져서 시간만 빨리 가라 하는 심정으로 시험을 봤다고 했다. 왜 그렇게 쉽게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는지 자신도 알 수 없다 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기운을 차렸는지 온갖 수능 관련 책을 내다 버리면서 자기 방을 뒤집듯 정리했다. 속으로 ‘저거저거 재수하면 다 필요할 텐데 어쩔라고 저리 다 내다 버리누~~’ 했지만, 막 수능을 끝낸 시한폭탄 같은 살벌한 딸의 눈치를 보느라 겉으론 내색도 못했다.

그다음 또 며칠 동안은 집안을 샅샅이 뒤지며 화장실이며 싱크대까지 청소했다. “왜 이렇게 쓸데없는 게 많냐?”고 잔소리를 해대더니 심심하다며 알바 자리를 알아봐달라고 했다. 노동으로 돈을 벌고 싶다 했다. 나는 속이 상했다. 평소에 나는 입버릇처럼 "대학 가면 용돈은 네가 벌어서 쓰고, 학비는 50%만 보조해줄 테니 장학금을 타든 돈을 벌든 스스로 알아서 해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은 입시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기 점수로 어딜 갈 건지 끝까지 최선을 다해 알아봐야지 돈을 벌겠다니... ‘야가 대학에 갈 맘이 있나~ 없나~’ 마뜩잖은 생각에 들은 척도 안 하고 좀 기다려보자고 했다.

잠잠해졌나 했더니 며칠 후 딸은 “엄마 나 알바 자리 구했어.” 하는 것 아닌가. 집 근처에 ‘빕스’가 있는데 알바 구한다는 팻말을 보고 들어갔다가 즉시 면접 보고 붙었다며 좋아했다. 돈 벌어서 동생하고 맛있는 것 사 먹고 같이 돌아다닐 거라 했다. 기가 막혔다.

딸에게 “아직 알바할 때가 아니다. 상황 돌아가는 것 봐서 조금 더 있다가 시작해라”고 조건부 허락을 해주었지만, 고집쟁이 딸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다음 주 교육받으러 이틀 가더니 그다음 날부터 일한다고 통보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심하게 반대했지만, 딸은 집 안에 있으면 자꾸 기분만 울적해진다며 바로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둘째 날, 셋째 날은 10시간이나 일했다. 그러곤 병이 나서 며칠 앓아누웠다. 노동도 해본 사람이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그리 고되게 하는데 병이 안 나고 배기랴.

그런 초짜 알바를 두 달하면서 딸은 여러가지 배운 것 같다. 

처음에는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엄마 나 일 잘 한다~”고 자랑하면서 메뉴판 외운 것, 와인 종류 외운 것, 손님들 서빙하는 것, 상냥한 태도로 응대한 것 등을 보여주었다. 약 2주 정도 지나니까 시무룩해졌다. “엄마, 왜 아빠가 공부로 가라는지 알겠어. 다 아는 것 반복해야 하니까 재미 없어. 나는 머리 쓰는 일을 해야 하나 봐. 공부가 노동보다 더 쉬운 것 같아. 대학은 가야겠어.”라며 종알종알했다. 숱하게 이야기했음에도 실감하지 못했던 것을 두 달간 노동 끝에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다른 또 한 가지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것이다. 딸은 5~10시간 그날그날 주어지는 대로 일했다. 어떤 날은 12시에서 저녁 6시까지 일해야 하는데, 아침 겸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간 날은 6시까지 쫄쫄 굶으며 일해야 했다. 어떤 날은 저녁 6시에 시작해서 11시까지 일하는데 역시 이른 저녁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으면 배가 너무 고프다고 했다.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 굶으면서 일을 하고는 집에 와선 거의 기절하듯 쓰러졌다.

그러다가 요령이 생기면서 눈치껏 먹기 시작했다. 빕스는 뷔페 겸 주문 식당이다. 접시를 치우면서 손님들이 먹으려고 집어 왔다가 손도 안 댄 케이크 등을 접시 맨 위에 올려놓고 사람들 없는 곳에서 슬쩍슬쩍 먹는다고 했다. 정말 눈물 나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9시간 넘어 일하면 한 끼 밥을 주는데 처음에는 집에서 먹듯 깔짝대며 먹었지만, 지금은 정말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싹 먹어 치운다는 것이다. 음식의 위대함과 감사함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했다.

딸이 알바하던 연말에 우리는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당시 내 직장 일정으로 갑자기 내린 결정이었지만, 딸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휴가 2주 전에 점장님께 말하든지 대리근무자를 구해야 쉴 수 있다는데... 일주일 전에 휴가를 결정했으니 점장님께 말하는 것은 이미 늦었다. 하루 대리 근무자는 구했는데 이틀은 구하지 못했다.

나는 어쩌나 보려고 이참에 그만두라고 했다. 딸은 여행 떠나기 전날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자고 일어나서 결정하겠다고 하더니... 다음 날 아침, 여행을 위해서 일을 펑크 내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 같다고 했다. 그만둘 수는 있지만 나중에 유니폼 등을 갖다주어야 하는데 거기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겠냐... 창피해서 그렇게 그만둘 수는 없다며 가족여행을 포기했다. 아들은 누나가 안 가면 자신도 가고 싶지 않다고 섭섭해하며 툴툴거렸지만 우리는 속으로 흐뭇해서 웃었다. 딸이 ‘직장에서의 책임감’이란 것을 제대로 깨달은 것 같아서였다.

딸이 알바하는 빕스에서 한 친구가 생일파티를 했다. 직원과 함께 오면 35% 할인해준다며  빕스에서 하자고 했단다. 나 같으면 절대로 내 일하는 장소에 친구를 부르지 않았을 텐데... 성격이 좋은 건지... 장사수완이 있는 건지...
딸이 알바하는 빕스에서 한 친구가 생일파티를 했다. 직원과 함께 오면 35% 할인해준다며  빕스에서 하자고 했단다. 나 같으면 절대로 내 일하는 장소에 친구를 부르지 않았을 텐데... 성격이 좋은 건지... 장사수완이 있는 건지...

이후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1년간 단기로 이런저런 직장을 다녀본 후 '일해 봐야 내 거는 없고 다 사장 거'라며 재미 없다 하더니...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믿음으로 9년 동안 ‘공부고생길’을 걸었다. 이제 그 고생을 마치고 원하던 곳에 취직했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까지는 잘 적응한 것 같다. 딸은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재미있어하는 형이다. 뭐든지 처음 하는 것은 신이 나서 적응이 빠른 편이다. 앞으로도 딸이 제 취향과 성격에 맞게 계속 재미를 느끼면서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미경 편집장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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