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애통(哀痛)하다. 얼마나 슬프고 아픈지를 무엇에 빗대어 말하겠는가. 개개인의 삶이란 각자의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을 만나는 일이라 하던데, 그렇다면 한 나라의 역사는 지금까지 겪어온 것보다 훨씬 더 큰 애통을 감내해야 진전하는가? 긍정도 부정도 못 하겠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 2022-11-24.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 2022-11-24.

지난달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탓에, 아니 구조과정에서 ‘폭탄 돌리기’ 놀이하듯 네 책임이니 나 아닌 다른 누가 해야 하느니 하면서 우왕좌왕 허둥댄 최상위지도자와 하위당국자의 무책임과 무능 탓에, 좀 더 멀리는 여객선 제한 연령을 30년(2008년에 20년에서 25년, 2009년에 30년)으로 늘린 규제완화 탓에, 빠르고 차디찬 바닷물이 가득 차오른 배 안에서 꽃봉오리인 채 죽임을 당한 안산시 단원고교 2학년 학생, 선생님으로서 사명을 다 하다가 제자들과 함께 운명을 함께한 여러 선생님, 그리고 그 배에 탔다가 졸지에 이승을 떠난 선남선녀들이 1일 현재 사망자 213명, 생사불명자 89명으로 드러났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총소리도 대포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302명의 생때같은 목숨이 일순간에 사라진 세상에서 기가 돌고 말문이 열린다면 이상할 노릇이다. 혀가 급속 냉동된 동태처럼 얼어붙지 않으니, 당황스럽다. 몸에 난 아홉 개 구멍을 열어서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대소변을 보는 것까지도 못마땅한 지경이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의 글귀들이 붙어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 2022-11-24.
지난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의 글귀들이 붙어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 2022-11-24.

30대 후반에 중학교 3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을 만나 뵌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성적이 떨어져 어찌할 줄 모르고 헤매던 필자에게 가슴을 열고 격려를 많이 해주신 선생님이셨다. 초‧중‧고 시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을 찾아뵌 지가 너무 오래되어 늘 5월이 되면 마음 한쪽이 무겁다.

선생님을 뵈었을 그 당시에 선생님은 사모님께서 하늘로 이사하신 지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모님께서는 뇌졸중으로 고생하셨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사모님이 얼마나 간절히 그리우셨던지 “숨만 쉬고 있어도 좋으니 아내가 내 곁에 있으면 좋겠네.” 하셨다. 사별과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고, 유가족이 맞닥뜨리는 애통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지라, “사모님께서 숨만 쉬고 계신다면, 사모님도 힘드시고, 선생님께서도 간호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실 텐데요 …” 라고 말씀드렸다. 내게 가까운 피붙이들의 하늘 행을 졸지에 여러 차례 당한 지금에 이르러서야, 당시 선생님의 간절한 심정이 느껴지고, 나의 그런 말은 선생님께 위로가 되기는커녕 비수로 가슴에 박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송구스럽다는 생각만 든다. 이렇게 말씀드렸어야 했다. “선생님! 얼마나 힘드십니까.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포근한 집과 방이 없어진 아픔이셨으리라. 생전에 필자의 할머니는 고씨 집안으로 출가하신 고모님이 집에 오시면 버선발로 달려가서 “우리 고실(高室)이 오냐”고 반기셨다. 말하자면, 아내는 남편의 집이자 방이다. 이렇게 본다면,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따뜻한 방이 딸린 집이 태풍에 날리고 산산조각이 나버린 듯한 느낌이 드셨을 것이다. 감수성이 풍부하셨던 분이라 더욱 그러하셨을 것이다. 격주로 이런 정도나마 칼럼을 쓸 수 있을 만큼 소양을 키워주신 선생님은 국어 전공자이셨다.

한겨레, 2022-11-24.
한겨레, 2022-11-24.

세월호 침몰사태로 부모를 잃은 천붕지통(天崩之痛)을, 남편을 하늘에 빼앗긴 성붕지통(城崩之痛)을, 아내를 잃어 따뜻한 방과 집이 사라져버리는 고통을 겪는 분들을 생각하니 측은지심이 앞선다. 한편 아직도 그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분들은 바로 자식을 앞세운 분들이다. 이른바 참척이다. 슬프고 슬프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보는 듯하다.

어느 날 바람 타고 구름 타고 찾아오는 소리 있어…한번 가신 임은 돌아오지 않고…내 심장 속 깊숙이 꿈을 타고 오라, 그대 기다리는 마음에 오늘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누나’(가곡 <임 그리는 마음>)를 들으며 곡하노니, 실명한 듯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 공자님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겪었다는 곡자상명(哭子喪明)을 실감한다.

대한민국 95년, 서기  2014년 5월 1일

*이 글은 <남도일보>(남도시론, 2014.05.01.)에 실린 칼럼입니다.

<남도일보> 원문 보기:

https://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951

편집 :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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