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다. 그날의 상실과 슬픔이 오롯이 되살아나는 달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실은 눈만 뜨면 언제나 그날이 그날인 듯하고, 그달이 그달인 듯하다. 5월의 현재성, 현재의 5월성이다. 그때 5월의 문제의식은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해 5월에 자식, 형제자매를 잃은 분들이 겪는 상실의 고통은 치유되지 못하고 저 가슴 깊은 곳에 한으로 응고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올봄은 봄 같지 않았다. 봄 날씨인 듯 포근하다가 찬바람이 불었다.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 그런데 여름의 시작인 입하가 5월 5일이다. 코앞이다. 포근한 봄을 몸으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뜨거운 여름으로 바로 가는지 모르겠다. 여름이 시련의 계절이 아니길 바란다.

‘임을 위한 행진곡’, 2004년 대통령이 참석하여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국립 5·18묘지에서 공식 추모곡으로 불린 노래이다. 아마도 이 노래를 잘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모른다면, 그 사람은 한국 사람으로서 유전자가 맞는지 의심을 받을 만하다. 기념식 때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려는 움직임이 몇 년째 이어 올해도 보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공식 추모곡 제작에 나선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할 만큼 쓸 돈과 정력이 남아도는가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할로윈 분장을 한 채 활짝 웃던 자녀의 생전 사진을 든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겨레, 2022-11-22.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할로윈 분장을 한 채 활짝 웃던 자녀의 생전 사진을 든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겨레, 2022-11-22.

5월이라는 말만 들어도 닭살 돋는 사람들이 한 번쯤 들어봤으면 하는 말씀이 ‘곡자상명(哭子喪明)’이다. 이는 ‘논어, 안연 5장’에 호씨가 붙인 주석에 나온다. 공자님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아들의 죽음에 매우 상심하여 실명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자’를 우리가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해석하면, 자하가 자신의 스승인 공자님의 선종을 지나칠 정도로 슬퍼하여 실명했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여기서 ‘자’는 대체로 아들로 새기기에, 문자대로 보면, 곡자상명은 아들을 잃고 몇 날 며칠을 구슬피 울다 보니 눈이 멀어졌다는 뜻이다. 이치에 맞지 않은 허풍으로 보이기도 하나, 커다란 충격을 받으면 눈앞이 캄캄해지기에 수긍이 가는 표현으로 이해된다. 실명이 될 만큼 울려면, 며칠을 울어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남훈씨의 어머니가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변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겨레, 2022-11-22.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남훈씨의 어머니가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변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겨레, 2022-11-22.

상명에서 명(明)을 해와 달로 보면, 상명은 해와 달을 잃어서 밤이고 낮이고 간에 지향하고 나아갈 바를 찾지 못해서 정해진 방향이 없음이다. 혼돈이다. 달리 보면, 상명은 희망이 끊어진 상태, 즉 절망을 뜻한다. 해도 달도 잃었으니 밖으로 나돌아다니지 못하고 안으로만 자신을 몰아가게 된다. 정신 건강상 마땅히 공격성은 외부로 표출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반대로 그 공격성이 내부로 향하게 된다. 오늘날의 용어로 하면, 상명은 심한 우울증과 같은 기분장애로 봐도 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약 2,500년 전에 살았던 자하는 자식을 잃은 트라우마로 울적하게 보내는 나날을 극복하여 결국에는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분으로 올랐는지 모르겠다.

조선시대 허균의 누나인 허난설헌(1563~1589)은 딸과 아들을 연달아 잃고서 상실의 고통을 다섯 글자로 이뤄진 오언시 ‘곡자’(哭子)로 풀어냈다. 필자 나름대로 옮겨본다.

 

지난해 잃었다, 사랑하는 딸

올해도 여의었다, 사랑하는 아들

슬프고 슬픈 광릉 땅에

 쌍봉으로 서로 맞대 세우니

쓸쓸히 불어오는 새하얀 버드나무 바람

도깨비불 되어 소나무와 개오동을 밝히네

 

저승길 노잣돈 지전이 너희 넋을 부르고

 맑은 찬물을 술 삼아 너희 무덤에 올리니

응하여 오누이가 혼을 알아보고

밤마다 서로 쫓아다니며 놀려나

뱃속에 또 아이가 노는데도

어찌 잘 자라기를 바라리오

 

 물결은 끙끙 앓고 황색 무덤이 말을 해도

피 울음과 슬픔이 그 소리 삼키네.

허난설헌(許蘭雪軒). 출처: www.gn.go.kr/www/contents.do?key=635
허난설헌(許蘭雪軒). 출처: www.gn.go.kr/www/contents.do?key=635

아마 5월의 어버이들은 생때같은 자식을 잃었기에 ‘곡자’와 ‘곡자상명’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거다. 최소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도 기념식장에서 마음 놓고 불러 곡자상명의 처지에 처하신 분들이 제대로 슬퍼하고 애도하도록 정녕코 누가 헤아려야 하는가?

대한민국 94년, 서기  2013년 5월 2일

*이 글은 <남도일보>(남도시론, 2013.05.02.)에 실린 칼럼입니다.

<남도일보> 원문 보기:

http://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41747

편집 :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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