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 제8시집[노비따스]에서

눈쌓이는 내리막길
백미터쯤 발발길때
우산씌워 팔장끼고
발을놀려 눈을치워
안전평지 인도한뒤
홀연하게 사라진넷
무섭다는 중학생들
전혀의외 착한행동
참놀랍고 대단한일

 

사진과 디자인 김인수 / 사진에서 '사'라는 글자의 왼쪽이 살짝 경사진 내리막길이다
사진과 디자인 김인수 / 사진에서 '사'라는 글자의 왼쪽이 살짝 경사진 내리막길이다

참 놀랍고 대단한 일, 중학교 2학년 남학생 넷

흔히들 우스개로 말한다, 북한이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들이 무서워서라고. 그러나 필자는 감히 말한다, “그 말은 결코 절대 진실은 아니다. 중2 학생 가운데 일부가 그럴 수는 있으나, 그보다 훨씬 많은 학생은 ‘참 놀랍고 대단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씩씩한’ 새싹들이다.” 정말 그런지 사례를 통하여 증명하고자 한다.

필자는 1977년부터 학교 근무를 시작하였다. 지금은 여덟 번째 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그 학교는 수도권 전철 ‘수인 분당선 매교역 7번 출구 가까이’에 있으며 백 년도 넘는 역사를 지녔다. 그런데 이 학교를 근무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이 학교의 학생들은 언제나 인사를 열심히 한다,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로 큰 목소리로 고개를 꾸벅하고 밝게 웃는다.

엘리베이터 없는 학교 건물 5층에 자리가 있고 2층의 1학년과 3층의 2학년에게 과학 수업을 하는 필자는, 계단을 이동하는 시간이 보통 사람들의 3배 이상 소요된다, 왜냐하면 왼쪽 다리가 현저하게 가늘기 때문이다. 한 개 층을 이동하는 데 2분쯤 걸리고, 특히 계단을 내려갈 때 위험하여 낑낑대는데, 학생들은 큰 소리로 인사하고 지나간다 ‘시선 강박’ 없으니 힘내시라는 듯.

2022년 12월 13일 16시 30분 퇴근길, 비가 오다 그치고 싸락눈까지 쏟아져 금세 쌓이면서 살짝 어는 상황, 평소에 눈과 빙판길을 극히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필자는 학교 입구 내리막길을 발발 기면서 내려가고 있었다. 아차 하면 미끄러져 낙상사고로 이어질 초긴장 상태, 누군가 우산을 씌워 주었지만 사양하였다. 내리는 눈보다 미끄러질 듯한 바닥에 온 신경이 곤두섰기 때문이다.

잠시 후 학생들이 와르르, 남학생 넷 중 한 명은 우산을, 두 명은 팔을 내밀어 자신들의 팔을 잡도록, 아주 듬직했다. 나머지 한 명은 앞장서서 발을 열심히 놀려 눈을 치우고 안전하게 딛도록, 깊은 감동이었다. 내리막길 끝 편안한 길에 닿자 홀연히 사라진 그들은, 전혀 의외의 착한 행동으로 참 놀랍고 대단한 일, 성서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이었다.

시켜서 하는 일과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서 하는 행동은 다르다.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선행이었고, 참 놀랍고 대단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씩씩한 새싹들이었다. 다음날 필자는 조용히 그들을 찾았다. 마침 한 학기에 한 번 있는 지필고사가 시작되는 날이라 그들을 직접 부르지는 않았고, 담임 선생님께 어제 있었던 일을 소상하게 알렸더니 평소도 착하게 행동하는 학생이란다.

중학교 2학년 남학생 넷 중, 김지호, 박호영, 이창우 셋은 5반, 한 명은 7반 최민지(담임 곽찬이 역사 사회 담당)였다. 5반 담임 이경순 선생님은 종례를 통하여 착하게 살라는 훈육을 꾸준히 해 왔다고 하였다. 훌륭한 담임이 착하고 씩씩한 제자들을 키운 사례를 확인한 것이다. 부디 그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에 담임 선생님의 관찰기록으로 잘 남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사흘 후 지필 시험이 끝나는 날, 학교 행정실 경유 담임 선생님을 통하여 그 학생들에게 전해진 스티로폼 상자는 필자가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미리 주문해둔 것이었고, 제주도에서 직송된 오메기떡 50개가 들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남학생 넷은 그 오메기떡을 학급의 친구들, 학교의 선생님들, 가정의 부모님 등과 잘 나누어 먹었을 것이라 믿는다.

교직 생활 46년째의 필자가 만난 제자는 수만 명이지만, 이와 같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처음이다. 식물이 제대로 잘 클지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한다. 이 중학교 2학년 남학생 넷은 미래에 바람직한 모습으로 잘 자라 훌륭한 어른이 될 것이다. 참 놀랍고 대단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씩씩한 새싹들에 필자의 졸시를 바친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장

김인수 주주  pppp77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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