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편 <여순 민중항쟁> 75주기에 열어보는 역사의 봉분! <필명 김자현>
보성강 핏물에 은어가 뛸 때
내는 이제 고만 갈라네
짧은 해지고 오늘도 저녁상 디밀고 나는 석곡천에 나 앉았네
당신을 처음 만나 수줍었던 곳
잊을 수 없는
그날 그 시간에 매달려왔지만
언젠가부터 까물까물 희미해져 가는 추억
가뭄에 갯지렁이 타들어 가듯
내 가심에서 타고 남은 재 한 삽씩 퍼내고 앉아
당신과 인연은 여기까지일까
남도 땅 어디라고 당신 핏자국 없겠는가?
여순 후폭풍 건너뛰며 수상한 시절에 만난 사람들
벌벌 숨어서 우리 사랑을 했지
보성강 핏물에 은어가 뛸 때 동백처럼 우리 붉은 사랑을 키웠네
그래도 내는 고만 갈라네
남도 땅 어디라고 여수 순천 핏자국 없겠는가?
발길에 걸리는 여순 항쟁 뼈 밭 골라 딛으며
남도 천 굽이굽이
우리 발길 닿지 않은 곳 어디든 가
석삼년 타들어 가는 자갈밭을 일굴망정
초롱 흔들리는 당신과의 밤이 좋아
보성강 핏물에 은어가 뛸 때 동백처럼 우리 사랑을 키웠네
가까스로 6.25 지나 목숨 부지하는가 했더니
봄이면 산수유 피어나고 매화가 피듯
우리의 사랑 도타울 날만 있을 줄 알았더니
총살이라니 아이고— 총살
서릿발같이 모든 살이 뻣뻣이 섰어
하늘이 흔들리고 세상 모든 소리 삽시에 떠나갔어
홀로 맞이하는 밤마다 검은 그림자 날 덮치고
가뭄에 갯지렁이 타들어 가듯
가심에서 한 삽씩 타고 남은 재 퍼내는 밤
당신과 인연은 여기까지일까
당신 아들 기수와 함께 의탁할 곳을 찾아 우리 떠나네
남도 땅 어딜 가든 당신의 그림자 없겠는가
자라가 숭덩숭덩 알을 낳는 강변 따라
남도 삼백 리 어디라고 장태환 출몰하지 않겄는가
보성강 핏물에 은어가 뛸 때
백 년 기약한 당신 두고 나는 갈라네 고만 떠날라네
*. 희생자- 1949년생인 장기수님의 부친으로 1925년생 고 장태환 님이십니다.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유정리 321번지에 사시던 중 여순 항쟁에 깊이 관여한 사촌 형님이 계셨답니다. 사촌 형이 오면 가끔 밥도 주고 재워도 주셨다지요. 그런데 그를 도와줬다는 이유로 연행당해 모진 고문을 당하신 후 총살당하셨다 합니다. 개가하시는 어머니를 따라가 사는 바람에 서러움을 많이 받고 자랐다는 유족 장기수님! 변고 날짜는 6.25 발발 후로 날짜가 정확하지 않고 다만 1951년 2월 25일로 추정할 뿐이랍니다.
시는 개가를 결심하신 당시 유족 장기수님의 어머니께서 가신님을 그리워하며 올리는 소회로 형상화해 보았습니다. 이것으로 이 엄청난 역사적 질곡과 개인의 원한이 희석되겠습니까. 하지만 백만분의 일이라도 남으신 유족께 혹은 억울하게 가신 원혼이 아직 구천을 헤매고 계신다면 손바닥만한 해원의 한 자락 깔아드릴 뿐이지요. 늘 송구한 마음 무어라 형언할 길이 없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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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가신 영령들, 유족분들과 함께
저도 위로받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