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전에 케이비에스1 FM 라디오를 듣는 중에, 홍난파 선생에 대한 이야기와 귀에 익은 동요 몇곡이 흘러나왔다. 바로 일제시대에 조선동요 100곡집(상/하권)' 책을 간행하여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했다는 난파(蘭坡)’ 홍영후(洪永厚) 선생에 대한 소갯말을 듣고 인터넷을 통하여 좀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아래의 글은 여러 자료를 토대로 홍난파 선생의 생애를 좀더 상세히 기술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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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본명: 홍영후/1898~1941) :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 음악평론가 등으로 다방면에 걸친 음악가로 활동했으며 한국의 슈베르트라 불리기도 한다. 그는 15세에 조선정악(正樂)전습소 서양악부 성악과에 들어가 성악을 배우고, 중앙기독교청년회(YMCA) 중학부 기악과를 졸업한 뒤 바이올린 연주자가 됐다. 이후,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고등음악학교 수료후 도쿄교향악단에서 2년정도 활동하다가 귀국하여 중앙보육학교 교수를 지냈다. 1931년에 다시 도미(渡美)하여 셔우드음악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1933년에 돌아와서 이화여전 강사, 경성보육학교 교수로 일했다.(이때를 전후하여 조선동요 100곡집/하권을 발간함)

1935년부터는 백마강의 추억14곡의 대중가요를 나소운(羅素雲)이란 예명으로 발표하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우리 가곡 작곡에 전념하여 성불사의 밤’, ‘봉선화’, ‘옛 동산에 올라’, ‘고향생각’, ‘사랑’, ‘봄처녀’, ‘그 집 앞등 유수의 명곡을 작곡했다. 그러던 중, 예전의 미국 유학 중에 흥사단에 가입한 일로수양동우회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되었고, 72일간 혹독한 고문을 받고 결국 건강악화 끝에 공개적으로 전향서를 쓰고 기소유예로 풀려나게 된다. 이후 친일단체 조선음악협회에서 활동하며 일제에 협조하는 친일 행적을 보이다가 지병(持病) 늑막염이 악화되어 1941년에 숨을 거두고 만다.

1954난파기념사업회가 생겨 조선동요 100곡집이 재간행되었고, 1968년에는 수원시 팔달공원에 고향의 봄노래비가 건립되고 이듬해 난파음악상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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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는 홍난파 선생의 안타까운 친일행적을 왈가왈부하기보다, 선생이 그 당시의 어린이들을 위해 좋은 뜻으로 간행한 조선동요 100곡집중에서 우리 귀에 익은 선생의 작품인 10여편의 동요 제목을 나열해보았다. (아래)

1. 고향의 봄

2. 달맞이

3. 고드름

4. 햇볕은 쨍쨍

5. 가을 바람

6. 달마중 가자

7. 개구리

8. 퐁당퐁당

9. 작은 별

10. 옥수수 하모니카

11. 무지개

12. 여름

13. 도레미파

14. 꽃밭

15. 낮에 나온 반달

(위의  동요 중에서 ‘11번 무지개를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보았다. )

https://www.youtube.com/watch?v=1x_hYw1Xk_

 

 홍난파 작곡 :  동요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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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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