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여행

할머니를 부축 하고 인사동 길을 산책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부축 하고 인사동 길을 산책하는 할아버지

 

소나기 한바탕 지나간 2023년 7월 어느날 오후
지인의 사진전 감상을 마치고 인사동 거리를 거닐게 됐다.
돌 의자에서 일어나 할머니를 부축하고 걷는 할아버지 모습에
5년 후 내 모습을 그려보는데
은은한 울림 소리가 내 시선을 이동시킨다.
솥뚜껑을 두들겨대는 이방인에게로

 

땅바닥에 깔린 종이 조각 위 글씨

’무전여행 중‘
’빵 한조각, 작은 동전 하나도
큰 힘이 됩니다‘

 

'무전여행 중' '빵 한조각, 작은 동전 하나도 큰 힘이 됩니다' 무전여행하는 이방인
'무전여행 중' '빵 한조각, 작은 동전 하나도 큰 힘이 됩니다' 무전여행하는 이방인

 

65년 전 내 행색이 스치며 머리를 때린다.
고3 여름방학 때 한 친구와 함께
초비상금, 병원비로만 쓸 돈 몇 푼 지니고 2주 계획으로 떠난 무전여행 .

전주에서 순천 진주 마산 부산을 거쳐 경주 포석정에서 표주박 띄워보고
남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본 후 전주로 되돌아 올 계획이었다.
잠은 원두막이나 정자, 촉석루 아래 남강 모래사장에서 잤고
10박 11일 사이 아홉 끼밖에 얻어먹지 못했던 차라 체력이 감당하기 힘들어
경주에서 회향(回鄕) 하고 만 나의 무전여행.

진주에서 마산으로 버스 타고 갈 때 잊지못할 추억

비포장도로에 달리는 시외 버스, 예쁜 누나들이 차장을 하던 시절이다.
사람들을 밀어 차 안에 가득 채우고 두 손으로 열린 차 문을 붙들고 매달려
”오라이“ 소리치며 차를 출발 시키는 빨간 모자 쓴 왈가닥 누나.
차비를 직접 받을 뿐만아니라 승차거부 권한도 가지고 있는 차장의 권한은 막강했다.

기차는 숨어서 타고 갈 수 있지만 버스는 사정이 다르다.
누나에게 무임승차 허락을  받고자 무전여행 중이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다 듣기도 전에 소리치며 떠밀치는데 차 문 쪽이다.
버스 중간 쯤에 서서 가슴 졸이고 있는데 누나는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지나가면서 내손에 돈을 살짝 쥐어준다.
차례로 차비를 받고 내 앞에 섰을 때
눈길도 주지않고 돈만 받은 후 다른 사람의 차비를 챙긴다.
동생같은 학생의 무전여행을  돕고 싶으나 터 놓고 도와주지  못하고
남의 눈에 띄지않게 슬며시 도와주는 누나의 행동
고맙다는 눈길 인사도 하지 못하고 마산 땅에 발을 내디뎠다.

 

무전여행
요즈음은 세계를 다 누비는구나.
옛날 우리는 구걸을 해야만 했지만
요즈음은 자기나라 전통 악기로 전통 음악을 들려주며 여행경비를 조달하는구나.

가방을 들여다 보니 천원짜리 몇 장이 깔려있다.
주변에 구경꾼도 별로다.

어느 나라에서 왔으며 악기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솥뚜껑 같은 악기만 바라보며 정신없이 두들겨댄다.
내 얼굴 바라보기가 수줍어서 일까
11일 동안 밥 아홉 번밖에 얻어먹지 못한 나의 심정이런가
 

연주를 중단시키거나 방해할 수가 없어
지갑에 있는 천원짜리를 털어 가방에 넣어놓고
발길을 돌렸다.

이방인 무전여행 자, 솥뚜껑같은 악기 .
이방인 무전여행 자, 솥뚜껑같은 악기 .

어느 나라 누구인지
작으나 불같은 가슴으로
세계 무전여행 성공적으로 마치소서.

 

편집 :  최성수 객원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최성수 객원편집위원  choiss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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