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중고등학교 입학식과 졸업식 때 만년필을 선물로 주고받는 일이 흔했습니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아버지형제들은 어릴 때부터 기술을 배웠고, 펜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곧 작은아버지생신이니까 이거 작은엄마네 갖다드리고 와.” 끊어온 돼지고기를 건네면서 엄마가 말했습니다. 엄마는 쉽게(?) 말했지만 열 살 전후의 내겐 큰 부담이었습니다. 작은아버지는 서울 정릉에 살았고, 우리 집은 안양이었으니까요.

그럼 안양에서 버스를 타고 남대문에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야했습니다. 혹시 남대문에서 내리지 못하면 낭패니까 남대문이 보일 때까지 두 눈을 부릅뜨고, 한순간도 딴청을 피울 수가 없었지요.

창신동 산중턱에 살았던 고모 네는 학생들 가방과 모자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곳에 다녀오려면 엄청난 양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어느 날 해질녘에 창신동 골목길을 올라가다가 만년필을 주웠습니다.

고모. 이거 고모네 오다가 주웠어.”

형광등 아래서 만년필뚜껑을 뺐다 꼈다 하면서 자랑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고모부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거 고모부 집에 오다가 주웠으니까 나 줄 거지!”

어린나이의 난 펄쩍 뛰면서 안 된다고, 집에 계시는 아버지 갖다드릴 거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고모부가 허어, 고놈 참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벌써 50년 전의 일입니다.

그 뒤로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섯 살 다향이랑 놀이터에 있다가 한 교회의 바자회 소식을 듣고 놀러갔지요. 이런저런 물건들을 보다가 만년필이 눈에 띄었습니다. 만년필을 손에 쥐는데 그립감이 아주 좋았습니다. 가격을 물으니 5천 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 이게 웬 횡재냐!’싶어서 얼른 구입했지요.

마흔을 코앞에 두고 처음으로 갖게 된 만년필입니다. 몇 년 뒤에 그 얘길 들은 지인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습니다. 그걸 산 사람이 다향이 아빠냐고? 주일예배 때 목사님이 혹시 우리교인이 그걸 샀으면 돌려달라고 했다더군요. 그렇게 싸게 팔 물건이 아니었다고. 아무튼 감사하게 사용했습니다.

그 만년필이 고장 났습니다. 잉크를 넣으면 그냥 뚝뚝 떨어져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른 만년필을 새로 구입했지만 그립감이 별로입니다. 2년 넘게 사용을 했으면 손에 익을 만도 한데 도통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예전의 만년필을 수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광화문교보문구 안의 매장에서 수리를 맡겼습니다. 그러면서 만년필의 가격을 알았고, 세일기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수리비가 2만 원 미만이면 수리하고, 그렇지 않으면 세일이 끝나기 전에 같은 걸 구입하려고 합니다. 난 고가의 만년필보다 내 손에 착 감기는 게 좋으니까요.

오성근 객원편집위원  babsangman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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