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학생들과 수원화성과 행궁에 현장학습을 다녀왔다.

그중 한 친구는 고3이다. 진로를 결정 못 하고 졸업 후 총을 가지고 집에서 놀고 지내겠다는 학생이다. 초등학교 때는 등교 거부한 경험이 있다. 다행히 뒤늦게 특수교육을 받게 된 안타까운 학생이다. 서툴지만 배우는 것만은 열심이다. 그 친구가 꽂혀 있는 것은 비비탄 같은 총기류 장난감이다.

행궁박물관에서 
행궁박물관에서 

행궁박물관의 서북공심돈 모형을 자세히 관찰하고. 화성 장안문 성곽 여기저기 총 자국을 만지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시대를 잘 못 태어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관으로 태어나 멋지게 싸움 한 번 못 하고... 특수교육 받는 학생이라 군인 경험도 없을 것이고... 졸업 후 앞날을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하다.

부모님은 오죽 더 생각이 많으실까? 요즈음 주 1회 2시간 바리스타 수업을 받게 하고 있지만… 정말 이 친구의 진로를 제한 없이 무궁무진한 상상의 바다에 놓여 살게 해도 되는 건지. 이럴 때 시스템의 한계를 느낀다.

고 3 졸업시키면 그만이라지만 착한 학생이 사회·교육적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허송세월해야 하니... 나는 합법적인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학생의 의지를 받아 확실한 진로를 제시하지 못해 부모도 자식의 진로를 방치하게 하는데 협조한 가해자. 극단적으로 말해 나는 괴물 교사다. 12월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힘겹다.

학생들 뒷 모습 
학생들 뒷 모습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현경 독자  ggabi40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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