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객의 마음에서 일하라

며칠 전 오후에 지역농협지점으로 송금을 하러 갔다. 11건을 송금하기 위해 입금신청서 11장을 썼는데, 다 쓰고 보니 5장의 금액이 잘못 적혔다. 191,200원인데 191,000원으로 쓴 것이다. 5장을 다시쓰기가 힘들어서 0위에 2자를 진하게 눌러쓰고 좀 찜찜해서 숫자 금액 오른쪽 옆에 한글로 '일십구만일천이백원'이라고 또박또박 써서 창구에 주었다.

그런데 남자텔러가 인사성도 없이 입금신청서를 훓터 보더니 다섯 장의 입금신청서를 반려하며 다시 써 오라는 것이다. 나는 한글로 올바로 썼으니까, 그냥 입금해 달라고 했다. 숫자 하나 애매하다고 힘들게 다시 쓰라고 하느냐, 입금신청서가 메모장이지 뭐가 중요하다고 고객을 골탕 먹이려고 다시 쓰라고 하느냐고 실랑이를 벌였다.

그래도 직원은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면서 5장을 계속 다시 써오라는 것이다. 나는 한글로 써있는 금액이 주요 금액이니 한글 금액대로 입금처리 해주면 되지 왜 다시 쓰라고 계속 강요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그런데 뒤에 있던 남자 책임자가 창구로 나와 나에게 오더니 마스크를 쓴 채로 "왜 큰소리를 내느냐, 규정이 다시 쓰게 되어있다"라며 나를 윽박지르듯이 힐난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수세에 몰리며, 자존심 상하고 반발 심리가 발동해 입금신청서 5장을 바닥에 던지면서 왜 안되느냐고 반박하였다. 그 책임자는 "왜 입금신청서를 던지냐"고 따지듯이 나에게 대거리했다.

나는 너무 기가 막혔다. 설령 고객이 잘못했어도 고객을 윽박지르며 무안을 주면 안 되는 것이다. 화난 고객을 친절히 달래고 화를 누그러뜨릴 생각은 하지 않고 고객을 눌러 이기려는 행태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는 더 큰소리로 내 의견을 주장하였다.

내가 입금신청서 다시 쓰는 것을 거부하고 그냥 입금해 달라는 요구가 크게 잘못된 무리한 요구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얼마든지 내 요구대로 해줄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규정이 그렇다면 그런 규정은 썩어빠진 규정이지 고객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다.

나의 정당한 요구가 무시되고 나를 형편없는 사람처럼 내리누르는 행태를 용서할 수 없어 나는 더욱 큰소리로 내 의견을 외쳤다. 서비스업을 한다는, 그것도 고객 돈으로 영업하는 금융업이 이렇게 고압적이고 융통성 없이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가? 나는 더 큰소리로 떠들며 지점장이 나오기를 바랐지만, 지점장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함께 간 여직원에 의해 밖으로 끌려 나왔지만, 찬바람 맞으며 밖에 있어도 속은 부글거리고 열은 더 치솟았다. 나는 다시 영업장으로 들어가 "이 지점 형편없구먼. 고객을 무시하고 누르기만 하나? 내가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하고 큰소리를 쳤다.

그랬더니 아까의 책임자와 다른 책임자, 두 명이 나에게 와서 또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내가 지지 않으려고 큰소리로 대꾸하니 영업장 안내양이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경찰 부를까요?"하면서 나의 화를 더 돋우는 것이다.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 안내양을 노려보니 안내양이 나를 뚫어지게 맞대응하며 쳐다보는 것이었다.

"어디 손님에게 레이저광선을 쏘며 쳐다보나?"하고 큰소리를 쳤다. 세 명이 나를 공격하는데, 여기서 밀리면 바보 되고 이 인간들 버릇없이 기고만장할 것 같았다. 원래 나는 기가 세서 화가 나면 목소리도 엄청 커진다. 또한 경우에 어긋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우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1:3이지만 밀리지 않고 세 사람 보다 내 목소리가 찌렁찌렁 더 커져만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창구에서 일을 보던 칠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짜고짜 나에게 대들며 조용히 하라는 것이다. 나는 참을 수 없어 "당신이 왜 남의 일에 참견이야. 당신 일이나 봐"하고 쏘아붙이니 당신이라고 했다고 삿대질을 하는 것이다.

"그럼 당신이라고 안 하면 뭐라고 하나?"하고 내가 대드니 그 남자가 나에게 주먹질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닌가. 나도 질 수 없어 손바닥을 들어치는 흉내를 냈다. 이렇게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끼어드는 어쭙잖은 인간도 있다.

그렇게 계속 옥신각신하는데, 책임자가 갑자기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런 사과는 너무 늦은 것이었다. 나는 "사람 진탕 약 올려 놓고 이제 와서 죄송합니까? 사람 죽여놓고 사과하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하고 반박하니, 어처구니가 없는지 한숨을 쉬는 것이다.

몇 번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내가 눌린 자존심이 회복되는 것 같아, "알았어"하고 짧게 대답하고 영업장을 나와 버렸다.

서비스 종사자는 고객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어린아이가 우는데 울지 말라고 다그치기만 하는 부모는 어리석은 부모다. 왜 우는지 물어보고 우는 사유를 해결해 주면 울음은 자동으로 멈추게 되어있다. 어린아이가 우는 것도 까닭이 있고 고객이 화를 내며 큰소리치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다. 화를 내며 큰소리 치는 이유를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 조용히 하라며 고객을 억누르면 되겠는가? 그럴수록 고객은 더욱 화를 내게 되어있다. 참 어리석은 일이다.

'고객은 왕'이고 고객의 말씀은 '왕의 말씀'으로 경청하고 설령 고객이 틀렸어도 왕에게 진언하듯 조심스레 해야 한다. 왕의 심기를 건드리면 목이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면 서비스업에 종사하면 안 된다.

고객이 화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고 고객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고객의 마음을 세심히 헤아리지 못하고 고객을 무시하고 억누르려고만 하면 고객은 오히려 반발심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이런 인간관계, 고객의 심리상태를 살피지 못하는 사람은 서비스업에 적성이 맞지 않는 사람이다.

고객의 심리를 잘 헤아리며 친절하고 원활하게 일 잘하는 직원은 승진하여 후선으로 빠지고 햇병아리 신입직원들이 창구에 앉아 일하고 있으니 창구 서비스는 항상 경직되고 아슬아슬하다. 고객이 기분이 나빠도 그냥 참아 넘기는 일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고객 응대의 중요성과 친절 교육을 시켜도 인생 경험이 적은 젊은 직원들이 심층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고 창구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능숙하고 성숙된 고객응대 요령을 터득하지만 그런 시간까지 고객은 선의의 피해를 본다는 것을 금융기관 당국자들은 심사숙고 해야 할 것이다.

광명시 현충탑 가을단풍 / 필자사진
광명시 현충탑 가을단풍 / 필자사진

 

편집 : 조형식 객원편집위원 

조형식 객원편집위원  july2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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