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먹고 싶어지는 음식이 있지만 육지에서 그것을 맛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제주에서 반해버린 몸국과 고기국수, 고사리육개장, 그리고 빙떡입니다. 제주하면 갈치나 흑돼지를 생각하지만 진정한 제주민중들의 음식입니다.

빙떡이란 소금물에 데쳐낸 무채에 숭숭 썬 쪽파를 메밀가루를 묽게 반죽해서 종이 장처럼 얇게 부쳐낸 피에 돌돌 말아내는 음식입니다. 별 것 아니지만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입니다.

고사리육개장은 돼지 뼈와 고기를 우려낸 육수에 고사리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푹 삶아낸 것입니다. 육지의 육개장과 달리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아서 색이 붉지 않고, 담백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기국수, 고사리육개장과 같은 육수에 모자반을 넣고 끓여내면 몸국, 국수를 삶아서 수육을 올리면 고기국수가 되는 것입니다. 몸국이나 고사리육개장의 경우 메밀가루를 넣어서 국물을 걸쭉하게 끓여내는데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돼지고기도 성질이 차고, 메밀가루도 찬데 왜 몸국에 메밀가루를 섞을까? 그건 음식궁합으로는 꽝인 것 같은데.” 했더니 제주향토요리사인 친구가 말했지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일주일씩 잔치를 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회에도 고추장 대신에 된장을 사용하니까요. 특별히 제주인들이 담백한 맛을 추구했다기보다는 덥고 습한 날씨 탓에 고추재배가 쉽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무엇이든 잘 먹는 나조차도 힘들었던 게 빙떡입니다. 모양은 강원도의 부꾸미랑 비슷한데 맛이 전혀 다릅니다. 부꾸미에는 단팥소나 매운 김치가 들어가는 반면에 빙떡에는 소금물에 데쳐낸 무채가 들어가서 그냥 밍밍하거든요. 처음엔 힘들었던 빙떡을 몇 번 맛보면 평양냉면처럼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몸국이 먹고 싶어서 모자반을 구입하고, 육수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육수에 비해서 모자반이 조금 많아 보였습니다. 그걸 남겨서 모자반부침개를 부쳤습니다. 요즘 제철인 굴이나 조갯살을 넣으면 더 좋았겠지만 마트에 가기 귀찮아서 그냥 부쳤습니다. 그걸 먹은 다향이가 말합니다.

아빠는 살림이 체질인 것 같아!”

……?”

살림이 체질이라고? 살림이 체질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하다 보니 익숙해진 건지 스스로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나도 부엌에 들어가면 어머니한테 야단을 맞으면서 자랐고, 누구한테 요리를 배워본 적이 없으니까요. 또 다향이의 말을 처음 들은 게 아닙니다.

얼마 전에는 정희씨가 갈치조림을 먹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 갈치 한 마리에 28천 원, 무 한 개에 14백 원 주고 사왔습니다. 무의 흰 부분을 큼직하게 잘라서 육수에 넣고 뭉근하게 조렸습니다. 그동안에 양념장을 만들어 두고, 무의 푸른 부분을 채 썰어서 반은 무생채, 나머지는 무나물볶음을 만들었습니다.

잘 익은 무에 양념장을 풀고, 갈치를 올려놓았습니다. 양념이 졸아드는 동안 틈틈이 작은 국자로 국물을 떠서 갈치위에 뿌려주었습니다. 국물이 자작자작하게 만들어진 갈치조림을 먹으면서 다향이가 말했습니다. “아빠는 살림이 체질인 것 같아!” 아내도 말했습니다. “다향아, 이거 식당에 가서 먹으려면 10만 원은 줘야겠다.”

한창 이야기손님으로 다닐 때 모성본능은 없다를 주제로 삼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듣는 분의 대부분이 여자들이었고, 그분들께 말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처음부터 갓난아기가 왜 우는지 알았던 분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세요?” 당연히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아이와 몇 달 지낸 뒤에도 아이가 우는 까닭을 몰랐던 분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역시 아무도 없습니다.

맞습니다. 처음엔 엄마도 왜 아이가 우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곧 아이가 배고픈 건지, 기저귀가 젖었다는 건지, 안아달라는 건지 울음소리만으로도 정확히 알게 됩니다. 그건 아빠나 할머니, 베이비시터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이 모성본능을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고유명사로 인정을 한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익숙해지는가?”의 문제라는 겁니다. 

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라서, 여자라서 잘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이 오랫동안 그 역할을 해왔기에 그렇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유명요리사들의 상당수가 남자들이라는 게 그것을 증명합니다.

: 모자반의 제주 말

 

편집 : 오성근 객원 편집위원

오성근 객원편집위원  babsangmann@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