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에게 보내는 인사

지난 해 이맘 때였다. 이층 야외 테라스에 아무렇게나 키우던 그저그런 화분에서 오종종 너무나 예쁜 꽃이 피었다. 마치 모심기 즈음의 벼포기 같은 풀이 보였는데 게으름으로 안 뽑고 그냥 두었던 것이다. 꼭 실낱 같은 대궁이 끝에 손톱 크기의 작은 꽃들이 피었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손글씨 같은 꽃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물론 이름도 몰랐다.

▲ 작아도 아주 귀한 것이 있다

꽃 진 자리에 사마귀 크기의 씨방이 가느다란 대궁을 흔들며 익어갔다. 잘 익어 볼펜의 점처럼 까만 씨앗들을 혹시나 하며 화분 가장자리에 뿌렸다.

알싸하게 추운 겨울 끝머리에 이사를 했다. 그 작은 생명들이 안 죽고 나를 따라와 함께 산다. 세 포기가 잘 자라 올해 다시 꽃을 피운다. 꽃망울이 맺힐 때부터 마음이 두근두근 설렜다. 정말 작년처럼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려나. 자주 들여다보았다. 며칠 전부터 진짜 꽃이 피었다. 작년보다 더 튼튼한 꽃대에 더욱 선명한 꽃의 언어는 붉다. 아......

▲ 볕이 잘 드는 온상에서 고이 자라는 "애기범부채"

들꽃 사랑이 유별한 경주문협 이노미사무국장에게 꽃이름을 물었다. "애기범부채" 흔치 않는 이름이다. 아득한 이야기가 저 꽃 너머 어디선가 숨은 것 같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어느 새의 선물이다. 새는 참 별 것 아닌 나에게 어쩌자고 이다지 고운 꽃을 보냈을까? 저 꽃 다 질 때까지 나는 한동안 뭉클한 가슴으로 다가가고, 시큰한 콧망울로 새가 준 꽃편지를 들여다 볼 것이다.

▲ 플래시를 사용해 찍으니 단정하고도 요염한 자태다

아무래도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착하게 살아야할 것 같다. 꽃이 준 우정이다.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이미진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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