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미경 주주통신원

이 다음에 늙어서 혼자 놀 수 있는 것을 준비하고 싶어서 3-4년 전부터 사군자와 서예를 배우고 있다. 사군자 수업은 참 편안하다. 선생님은 일흔 가까이 되지만 나꼼수를 즐겨 듣던 분이고 또 여성회원이 대다수라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아 수업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회원이 반반인 서예 수업은 그렇지 않다. 서예 선생님은 팔십 중반에 가깝고 이북에서 내려온 분으로 ‘순 빨갱이 시키들’을 자주 입에 올리는 분이다. 언뜻 듣기론 박통 때 중정에서 일했다 하니 말해 무엇 하랴. 한겨레신문도 종북좌파가 만든 신문이라고 했다.

정치적 관심도 많아 자신의 생각을 여기저기 혼잣말로 툭툭 던지기를 좋아한다. 하여 칼칼한 면이 있는 나와 자주 날 선 논쟁을 벌이게 된다. 제자가 지지 않고 따박따박 대들면 그만 둘만도 하련만 이상하게 자꾸 와서 나를 건든다. 오죽하면 그게 싫어 그만둘까도 생각했을까.

그 뿐 아니다. 60세 넘은 남자 회원들 중 몇몇은 박정희 추종자도 있고 조갑제 칼럼을 복사해서 돌려보기도 하고, 대부분 조중동 애독자다. 이분들의 말이 내 귀에 안 들리면 상관없는데 문제는 이분들이 주로 수업 사이사이 대화를 주도하는 큰목소리파라는 거다. 이러니 곧 죽어도 ‘상식과 정의’를 부르짖는 나와 가끔 쌈 수준인 살벌한 대화가 오갈 수밖에.

▲ 서예 전시회에서 선생님과 우리구 구청장남

IMF를 김대중이 일으켰다고도 하고, 김대중이 광주은행은 살리기 위해 동화은행을 망하게 했다고도 하고, 사대강사업을 반대하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종북좌파 신부들이고, 한명숙, 박원순 등 민주당 쪽 사람들은 다 빨갱이고, 태백산맥을 쓴 조정래도 빨갱이 작가이고, 천안함사고를 북한이 저지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빨갱이고, 빨갱이 노무현이 자신들이 목숨 걸고 지킨 NLL을 북에 내주려고 했고, 부정선거 시국미사를 드리는 신부들이 꼴 보기 싫어서 천주교가 싫다는 등... 말도 안 되는 빨갱이 씌우기서부터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정말 듣고 있기가 괴롭다.

나는 이런 할아버지들의 말에 대부분 들은 척하지 않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거나, 나에게 와서 들으라는 식으로 말을 하면 가만있지 않는다. 대부분 듣기 싫다는 식으로 입막음 방법을 쓰는데 좀 심하다 싶게 말한다.

“박정희는 독재자예요. 영국에서 평가한 독재자 20위 안에 들어요. 김일성은 10위, 김정일하고 박정희는 동급 16위예요. 북한에서 김정일 숭배하는 거나 우리가 박정희 숭배하는 거나 외국에서 볼 때는 똑같은 거죠.”

“천안함 사건은요, 그냥 아무 말 말고 계셔요. 나중에 ‘아이고~ 아무 소리 하지 말고 가만있을 걸..’ 이라고 후회하지 마시고요.”

한창 4대강 사업을 하고 있을 때 이를 옹호하는 일흔 넘은 천주교 형제님께는 이렇게 약을 올린 적도 있다.

“그런 말씀 자제분하고도 하세요? 자제분들이 싫어하지 않아요?”

“그래서 애들이 안 와. 자매님하고 똑같이 말해.”

“아휴~ 자제분 참 훌륭하게 잘 컸네요. 수꼴 아버지 밑에서.”

“참 내 살면서 수꼴이란 말은 첨 들어보네.”

“그런 말 듣기 싫으면 저에게 말 걸지 마세요. 수꼴 할아버지하고 좌빨 아줌마하고 말 섞으면 쌈 밖에 나는 것 없으니까,”

일반 회원들에게는 정말 웬 싸가지?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똑 끊어서 말했다. 그래 그런지 나에게 시비 거는 남자회원들은 점점 없어졌다. 하지지만 선생님은 조심스러워서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씀드렸다. 빨갱이 소리 자꾸 할 때는

“요새 야간고궁 오픈했다는데 선생님이 빨갱이 소리만 안하면 내가 데이트 신청도 할 텐데... ” 라고 살짝 애교를 담아 대꾸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 초 박그네가 잘한다고 나에게 떠보듯이 물은 적이 있었다. 박그네의 박자도 듣기 싫었던 나는 폭발했다. 그래서 좀 예의없게 대꾸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존경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선생님하고 자꾸 말을 섞다보면 존경심이 없어질라 해요. 그니까 저에게 자꾸 말 걸지 마세요.”

몇 회원이 놀라 어이없다는 듯이 허~ 하고 웃었다. 선생님은 몹시 무안했는지 헛~헛~ 해 하시며 말씀하셨다.

“존경심은 무슨 얼어 죽을 존경. 여기서 내가 누구에게 뭔 존경을 받는다고..”

나는 쌀쌀맞게 대꾸도 안했고, 그 이후 선생님은 내 근처에서는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다른 회원에게 가서 “놀러 갔다가 사고 난 거 아니야?”라고 했다가 세찬 반박을 받았지만,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는 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할아버지들이 서서히 말문을 닫았다. 문창극 때부터 그러지 않나 싶다. 문창극 때 처음으로 박그네 흉보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남성회원이 화가 난 듯 큰 소리로 “이게 말이 됩니까? 저런 놈을 총리로 앉히려 하다니.. 이게 다 우리가 친일청산을 하지 못해서 일어난 거예요.” 라고 말했을 때 아무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예전하고 달랐다.

그리고 월요일 망년회라고 했는데 작년하곤 확연히 다른 분위기에 놀랐다. 소위 수꼴 어르신들이 아무도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50대 여성회원들이 오며가며 박그네 욕을 실컷 했는데도 그쪽은 아무 말 없이 기가 죽은 듯 조용했다.

우리 서예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같은 수업을 듣는 할마씨들(엄마 표현으로 대부분 70세 이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할마씨들은 용산참사미사부터 각종 시국미사에 참여하는 울 엄마를 종북좌파라고 왕따 시키기도 하고 세월호 리본을 단 우리 엄마에게 혼자만 잘난 척한다고 뒤에서 흉도 보았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후 할마씨들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게 얻어달라는 성당 할마씨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여름이 되어 4대강사업의 문제점이 터지자 엄마가 옳았다고 인정하는 할마씨도 생겼다. 노령연금의 허구를 접하고 최근 정윤회 소문까지 터지자 “박근혜를 괜히 뽑았어.” 라는 할마씨까지도 생겼다.

12월 19일 엄마와 병원에 가느라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이런 말을 했다.

“아줌마들이 더 난리예요. 나이 든 할머니도 창피하다고 난리던데요?”

국정농단 십상시 정윤회 소문에 대해 여성들이 난리라는 것이다. 그렇다. 각종 여론조사를 봐도 아줌마라 불리는 40대는 물론이고 50대 여성도 박그네에게 상당수 등을 돌린 것은 맞는 것 같다. 12월 중순 경의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박그네 평가에서 긍정-부정률이 모두 40% 중반이던 평가가 일주일 만에 긍정 39%, 부정 49%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라 불리는 6070 세대는 아직 아닌 것 같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데일리한국)를 보면 연령대별 차이는 컸다. 부정평가는 20대 72.9%, 30대 67.0%, 40대 57.0%, 50대 35.8%, 60대 이상은 20.8%였다. 반면 긍정평가는 60대 이상 62.8%, 50대 52.0%, 40대 32.2%, 30대 23.0%, 20대에선 21.7%로 줄었다. 3개월 전 여론조사에서 60대 이상 긍정평가는 75.6%였으므로 3개월 후 12.8%나 빠졌다. 하지만 부정평가는 3% 증가한 것에 불과한 것을 보면 고민 중인 60대 이상이 늘어났다는 거다. 긍정과 부정을 합계 내어 본 것으로도 보면 20대는 95%, 30대는 90%, 40대에서 89%, 50대 88%, 60대 이상은 83.6%이다. 이 또한 긍정도 부정도 아닌 60대 이상은 20대에 비해 10%이상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간 피운 고집은 있어 차마 부정평가를 내리기는 못하고, 평가를 미루고 있는 6070 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동안 60대 이상 특히 70대 이상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사실 경원시 했다. 그런데 이런 통계자료나 주변사람들을 보면 적어도 60대에서 만큼은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련다. 기대 속에 숨어있는 실망도 커질까봐서..

그런데 남편이 이글을 보더니 냉정하게 이런 말을 한다.

“6070 세대가 왜 저렇게 변한 것 같아? 조중동 논조가 바뀌어서 그래. 특히 조선, 동아가 박그네를 까기 시작했거든. 그래서 잠시 기죽은 거지. 아마 조중동의 논조가 바뀌면 다시 돌아갈 걸? 너무 기대 하지 마.”

결론은 조중동 특히 좃선을 없애야 이 나라가 산다는 말인가? ㅠ.ㅠ.ㅠ.

 

김미경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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