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아득한 최초의 언어

인간에게 소리란 무엇일까?

음악의 사전적 풀이는 박자, 가락, 음성, 화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시키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해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다.

글보다 앞서는 것이 소리다. 현생인간과 가장 유사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태초 지구에 출현했을 때 글도 그림도 무용도 아닌, 소리가 가장 먼저 소통으로 쓰였을 것이다. 소리는 말 이전의 단계다. 소리에는 높낮이가 있고, 소리의 크고 작음이 있다. 소리가 음악적 요소를 지닐 때 말이 발전하였을 것이다. 동서양의 음계가 두루 언어 이전의 소리 속에서 명명되었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음악이란 적잖이 각별하다. 지리적 위치로 인한 침략의 피폐함에서 건진 긍정의 한(恨)이 음악과 춤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우리의 한(恨)은 원한과 다른 일종의 해원(解寃)이다. 마음속에 쌓인 사랑이나 이별 등 모든 관계에서 오는 고통과 환희를 가무(歌舞)로 훨훨 풀어내는 민족이다. 풀어냈으므로 잊어야하고 또 닥쳐오는 핍박의 역사를 견뎌왔던 것이다. 해원(解寃)의 행위는 결코 패배주의가 아닌 초월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이 인간의 내면에 끼치는 영향

누구나 젊은 한 때 이런저런 음악에 빠지며 청춘을 보낸다. 애호가들은 일생 음악 속에서 삶의 상당 부분을 여과시키며 살 것이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게 다 심드렁해진다. 경이로움이 점점 사라지는 현상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정치적 인간이었다. 40여 년 신문을 정독하며, 시대정신이 없는 이들을 넌지시 경멸하기도 했다. 대체 책도 신문도 안 읽는 무관심으로는 후진성을 벗어날 수 없다며 공공연히 떠들었다. 출판시장은 무너지는데 K팝 돌풍과 영화산업이 번창하는 걸 보며 절망했다. 저런 세대에게 미래를 맡겨도 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JTBC의 팬텀싱어1은 바쁜 관계로 틈틈이 봤다. 최종 결선에서 내가 지지하던 팀이 탈락되어 속이 좀 상했지만, 우리나라에 훌륭한 싱어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나는 원래 가요보다 성악을 좋아하는 체질(?)이었다. 어릴 적, 경주 어느 부자의 셋째 부인이 옆집에 살았다. 독재의 시절 그 부잣집의 살림이 기울었고, 기역자 모양의 큰 기와집이 요정으로 개조되었다. 여름날 우리 집 장독대에 오르면 아슴아슴한 발을 친 방안이 안타깝게 보였다. 눈이 부시는 모시적삼에 쪽 진 머리의 셋째부인이 타는 가야금소리와 기생들의 유행가가 담을 훌쩍 넘어왔다.

둘째언니와 나는 ‘애인’ ‘빙점’ 이런 노래들을 이불 속에서 따라 부르다가 큰언니에게 많이 맞았다. “세계명곡 365” 뭐 이런 책을 사와서 언니는 우리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줬다. 목월선생의 이별, 바위고개부터 라 팔로마, 라 스파뇨라, 케 세라 세라 등 초등학교 때 다 뗐다.

얼마나 자주 맞았던지 지금도 밴드나 카톡에서 누가 보낸 동영상을 눌러 뽕짝이 나오면 순간 핸드폰을 던질 지경에 이른다.

우리는 무엇을 들었을까?

 

 

어른이 되어 노래방에서 왕따가 된 적 많다. 요즘은 때릴 언니도 멀리 있고, 좀 뻔뻔해져 발라드 정도는 부른다. 글을 쓰는 나는 늘 경제의 잣대를 책에다 비유하기 즐긴다. 영화 한 편이면 소설 한 권, CD 한 장이면 시집 한 권 따위로...더구나 연예인 팬클럽 이런 건 아주 천박하고 무지한 철딱서니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삼류인종쯤으로 여겼다. 그런 내가 지난 주 금요일 밤 사단을 내고 말았다.

팬텀싱어2가 시작된 날 나는 우주의 어디쯤으로 증발하는 느낌을 받았다. ‘자유로운 영혼’, ‘햇빛 알러지’, ‘귀가 좀 어두운’ 참가자가 검정 슈트 차림으로 묵직이 무대에 섰다. 차이코프스키 ‘예브게니 오네긴’ 2막 중 아리아. 반주가 나오고 ‘꾸다∼,꾸다∼’ ‘백학’과 유사한 발음의 러시아 음악이 터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티브이 앞으로 바짝 가서 앉았다. 리모컨을 찾아 볼륨을 끝까지 올렸다. 후덜덜 떨며 앉기는 했는데 노래가 끝나도록 나의 영혼을 잃어버렸다.

관련 곡 듣기 : https://www.youtube.com/watch?v=5Fdt_e-0mZc

아주 오랜 광년의 시간 어디쯤, 호모 사피엔스 하나가 밀림에서 걸어 나와 빈 들판을 가로지르며 외치는 새벽의 소리 같았다. 지구 대기권을 헤매다 돌아온 듯 나는 흔들흔들한 정신으로 그날부터 호모 임파티쿠스(homo Empathicus), 공감하는 인간이 되어있었다. 계속 들어도 가슴이 떨렸다. 그날 심사위원 중 유일한 성악가 한 명이 혹평을 했다. 이상했다.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좀 이상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 째 경연, Alejate 알레하테, 이중창을 부른 그의 노래는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좀 울었다. 내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유독 그의 점수만 누락되었다. 이상했다. JTBC인데, 실수려니 생각했다. 처음에 경악하던 심사위원들이 대체적인 혹평을 했다. 아예 그 성악가 심사위원은 음악성을 심사하지 않고 조크를 날렸다. “눈을 내리깐 건 가사가 그 아래에 있느냐?”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는데 얼굴을 바짝 추켜세워야 할까. 나는 엉엉 울게 감동하는데, 이상했다. 또 내가 진짜 이상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관련 곡 듣기 : https://www.youtube.com/watch?v=W_gYYCIMxuc

세 번 째 경연, Nostalgia 노스텔지어, 역시 이중창으로 향수를 노래했다. 너무나 애잔하여 완전 질질 울면서 들었다. 유체이탈이 그런 건가, 내가 나를 잃어버렸다. 기껏 음악소리에...부끄러움보다 가슴이 먼저 뛰어 종잡을 수 없는 혼란이었다. 또 심드렁한 심사평이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몇 번이고 들어봤다. 역시 첫 감정 그대로 감동이었다. 참 이상한 심사였다. 나의 정신 어디쯤이 고장났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일었다.

관련 곡 듣기 : https://www.youtube.com/watch?v=hSh8Fxy8fj4

네 번 째 삼중창이었다. I see fire, 영화 ‘호빗’의 OST, 웅장한 곡과 절절한 가사가 가슴을 쳤다. 여태 국내외 어느 테너에게서도 들어본 적 없는 그의 미성(美聲)이 단연 돋보였다.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가 부르는 애국가를 듣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왠지 애국심이 마구 솟아날 것 같았다. 너무나 완벽한 트리오였는데, 유일하게 그만 탈락되었다. 혼돈이 왔다. 우승까지, 이보다 멋진 음색은 없다며 맘을 놓았는데,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갑자기 블랙홀에 내던져진 미아처럼 혼란했고 슬펐다.

관련 곡 듣기 : https://www.youtube.com/watch?v=5UimayXdwsk

무엇을 할까? 어디로 갈까?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음악을 들으며 정보의 바다를 헤매는 일이었다. 이튿날 그의 이름으로 된 카페에 가입했다. 내가 팬카페라니, 생전 처음이었다. 그렇듯 내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 건 오류였다. 개설 2주째인 오늘까지 회원 2천 명을 넘어섰다. 80퍼센트 이상이 생전 처음 팬카페라며 어물어물 상실에 젖어 찾아온다. 하루에 백 명 이상의 가입이 이뤄진다. 모두 같은 증세의 병을 앓고 있다. 왜?냐는 의문표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룬다. 자꾸 그를 떠올리며 음악을 듣는다. 집단트라우마이며 집단돌림병 증세다.

이 많은 회원들이 하루에 5천 회 이상 방문하며, 정보의 바다에 던진 그물에 두 개의 이야기가 건져졌다. 심사위원과 참가자들이 초면인 듯, 생소한 감동의 제스처를 쓰곤 했는데, 이들 중 상당은 서로 익히 아는 사이였다.

같은 기획사(Arts&Artists)에 소속되었고, 심사위원과 참가자들이 함께 공연(브릿지경제 2017년 9월 29일자, 제목: JTBC '팬텀싱어2‘에는 세 명의 ’록키호러쇼‘ 프랑튼 퍼터와 두 ’헤드윅‘이 있다?!)하는 사이로 친밀하게 얽혀 있었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눈을 뻔히 뜨고 속았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펜카페는 밤낮 그의 이야기만 한다.

담담하지만 아주 매력적인 보이스로 열정을 노래한 조민웅에게 연기력이 없다던 심사위원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시청자들만 까맣게 몰랐다. 더구나 며칠 전 손석희사장은 JTBC의 신뢰도 1위에 대한 자화자찬을 달달하게 말했다.

JTBC는 지난 공연을 끝으로 돌연 게시판을 닫아버렸다. 카톡만 열려있다. 하루에 삼만 건 이상의 글로 도배된다. “조민웅을 살려내라!” “제작진은 해명하라!”는 아우성이 일주일 째 계속되고 있다. 아무 반응이 없자 아예 이 프로를 종영하라는 분노로 들끓는다.

지금 이 순간, 팬텀싱어2는 방영되고 있다

잘 아는 사이에 아주 처음 본 듯 눈을 반짝일 심사위원들이 눈에 선하다. 거의 모든 회원들은 이 프로 뿐 아니라 이 방송 자체를 끊었다.  

현재 조민웅카페의 회원 수는 2116명이다. 오늘 방문자가 6236회다. 전체 게시글은 2405회. 2주 만에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주부군단이다. 글의 수준은 글쟁이인 내가 봐도 놀랍게 높다. 유머감각이 각별해 배꼽이 아프게 웃기도 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유려하게 쓴 이들도 있다. 물론 음악 계통의 전문가들도 예리한 분석으로 호응을 얻는다.

성악은 여타의 음악 장르에 비해 대단히 수고로운 예술임에 틀림없다. 크로스오버 4중창단을 뽑기에 뮤지컬 가수들도 다수가 참여했다. 그들 모두 준비 없이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며, 예선을 거친 모든 싱어들은 다 훌륭하다. 1회에서도 이런저런 이견들이 있었지만 무난히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용납할 수 없는 저항이 강력히 일어났다. 카페회원들의 평균 나이는 40대이며, 5,60대 장년층도 꽤 있다. 철부지 청소년들이 아니다. 자식들에게 부탁해 찾아온 사람들부터 부부와 자식이 가입한 가족들까지 다양하다. 모두 나처럼 자신의 귀와 가슴을 의심했던 이들이 동지를 만난 것이다.

테너 조민웅, 그는 분명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듣고 나서 “와아, 진짜 대단하다. 이 사람은 국내용이 아니고, 국제용이네.” 외국인회사에 다니는 나의 조카 말처럼 그는 더 큰 무대에서 한국의 아들로 설 것이다.

1회에서는 열렸던 JTBC 홈페이지 게시판 문은 굳게 닫혀있고, 자신이 올린 글 아래 위의 제목만 볼 수 있다. 이제 이 방송국은 탄핵 이후의 애시청자들 앞에 불통의 벽으로 서 있다.

이러다 보니 어느 분(양****reti****, 10월 2일)이 재미있는 콩트까지 써서 카페에 올렸다. “판담국”, 이 글을 소개하며 마친다.

---옛날에 말입니다...동쪽의 끄트머리에 판담국이라는 아주 작∼은 나라가 있었다지오. 본래 흥이 많은 민족이라 소리와 음주가무를 좋아하기에, 삼삼오오 모여들면 저자거리엔 항상 웃음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햇빛가리개같이 생긴 반쪽짜리 허∼연 탈바가지와,

일인당 이천오백냥을 상으로 주겠다는

판담배 소리자랑이 벌어졌더랍니다.

---(중략)

그런데 어디서 불쑥 나타난 한 가객이

자유로운 혼령에 이끌리어 소리를 하겠다고 심드렁∼하게 들어오더니,

시작도 하기 전에 해가 뜨겁다, 귀가 안들린다 중얼중얼거리면서 목을 풀고 나서는,

그만 어린아이부터 팔십에 드신 어르신까지 깜∼짝 놀래 자빠질 소릴 뿜어내더랍니다.

---(중략)

이에 마음이 급해지고 불안해진 양반들이

저 넘을 어찌 해야할꼬..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판돈을 엉∼뚱한 소리꾼에게 건 사대부들은

이것이 무슨 일이냐 속히 아랫것들을 모아 대책을 마련하거라∼절치하고 부심한 끝에...

평소에 그 자가 밥을 머슴들보다 많이 먹고, 가랑잎 하나 움직이지 않을 만큼 몸을 쓰지 않으며 곡을 터뜨리는 특이한 품새에, 소리를 내는 모양새가 양반들이 보기에 정성스럽지 못하고, 잔치를 벌여준 양반들에게 송구스러워 하지도 않는 듯, 하다는 말∼도 안되는 구실을 삼아, 그 명창을 일찍 집으로 보내버렸다고 합니다.

---(중략)

오늘에 이르러서는 일천하고도 오백을 넘는 민초들이 정체모를 이 역병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중략)

조민웅 곡 전체 듣기 : https://www.youtube.com/watch?v=xfHF4MpdPuw&list=PLPUn6np-orxJ5b9PR39AF8Jgnuym_vs2K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이미진 객원편집위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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