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성근 주주통신원

신문이고 방송이고 어린이집교사의 폭행으로 난리다. 정부는 어린이집마다 CCTV를 설치한다, 보육교사의 자격을 엄격하게 한다, 폭행이 발견된 어린이집은 폐쇄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과연 그것이 대책일 수 있을까?

모두가 알다시피 어린이집교사는 장시간노동과 저임금으로 신음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때로는 내 아이도 귀찮고, 힘들다. 그래서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소리를 지르고, 매를 드는 경우도 생긴다. 하물며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다른 집 아이를 매일, 여럿 돌본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폭력이 정당화될 순 없다.

일찌감치 젖먹이 아이를 떼놓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아이는 태아부터 만 삼세까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 기간에 부모의 애정과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은 아이는 갖고 태어난 재능을 모두 발현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그런데 시설에 아이를 보내지 않으면 보육비를 지원받지 못해 손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떼놓는 경우도 있다. 이건 정책의 문제가 아닐까?

아이 낳아 키우고, 교육시키기 이렇게 힘든 나라가 또 있을까? 아이를 대학까지 졸업시키기까지 3억이 든다고 한다. 그야말로 ‘억’소리가 날 일이다. 그런데도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다. 그래 삼포세대라는 자조적인 말도 생겼다. 15년 전, 과천에 살 때의 일이다. 청사어린이집이 가장 좋다는 말을 듣고 신청했다가 몇 년이 걸린다는 말을 듣고 돌아섰다. 그때만 해도 국공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확대가 대안인 줄 알았다.

물론 지금처럼 시설의 대부분을 민간에 위탁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일찌감치 그것을 시행한 북유럽과 서유럽의 경우를 살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우리의 국공립보다 좋은 시설에서 전문가 - 해당 분야의 박사, 교수 - 들의 돌봄 노동을 받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엄청난 사회적비용이 들었다는 연구결과 때문이다. 결국 부모의 육아보다 좋은 방법이 없는 건 아닐까?

수유가 가능한 18개월은 엄마에게, 나머지 18개월은 아빠에게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보장하자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그래야 아이가 남성성과 여성성을 고루 익힐 것이고, 자칫 돈이나 벌어오는 사람으로 치부되기 쉬운 아빠들도 가족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부가 할 일은 임금과 일자리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이다. 전업주부의 경우에는 돌봄 노동비용을 지불하라.

우리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얘기라고?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보육교사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만큼의 노동조건과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 그것에 경제논리를 들이대 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공립시설을 획기적으로 늘려나가는 수밖에 없다. 시설 앞에 엄마들이 줄을 서거나 추첨을 하지 않아도 될 때까지 말이다. 그것이 문제의 본질일 텐데 지금 정부는 또 헛발질을 하고 있다.

오성근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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