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동한파속 그리기에 집중한 백호 황순칠

2월 1일경부터 7일까지 광주 인근에는 눈이 계속 내렸다. 필자 같이 생업에 별 지장이 없는 사람은 좋았지만, 반기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연히 눈을 주제로 초중등학교 동창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는데 놀라운 사진 몇 장이 올라왔다. 눈으로 뒤덮인 야외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는 한 사람의 사진이었다.

눈도 눈이지만 바람도 세차게 부는 영하 10도 내외의 기온이었고 체감온도는 더욱 낮았다. 그 한파 속에서 외로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니, 필자의 열정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놀라웠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 사람은 초중등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그 친구를 가끔 만나면 교실 뒤편 게시판에 항상 자기 그림이 붙어 있었다고 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떡이며, 그렇거니 하고 무성의하게 동조했다. 사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인지 가물가물했다.

중년에 그를 만났지만 살아온 인생을 나누는 깊은 관계는 아니었다. 가끔 만나서 저녁 먹고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세평이나 하는 그런 사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한참 후에 그 친구가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놀랐다. 그 후로 친구를 다시 보게 되었고. 이런 자신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으며, ‘나도 세속에 많이 찌들었구나’ 하면서 씁쓸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친구에게도 미안했다.

▲ 백호 유화 1

우리는 보통 어릴 때 정보와 감성으로 친구들을 본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모든 것이 옛날에 멈춰 있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성장했고 변했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고로 오해하고 오판한다. 특히 무시하고 가볍게 여긴다. 필자 또한 그랬다. 그러므로 혹자는 고향과 출신 초중고교에서 초청해도 가지 않는다고 한다.  초청자와 초청 받은 자 모두 실망하기 때문이다.

모두 알만하지 않는가?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가를, 필자와 진배없는 가난한 촌놈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고초는 또한 얼마나 많았겠는가를? 훌륭하다 친구여! 고생 많았다 친구여! 늦었지만 진심으로 축하한다.

필자는 친구에게 무심하고 건방졌다. 배코! 자네와 같은 친구가 있음이 정말 자랑스럽다. 미안해.

▲ 백호 유화 2

그런 와중에 허허로운 눈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친구사진을 본 것이다. 감회가 새로웠고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고마웠기에 무슨 표현이라도 해야 했다. 그간의 무례하고 무성의함을 사과하는 뜻에서 다음 글을 쓴다. 표현이 부족하지만 감안해서 읽기 바란다. 필자의 속마음도 알아주면 고맙겠다.

 

<친구 백호(애칭 : 배코)에게 드리는 헌시>

인적도 없고 차량왕래도 없는
화순군 운주사 인근 한적한 야외
저 멀리 휘날리는 눈보라 속에
희미하게 움직이는 뭐가 보이네.

사람일까 짐승일까 궁금함을 달래려고
살며시 다가가 살펴보니
한 화쟁이가 전신을 감싼 채
화폭에 집중하고 있구나.

누가 오가는 줄도 모르고
캠퍼스와 붓 끝에 눈이 붙었도다.
이런 엄동설한 허허노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니

놀랍고 놀랍도다. 정신이 오싹
아니, 미쳤지 미쳤어 진정 미쳤어
누구인지 가까이서 살펴보니
1995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작가
백호(배코) 황순칠!
내 초중등 친구가 아닌가.

반갑기도 생경하기도 하여라.
동서고금에 이런 화가 있었던가?
장승업과 빈센트도
신윤복과 피카소도
그 열정 그 정신을 어찌 따르리.

그러지는 못했으리.
그러지는 못했으리.
설풍한파 속에서
담담하게 그림을 그리는 자여
지나온 삶과 영혼을
화폭에 담으려 하는가?

폭포수 아래서 득음키 위해
피토하며 소리하는 명창 같도다.
후세까지 길이 빛나리.
일광처럼 명월처럼
자랑스러운 내 친구
호남의 화가 백호 황순칠!

 

<백호 황순칠 약력>

▲1955년 여수출생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서예 입문, 동양화 박행보 사사
▲서양화전환 ‘95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수상, 신한미술상 수상
▲개인전 (서울, 부산, 대구, 대전 등) 다수
▲베를린 한국 현대회화전, 파리 살롱 도똔느 특별전 등 국제전 다수
▲TV 미술관 경매전
▲2002년 황순칠 고인돌마을 작품 고교 미술교과서 등재
▲화실 : 광주시 남구 월산동, 전남 화순시 도암면

사족 : 백색을 주색으로 사용하는 화풍이 빈센트와 비슷하여 빈센트의 작품을 첨부한다. 백호는 자연을 대상으로 그리지만 빈센트는 사람을 주대상으로 그렸다.

▲ 출처 : 한겨레, 빈센트작, 피아노를 치는 <마르그리트 가셰> 1890년 바젤미술관 소장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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