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국주의국가에서 보통국가로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유럽 순방에서 유럽연합을 “통상에서 미국의 적"이라고 하자, 의회를 비롯 주류언론과 학자 등 미 주류진영은 경악했다. 그 경악은 푸틴과의 '브로맨스'를 과시한 트럼프의 방러에 이르러서는 더 폭발했다. 워싱턴이 부글부글 끊었다. 밤낮이 없었다. 경악을 넘어 분노에 가까웠다. 적과 우방을 왜 구분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트럼프의 이른바, ‘외교노선 급변침’에 미 주류진영은 그렇듯 온갖 아우성으로 반발하고 있다.

주류진영의 트럼프에 대한 경악과 분노는 미국의 역사 그리고 현재의 정치지형을 알면 쉽게 이해가 된다. 2차 대전 후 미국은 세계패권전략에 따라 소련과 중국을 '주적'으로 설정하고 유라시아에서 이들의 패권 확산 저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어 유럽에서는 나토,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호주 등과 동맹을 구축해 패권 확장을 도모했다. 이른바, 팍스아메리카다. 미국은 막대한 군사비를 지출해 세계 곳곳에 미군기지를 세웠으며 공격적인 경제원조 정책을 폈다.

팍스아메리카를 주도한 세력은 미 군산복합체를 기본으로 여기에 이들과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함께 한 네오콘 등 미 주류정치세력이다. 미 제국주의의 실체다. 팍스아메리카가 미 제국주의의 다른 표현인 이유다. 미 주류진영에 속해 있는 지금의 정치세력들 그리고 언론과 학자들은 전후 미 제국주의자들이 수립한 국제질서 그 자체다. 그들이 전후 수립된 세계질서에 지각변동을 꾀하려는 트럼프를 공격할 수 밖에 없는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 주류진영은 그러나 현실적으로 치명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천문학적 수치에 도달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자본주의 국가로서의 미국이 경제적으로 본질적 위기에 처했음을 반영해주는 것임에도 이를 부정한다. 일시적으로 생겨난 위기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울러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강화 그리고 특히 북의 핵무력 완성이 미 경제위기에 외적 요인으로 작동해 미 세계패권을 급속도로 몰락시키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이상할 것은 없다. 제국주의자들이 흔히 갖는 본원적 특성이다.

미 세계패권이 경제위기 그리고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강화, 북의 핵무력으로 인해 점차 몰락하고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인지하고 솔직하게 인정한 정치인이 트럼프다. America First의 근본의미다. 경제위기에는 자국경제를 우선하는 ‘보호무역주의’로, 안보외교위기에는 미 안보를 우선하는 ‘고립주의’로 대응하겠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트럼프가 유럽에 구축된 질서에 대해 미국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킨 불공정한 질서라고 판단하는 것도 유럽순방 기간에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을 공유하는 가치 동맹보다 미국 이익을 앞세우며 나토를 공격하는 행보를 보이는 것도 America First에 충실한 것이었다.

트럼프의 America First가 유럽에서 보다 더 완결적으로 표출된 것이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었다.

6.25전쟁이 끝난 후 적국인 북 지도자와 손을 잡은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가 유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악수 이후 정상회담장에서 종전선언을 합의하고 심지어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까지도 언급해 미 주류세력들을 자지러지게 했다. 트럼프가 ‘탑-다운’ 즉, 실무 협의 없이 북과 정상회담으로 직행하는 방식을 취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어느 대통령도 엄두를 내지 않았던 방식이었다. 트럼프는 실무협상과정이 정상회담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요인들을 수두룩하게 갖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꿰차고 있었던 셈이다.

더 특별한 것이 있다. 6.12북미공동성명이 북미 관계 정상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핵해법을 공식화 했다는 점이다. 제1항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올려놓고 그 아래 2항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3항에 '한반도 비핵화'를 배열한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을 통한 북미관계 정상화 경로를 채택한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나 2006년 9·19 공동성명과 획기적으로 다른 점이 그것이다.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수립과 상호신뢰 구축을 앞세우고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미공동성명에 이 보다 더 중요한 대목은 없다.

북미정상회담과 6.12북미공동성명이 갖는 이러한 특기할만한 특질들은 트럼프가 왜 전후 체제를 재편하려는지 그리고 트럼프가 그 결정적 계기를 무엇으로 설정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북핵이다. 트럼프는 북의 핵무력 완성이 America First에서의 핵심 내용인 ‘미 안보우선주의’를 정면에서 위협한다는 것에 집중한 것이다.

미 주류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미 주류 언론인들과 학자들이 ‘트럼프가 모든 것을 뒤바꾸려하고 있다’고 반발하는 데에서 확인할 수 있듯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에 대한 미 주류진영의 저항은 갈수록 거세질 것이다. 옛날에도 그러했었다. 1971년 중국이 양탄일성(원자탄, 수소탄, 인공위성)을 실현한 뒤 닉슨의 미·중 정상화 외교가 시작되었을 때 미 주류진영의 반대는 극심했었다. 심지어 미 국무부조차도 미중관계 정상화에 부정적이었다. 지금이 그때와 비슷하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렇지만 정세 흐름을 보아도 정세를 구성하는 전반 정치지형을 봐도 미 주류진영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막을 수가 없다. 북이 핵을 날려 탄착시킨 곳이 미국의 수도나 트럼프 집무실이 아니라 미군산복합체 그리고 그들과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네오콘 잔류세력과 미 주류정치세력 및 주류언론들의 앞마당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미 주류진영이 막아 낼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북미관계 수립에서 북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때문이다. 정세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의 흐름을 북이 전략적으로 주도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북핵은 러시아핵이나 중국핵과는 그 전략적 의미가 다르다. 북핵은 미국의 핵위협에 맞서 사회주의체제를 사수하기 위해서만 개발한 것이 아니다. 한미동맹을 깨 미국의 70여년 한반도지배전략 파탄을 겨냥한 것이 북핵의 중요한 전략적 의의다. 북핵은 아울러 미국의 한미일3각동맹 구축을 무산시켜 미 동북아패권전략을 파탄시켜내는 정치안보기제로서의 전략적 의의 또한 갖고 있다.

북의 사상과 정치가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들과 다르다는 점도 정세 흐름에서 유념해야할 전략적 대목이다. 북이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70년 넘게 전개된 치열한 대결전에서 미국의 의도와 달리 건재하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북이 확보했다는 사상 및 정치 그리고 군력과 결부시키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럽다. 북은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을 자임하고 있다. 트럼프가 70년 적국의 수장과 악수를 한 것이나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하기로 한 것은 북이 주장하는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에 대해 일정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외의 다른 것으로 설명하기는 개운치가 않다.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이 미국이 이후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평화공존을 도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힘 있게 내놓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은 단순히 북미 두 나라 간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 분단체제에 오롯이 담겨있듯 2차 대전 후 세계적 냉전체제를 최종적으로 해체해 새로운 세계질서를 재구성하는 것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의 본질이다. 세계사적 대전환기인 것이다.

북의 핵무력 완성과 트럼프의 America First의 결합으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통해 미국은 마침내, 제국주의국가에서 보통국가로 전환되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제국주의국가에서 보통국가로서의 전환 공정이 평화이행전략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 주류세력의 경악과 분노를 세계사적 범주에서 잘 관리하는 몫은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능력에 달려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국제적 행보 그리고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대중 대러 전략적 행보의 일거수일투족을 단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되는 이유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한성 시민통신원  hansung6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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