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통신] 지정부 주주통신원

“본의 아닌 큰 착오를 야기했습니다. 주말에 보시라고 보냈는데, 10편 모두가 인기 영화로 위장한 이른바 ‘19금’ 동영상이었습니다. 확인 않고 송출한 단순 실수였어요. 아직 안 여신 분은 당장 삭제를 요망합니다.”

카카오톡을 시작한 건 2년이 채 안 된다. 추석 명절에 온 자녀가 ‘가족끼리 연락하기 편리하고, 통화나 메시지 이용이 무료’라면서 가입시켜 주었다. 친지와 친구, 후배에게서 메시지가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존에 이용하던 트위터와 달리 140자 제한이 없는데다 각종 정보, 희귀 사진 및 좋은 동영상 자료를 마음껏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지난 1월 중순 누군가에게 ‘지금 극장가에서 상영되고 있는 인기 영화 10편’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주소들이 담긴 메시지가 카카오톡으로 들어왔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주말에 차분히 감상들 하시라고 친구들에게 빠짐없이 전달했다. 이틀 뒤 내가 보고 싶은 영화 하나를 골라 눌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졌다. 진한 ‘야동 19금’ 동영상이었다. 열어보지도 않고 잘 모셔놨다가 전달한 게 사달이었다. 계속 눌러보니 열 개 다 그 모양. 완전 위장품이었다.

‘어쩜 좋담?’ 메시지를 전달한 친구 중엔 홀로된 제수에다 조카, 어린 질손까지 있었고, 선후배 목사·장로와 교직자인 동생·조카도 포함되어 있었다. ‘좋은 영화’라고 가족들과 함께 보려는 집도 있잖을까? 잠 못 이루고 고민한 끝에 사과문을 내기로 결정했다. 내 불찰을 변명하고, 자숙의 의미로 ‘앞으로 카카오톡 전달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담은 통한의 사과문이었다. 그들에겐 미안지심 그지없었다. 그래도 지인들은 ‘나약한 인간의 순간 실수인걸, 뭘 그렇게까지…’라며 위로했고, 열성팬들은 ‘좋은 자료 잘 보았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왔다. 결국 ‘절필’을 번복하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전율이 느껴진다.

“제가 당분간 자숙의 뜻으로 카카오톡 전달을 쉬고자 했으나, 가까운 지인들의 애절한 격려에 용기를 냈습니다. 그러나 전달 횟수는 줄이렵니다. 그러니 너그러운 양해를 바라오며, 요즘의 못된 정치인 닮아서 결심을 금세 뒤집은 데 대해서 다시 한 번 사과를 드립니다.”

지정부 주주통신원  cbn106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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