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손도손 사랑방] 김선태 주주통신원

이렇게 가게를 책임질만하게 될 무렵에 신도시 건설 붐이 일어났고, 근처도 중동신도시 건설이라는 거대한 사업장으로 변화했다. 철물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철물점 사장은 아예 공사장 부근의 땅을 사서 임시 건물을 짓고 거기에 더 큰 규모의 철물점을 하나 더 냈다. 이렇게 되자 본래 있던 가게엔 주인이 신경을 쓸 만한 여유가 없었다. 주인은 본래 있던 가게를 YH에게 맡기려고 했다.

“가진 돈도 없는데, 제가 무슨 돈으로 이 가게를 삽니까?”하고 YH가 난감해 하자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모두 자네를 보고 찾아오는 손님들이라네. 그러니 자네가 이 가게를 맡아서 운영하게. 돈은 차차 벌어서 매년 1000만 원씩만 3년간 받기로 하겠네. 자네가 파는 물건값으로 치르면 두 달이면 되겠지만, 넉넉하게 3개월로 해주겠네. 내가 자네에게 그냥 줘도 좋겠지만, 자네가 그렇게 해야 마음 편하고, 자네 돈으로 산 거니까 더 정성을 다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리하는 것이니, 그리 알고 자네가 운영하게.”

이렇게 사장의 배려로 YH는 갑자기 점원에서 사장님으로 신분이 바뀌게 됐다. 그러나 YH는 절대로 자만하지 않았고, 직접 가게를 운영했다. 손님들도 전과 똑같이 대했다. 그러나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풍기게 마련이었다. 어느새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YH를 ‘사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3개월이 지나고 YH가 정말 가게를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하게 되었다. “깡촌놈이 이런 가게까지 가지게 되다니 정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YH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자기를 소개해준 친구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접대를 했다.

가게는 점점 더 잘 됐다. 동네에서 건설 관계 일을 하는 사람들은 YH의 가게에만 가면 싸게 그리고 확실한 물건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다른 집을 찾는 일이 없었다. 입소문을 타고 한 사람 두 사람 단골손님은 늘어났고 가게는 더욱 번창했다.

혼자만의 힘으로 운영하기 힘들어지자 회계 사무를 보는 사람도 고용하게 됐다. 비록 사무원이 있었지만 YH는 직접 물건을 챙기곤 했다. YH는 당시에 가장 비싼 자동차였던 그랜저도 샀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러 가면 반드시 골목 입구에서 차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곤 했다. 언젠가 은사라고 나를 초청한 자리에서 그 모습을 보고 “네가 참 마음 씀씀이가 됐구나. 고맙다”고 외쳤다. 친구들 앞에서 뽐내고 싶기도 하겠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는 그 모습이 참으로 고맙고 기특했다. 이처럼 YH는 1990년대 초 당시 10억대는 되는 자산가였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5, 6년이 흐른 다음 YH가 부도가 나서 몽땅 털고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20여 년간 공들여 쌓은 탑이 그리 허망하게 무너지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가게 회계 사무를 보던 사람이 가게의 돈을 빼돌려서 부도가 나게 만들고는 가게를 빼앗아 버렸다는 것이다. YH가 학벌이 없다는 것을 알고, SKY대학의 회계학과를 나온 머리 좋은 사람이 일부러 이 가게에 취직해서 야금야금 돈을 빼돌리기 시작했단 얘기였다. 일부러 부도가 나게 해 놓고서는 결국 사장에게 덮어씌워서 사장을 내쫓고 만 것이었다.

죽도록 고생해 만든 가게, 자기 생을 다 바쳐 지켜온 가게를 자기 자신이 못 배운 탓에 남의 손에 맡겼다가, 사무원에게 빼앗기고 눈물을 머금고 떠난 YH는 그 뒤로 소식조차 끊어지고 말았다. 어디에선가 다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면서 그 긴 시간의 노력이 허무하게 무너진 아픔을 되새기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못 배운 한을 곱씹으면서 탄식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벌써 10여 년이 지났으니 제발 이제쯤은 그 지독한 악몽에서 벗어나고, 다시 일어서서 그 굳건한 모습으로 우뚝 서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선태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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