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통신] 정신 주주통신원

“정신이 맑으시고 자존심도 세신 분인데, 요즘 대변을 흘리셔서 옆에 할머니들이 냄새 난다고 싫어하신다네요. 요실금팬티를 사들고 가서 욕실에서 팬티도 빨아 드리고 찌그러진 물통도 새것으로 바꿔드렸어요. 지금까지 싫다고 안 입으시던 요실금팬티를 오늘은 순순히 입으시면서 ‘우리 며느리 살림 많이 늘었네’ 좋아하시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답니다. 사시는 동안 제가 힘닿는 데까지 해드릴 겁니다. 잘은 못해도 힘닿는 데까지는…. 저도 언젠가는 같은 길을 가겠지요.”

어머니는 올해 아흔셋이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소위 양반 가문이라 체통과 체면이라면 선친과 함께 둘째가라면 서럽다 할 정도의 삶을 사셨다. 어머니를 형님 내외분이 포항 집에서 3년을 모시다가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옮긴 지 3년째다. 융통성 없는 꼬장꼬장함 때문에 결국 한집에서 못 살게 된 것이다. 도로 건너 영일대 해수욕장이 창밖으로 펼쳐져 있는 전망 좋은 병원은 부족함이 별로 없어 보였다. 어머니는 처음엔 당신을 버려두는 줄 알고 서운해하셨지만 동년배 할머니와 이야기도 나누며 간호사의 보살핌을 받는 쾌적한 환경에서 이틀이 멀다 하고 방문하는 아들 내외의 챙김까지 받고 있다. 어머니의 그런 상황을 보고 ‘그만하면 행복하신 겁니다’라고 말한다면 우리 자식들은 불효자가 되는 것일까. 형수의 메시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올해 쉰다섯으로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다. 한 직장에서 평생을 봉직한 뒤 연금까지 잘 나와서 노후 걱정이 없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좋은 학교를 나오지는 못했어도 혼자 공부해서 실내건축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불안정한 소규모 영세 회사를 전전했다. 신문에 시사만평(정화영 만평)도 기고했고 이런저런 관공서 기간제 일로 호구지책을 삼으며 세월을 살아냈다.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나를 보고 시니어란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보다 나이 많고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도 많고, 형제자매 친척도 없이 나보다 훨씬 외로운 사람도 많다. 그런데 나는 노총각이다. 베이비부머 여러분, 나와 같은 ‘노총각, 노처녀 시니어’ 또 없나요.

정신 주주통신원  donb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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